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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님, 예수를 태운 새끼 나귀(마 21:1-11).

작성자복음지기|작성시간21.03.06|조회수202 목록 댓글 0

2021년 3월 6일(토)

 

* 시작 기도

주님...

요양하러 온 이 시간이 그냥 허투루 보내는 헛된 시간이 되지 않게 하시고 주님과 더욱 친밀하며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과 늘 가까이 나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고 징직한 영을 새롭게 하옵소서.

정결한 신부와 같이 주님 옆에 서는 주의 신실한 종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생각해보면 지난 날의 내 속에서 요동치는 바다와 같이 솟구치는 진흙이나 더러운 것들이 나의 심령을 얼마나 더럽혔었는지요?

이제 나를 더럽히고 요동치게 하는 더러운 진흙탕의 물들은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하시고 오직 주의 성결하심과 같이 나도 성결함으로 서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주의 말씀으로 주와 교제하기 원하오니 이 자리가 주님의 품에 포옥 안기는 주의 품속이 되게 하시고 세상의 어떤 유혹이나 미혹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주님과 함께 하는 천국, 곧 영생의 자리가 되게 하소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두 소경에게 주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너희에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하실 때에 그들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우리가 보기를 원한다고 했던 것처럼, 나도 주님 앞에서 늘 바로 튀어나올 수 있는 기도제목, 아니 주님과의 교제의 시간들을 늘 가지고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우리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마 21:1-11

제목 : 나의 주님, 예수를 태운 새끼 나귀.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이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 나의 묵상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은 이제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벳바게에 이르렀다.

예수님은 제자 둘을 맞은편 마을로 보내시면서 거기에 매일 나귀와 나귀 새끼가 있는데 그것을 끌고 오라고 명하셨다.

만일 누가 그것을 왜 푸느냐고 말하거든,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고 하신다. 그러면 그 사람이 즉시 그 나귀를 보낼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구약의 선지자인 스가랴에게 주신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다.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한편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대로 하여 가서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자 예수님께서 그 위에 타셨다.

또한 거기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기도 하고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깔기도 하면서 앞과 뒤에서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을 따르는데 그들이 호산나 노래를 불렀다.

이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면서 소리 높여 노래하였다.

예수님이 이처럼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온 성이 소동을 하면서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사람들이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고 하였다.

 

나는 오늘 본문을 자세히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태운 나귀, 그것도 나귀 새끼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내가 바로 미천한 나귀가 되어 예수님을 내 등에 태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해본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미물에 속한 나귀, 그것도 나귀 새끼를 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연호하는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오르셨다.

이것은 마치 전쟁에서 이긴 개선장군이나 왕의 행차와 같은 그런 모습이다.

하지만 개선장군이나 왕의 행차에 사용되는 짐승은 이런 짐을 옮기거나 집안 일을 할 때 사용되는 나귀, 그것도 나귀 새끼를 타지 않는다.

그들은 갈기가 휘날리고 아주 용모가 뛰어난 준마를 타고 보무도 당당하게 군중들 사이로 입장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타신 나귀 새끼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타고 이동하는 수단으로 잘 사용하지 않고 그저 집안에서 사람의 힘으로 옮기기 어려운 그런 짐들을 옮기는데 사용되는 짐승이다.

 

예수님은 개선장군이나 왕의 행차와 같이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이 아니라 가장 낮고 겸손함을 나타내는 나귀, 그것도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이다.

수많은 군중은 그런 예수님을 보고 호산나 찬송을 부르며 소리 높여 환호하였다.

이들의 목적은 이제 자기들의 나라인 작고 힘없는 나라, 유대를 예수님이 로마로부터 해방시키고 자유를 선포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런 일에 사용된 짐승이 바로 새끼 나귀였다.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태운 새끼 나귀를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새끼 나귀는 예수님을 태우고 버거운 예루살렘의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비록 미천하고 이성 없는 짐승인 새끼 나귀일지언정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여 그 누구의 관심 하나도 받지 못하는 가장 낮은 자리를 기꺼이 감당하였다.

우리 예수님 역시 개선장군이나 왕의 행차의 경우와 결코 뒤지지 않는 어마어마한 행차이시다.

왜냐하면 만약 로마의 압제로부터 유대를 구원하고자 오셨다면 그는 결코 나귀, 그것도 새끼 나귀를 타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는 그의 백성들이 나귀를 타도록 가만 두지 않았을 것임을 자명한 일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기가 보기에 크고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은 거기에 걸맞게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이 세상의 이치에 맞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왜 그런 힘이 있고 멋진 말을 타지 않으시고 작은 나귀를 타셨는가?

