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2: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2: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2: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2: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2: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2: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1. 자유하게 하는 복음을 들은 갈라디아 성도들은 속히 다른 복음 즉 율법주의에 빠졌다.
1) 갈 2:11-14절은 율법주의를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2) 베드로까지 율법주의자들에게 밀려서 외식하게 된 것을 바울은 책망했다.
2. 베드로는 이방 지역인 안디옥교회에 와서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1) 그런데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 즉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오자 식사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베드로는 할례자들이 자신이 이방인들과 식사하는 것을 보는 것을 두려워했다.
2) 유대인의 정결 규례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식탁 교제는 엄히 금지되었다.
- 이것을 아는 베드로는 그들을 의식하여 이방인들과 식사를 폐하고 물러간 것이다.
3) 그러자 다른 유대인들도 베드로와 같이 외식하였고,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외식에 가담하였다(13절).
3. 바울은 이를 두고 베드로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갔다고 말한다.
1)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사도 베드로마저도 율법주의자들이 베드로에게 항의할 것을 두려워하여 이방인과 식사하는 자리를 떠났다.
2) 베드로는 욥바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바구니에 담긴 것을 먹으라는 환상을 본 다음에 고넬료의 집에서 복음을 전했고, 고넬료 집에 성령이 임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복음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알았고 증언한 자다.
3) 또한 베드로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바울이 이방인에게 전한 복음을 야고보와 함께 공인해 주었다.
4) 그런 베드로가 율법주의자들을 두려워하여 율법주의자처럼 행동했다는 것은 놀랍다.
- 율법주의는 이렇게 뿌리가 깊고, 율법주의자들의 영향력은 교회 안에 강하였다.
5) 베드로가 외식하자 같이 있던 유대인들 특히 바나바까지도 외식하게 되었다.
- 외식하다는 “핑계 삼아 ~에 순응하다”라는 뜻이다.
4. 한편 바울은 율법주의를 벗어나 복음의 터위에 분명히 선다.
1) 기둥 같은 베드로였지만 “복음의 진리”대로 행하지 아니한 것을 보고 많은 사람 앞에서 베드로를 책망하였다.
2) 그런데, 바울의 책망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베드로가 이 책망을 받아들였음을 뜻한다.
-예수님의 수제자였고, 기둥 같은 사도였지만 베드로는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는 바울의 책망을 받아들인다. 사람들 앞에서 책망 받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겸손으로 복음을 수호한다.
3) 이렇게 책망하는 바울과 책망 받는 베드로는 함께 진리의 복음 앞에 함께 선다.
- 책망하는 바울도 담대하지만, 기꺼이 책망을 받아들이는 베드로도 겸손하다.
5. 베드로도 받아들인 복음의 진리라고 하면서 15-21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여 십자가의 도를 정점으로 한 은혜의 복음을 선포한다.
1)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2)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 저질러지는 죄를 율법과 할례의 준수로 해결하라고 가르쳤다.
3) 그러나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행함으로 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된다.
6. 율법을 철저히 지켰던 바울이지만 율법의 행위가 자신을 의인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철저히 경험하였다.
1) 이제 와서 그가 헐었던 것(율법)을 다시 세운다면 그는 자신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다.
2) 그런데 어떻게 그가 헐어버린 율법을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시 요구하겠는가!
7. 19-20절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고민한 문제에 대한 해답이다.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가 어떻게 죄인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2)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가 의롭게 사는 것은 율법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것으로 해결된다.
8. 바울은 자신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는 모범적인 예로 설명한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① 나는 율법에 대하여 이미 율법에 의하여 죽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위한 것이다.
②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있다.
③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다.
④ 내가 지금 육체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아들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9. 19절에서, “율법에 대하여 율법에 의하여 죽은 나”는, 20절,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나”이다.
1) 즉 율법을 지켜 의로워지려고 하는 “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2) 율법을 지켜 의로워지려는 “나”는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혔으므로 더 이상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지려고 해서는 안된다.
3) 19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나”는, 20절,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나”이다.
-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는 나”이다.
10. 죄의 세력은 선을 행함으로,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워지고 선하게 되라고 속인다.
1) 죄의 세력은 율법이 주어지면 즉시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우리를 속이고 육신으로 행하게 하여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롬 7장).
2) 이때 우리는 육체(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자기주장의지)가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갈 2:19),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심을 믿어야 한다.
3) 그리고 다시 은혜의 복음, 주님이 이루신 의를 믿고 감사해야 한다.
-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주님의 은혜이고, 우리가 선을 행하게 된 것도 주님의 은혜다.
갈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11.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폐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여서는 안된다.
1) 내 힘으로 의로워지고, 내 힘으로 선해지고, 내가 이것을 이루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는 것이다.
2)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믿음을 유지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의롭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선을 행하는 것도 주님의 은혜요,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도 주님의 은혜요. 은혜로 시작하여 은혜로 마치게 하는 것이 복음이다.
3) 은혜로 사는 자는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를 감사하며 주인으로 인정한다.
12.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물론이고, 베드로와 바나바조차 “철저히 은혜”라는 복음의 진리에서 떠나도록 유혹을 받고, 압박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주의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1) 나는 율법주의가 되지 않는다. 나는 은혜로만 산다라고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2) 날마다 은혜의 복음 앞에 나아가서 “날마다 은혜입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위에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