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기쁨을 가지고 행했던 일이지만
뜻밖의 결과에 당황스런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잠잠히 기다립니다.
늘 어리석은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십자가 보혈로 덮어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성령님, 오늘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16.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
18.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19. 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
20. 아버지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 하였더라
21.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본문 주해)
11~14절 : 모세가 바로 왕 공주에 의해 물에서 건짐을 받고 난 후, 젖을 떼기까지 친모에게서 자랐다.(10절) 그러니 모세는 바로의 궁에서 왕자들과 함께 애굽의 학문과 문화를 배우면서 자랐지만,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모세에게는 민족애가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보고서 좌우에 아무도 없음을 보고서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인다. 모세의 의분이 독립운동가처럼 행동한 것이다.
그런데 애굽의 감독관을 죽여 버리는 모세의 자기 민족 사랑의 그 열심이 오히려 자기 민족에게서 배척을 받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갔다.
자기 민족을 생각하여 모세 스스로가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자 하였으나 자기 백성들이 따라 주지 않은 것이다.
모세의 좌절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15~22절 :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제사장의 딸들을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되어 그 미디안 제사장의 딸 십보라와 결혼을 하고 그 광야에서 살게 된다. 아이를 낳았는데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한 것은 자신이 타국에서 객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으로 모세는 끝이 났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열심을 꺾으시기 위하여 침묵하시는 40년의 세월이었다.
황량한 광야에서 이제 늙은 양치기기 되어버린 모세, 그의 40년 세월은 한숨과 원망과 울분들이 깎이고 다듬어지고 포기되어지는 시간이었다.
23~25절 : 모세가 자기 백성의 고통을 돌아보고 구원하고자 하여 폭력을 사용하였을 때는 광야로 쫓겨 갔다.
‘여러 해 후에’는 40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이다. 이제 백성의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이르렀다. 하나님의 들으심과 기억하심과 권념하심이 나타난다.
“하나님이 그들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의 종살이를 보시고,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셨다.”(24~25절, 새번역)
(나의 묵상)
민족애와 동족의식으로 애굽 사람을 죽였던 모세, 그 일로 도리어 동족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덮어질 줄로만 알았던 일이 폭로되면서 40년 애굽 왕자의 생활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모세는 또 한 번의 40년을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로 살아간다.
양치기로 늙어가면서 모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또 하나님은 모세에게 무엇을 원하셨던 것일까?
아무리 민족애, 동족애라는 대의명분이 있어도,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내가 아무리 교회에 열심을 내어도 그것이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한, 나로부터 시작된 열심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과 같은 경우이리라.
그래서 모세의 미디안 광야 40년은 자신이 깎이고 무너지는 비워지는 시간이었다.
복음을 몰라도 얼마든지 신앙적 열심을 낼 수 있다.
죄악 된 인간이 자기의 욕심을 하나님의 비전이라고 포장하여 얼마든지 열심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을 알게 되면 나의 비전, 나 중심의 열심이라는 것을 경계하게 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열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기에 나의 비전과 열심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를 붙들 때 가능하다.
나의 비전과 열심 속에 감추어진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씀에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며 그에 순종하는 것이다.
모세의 미디안 광야 40년, 그가 스스로가 나그네라고 했던 그 시간은 십자가의 삶을 사는 나의 시간이다.
나는 이 땅에서 믿음의 나그네로서 다만 십자가만을 붙잡고, 나를 완전한 하나님 나라로 이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그 열심에 순종하기를 원하고 또 원한다.
십자가로 나의 열심과 자기 사랑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하나님의 열심으로 다시 건설하고 심가를 원한다.(렘1:10)
(묵상 기도)
주님,
나의 열심을 기뻐했던 때,
모세처럼 낭패를 당하고는 하나님을 원망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자랑했던 나의 열심을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을 다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을 알기까지 행동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사탄이 제시하는 그럴 듯한 이유에 속아 넘어가지 않게 하옵소서.
십자가만을 붙잡고
하나님의 열심이 저를 불붙이기까지 잠잠히 기다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