이는 겸손의 왕으로 오신 것을 잘 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제자들과 여러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신 것의 대부분이 겸손하여 낮아질 것을 말씀하셨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변화산에서 내려온 예수님은 간질에 걸려 귀신에게 온갖 수모를 겪는 아이를 고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작은 연고라고 하시면서 적어도 이런 것은 믿음으로만 가능하지, 결코 너희들의 경험만 믿고 하려고 하면 절대로 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 경험은 결국 자기 자신을 높이는 수단이 되고 말 것이다. 그 믿음 역시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되는데 이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여질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또한 일만 달란트 빚진자의 악한 소행 곧 자기는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았으면서도 자기에게 겨우 100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해 주지 않는 그를 보면서 왕은 그를 다시 감옥에 가두어버렸다.

이는 자기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을 빗대어 자기를 드러내지 말고 겸손하여 낮아질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모든 일들은 예수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시고 가르치셨던 겸손하여 더욱 낮아질 것에 대한 말씀이며 나아가 예수님 자신이 그것을 몸소 본을 보이시며 실천하신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개선장군이나 세상 왕의 행차처럼 갈기를 휘날리며 온 사람들의 호위를 받으며 당당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수 있지만, 예수님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구원하러 오셨지만, 단순히 로마의 압제하에 있는 육신적인 유대인들을 해방시키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에 매여 사탄에 종노릇하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을 영원히 구원하시고자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도 갈기를 휘날리는 말이 아니라 지극히 작고 겸손의 대명사인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이다.

 

나 역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멋지고 힘이 있으며 보기에 좋은 말이 되기를 원했던고?

그러나 나는 다리에 힘이 없어 순간순간 넘어지는 나귀 새끼가 되고 말았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유독 약하게 태어났다.

어머니 모유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이 맘죽이라는 것만 먹고 갓난 아기 시절을 지냈다고 들었다.

어머니가 하도 약해서 젖이 나오질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약한 나머지 수요예배를 드리다가 갑자기 출산기가 있어서 얼른 집으로 와서 나를 낳았는데 팔삭동이로 나았단다.

그래서 1년이 지난 돌이 되었을 때 나를 데리고 밖을 나갔는데 사람들이 나를 보고 이제 100일 지났느냐고 물어보더란다.

나는 이처럼 어려서부터 연약함을 달고 살았다.

어려서부터 지나가는 전염병이나 질병들은 나를 피하여 가지 않았다.

항상 나는 연약함의 대명사나 되는 것처럼 몸에 힘이 없어서 픽픽 쓰러지기 일쑤였고 달리기나 운동을 해도 항상 나는 친구들의 대열에 끼일 수가 없었다.

육신적으로는 비록 연약한 새끼 나귀와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보기에도 좋고 힘 있는 말을 타지 않으시고 나귀, 그것도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오늘 나는 육신이 약하여 강릉에 요양 차 왔지만, 나는 새끼 나귀가 되어 우리 주님을 내 등에 태우고 예루살렘성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어린 나귀와 같다.

나의 주인을 모시고 가는 이 오르막 길은 비록 육신적으로 힘이 들고 어렵지만 내 입에서는 주를 위한 섬김이기에 흥얼흥얼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저 육신적인 즐거움에 기인한 유대인들의 호산나에 그치지 않고 나의 전인적인 구원을 이루어주신 새끼 나귀와 같은 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나의 전심을 다하여 부르는 호산나 찬양소리이다.

나는 미물에 지나지 않는 나귀와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이런 나를 위하여 죽음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 장사되시며 온갖 수모와 고난을 겪으시고 영원히 죽은 나를 영원한 생명으로 살리신 우리 주님이 타시는 새끼 나귀가 되어 주님을 잘 모시는 그런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 이 자리가 바로 우리 주님과 함께 교제와 사귐을 갖는 영원한 천국의 자리요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는 카이로스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감히 나의 주님이라고 부를 염치도 없는 미물에 속한 새끼 나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선지자인 발람을 나무라며 영적인 깨우침을 준 나귀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등은 오직 주님을 위한 등이 되기 원합니다.

그 자리는 우리 주님 곧 이 땅에 예수를 알지 못하고 영적으로 거지와 같은 자들에게 내어줄 자리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를 알게 하고 그들 역시도 그 작은 등을 또한 다른 예수들에게 내어주는 그런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주님, 주님을 태우는 새끼 나귀라도 좋습니다.

좁디좁은 나의 등에 앉으시는 것조차 불편하시지만 그것이라도 기꺼이 내어드립니다.

나를 사용하소서.

나를 향하여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이 얼마나 나를 춤추게 하는지 모릅니다.

나를 드리오니 얼마든지 나를 사용하옵소서.

주님의 복음의 도구가 되어 주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나귀가 되겠나이다.

나의 둔한 입을 열어 서툴지라도 내 입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하는 복음의 나팔수가 되게 하옵소서.

나의 영혼이 기뻐 춤을 춥니다.

이 자리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육신의 연약함이 나를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나는 주의 은혜로 다시 일어서 가는 곳마다 주의 복음을 전하고자 주님을 태운 새끼 나귀이길 원합니다.

주님 영광을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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