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4일(금)
* 시작 기도
주님...
이 시간 주의 말씀을 사모하여 주님의 발치에 앉습니다.
이 종의 영을 만지사 어두워진 영을 밝게 하여 주시고 죄의 때로 얼룩진 나를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욕망에서 벗어나 자유하도록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고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만물 위를 소망하는 자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을 빚으사 주의 영으로 조명하여 주시고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할 수 있도록 나를 이끄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딤전 3:1-13
제목 : 교회의 직분이 자아실현의 도구가 되지 않기를...
1.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 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8.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 나의 묵상
오늘 말씀은 교회 안에 직분자를 세우는 기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1절에서 감독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감독이라 함은 장로를 말하는데 오늘날 목사와 장로를 공히 포함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 교회의 문제점은 목사를 뽑는 과정에 있다 하겠다.
옛날에는 목사를 말 그대로 청빙하여 오는 절차를 밟아서 교회를 위임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목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어느 교회에 담임목사 자리가 비면 목사 청빙 공고를 낸다.
말이 청빙이지 사실은 모집이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 모집 공고를 보고 담임을 하려는 목사들이 서류를 제출한다.
일단 그 교회 담임목사 청빙위원회에서 그 서류들을 살펴본 후에 몇 사람을 추려낸다.
그런데 대부분 외국 유학파나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 등 일명 세상적으로 스펙이 좋은 사람이나 또는 인맥을 동원하여 그렇게 담임목사를 뽑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해서 3-4사람을 후보로 올려서 그들의 설교를 들어보고 가장 설교를 잘 하는 사람, 성도들의 구미에 맞는 사람을 공동의회를 통해서 뽑게 된다.
그런데 이런 과정 자체가 지극히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담임목사를 선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없는 자를 들어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미련한 자를 들어서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했는데, 교회는 있는 자 강한 자 지혜로운 자를 뽑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설교 한 번 듣는 것으로 그 사람의 면면을 어떻게 살필 수 있단 말인가?
교회가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절차는 말 그대로 청빙하여 오는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유월절 어린 양을 잡을 때에도 눈에 보기에 좋은 것을 바로 잡지 않았다.
유월절이 3월 14일인데 4일 전 10일에 선택된 양을 따로 가두어놓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그 양에 어떤 결점이 있는지 없는지 살핀 다음에 14일에 잡는 것이다.
그래야 유월절 제사에 합당한 제물이 된다.
(출 12:3-7)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열 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오늘 분문은 교회 내의 모든 직분자를 뽑는데 기준이 되는 말씀이다.
이 기준은 아주 엄격하다.
이 세상에서 이 기준에 100% 부합한 사람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기준에 가까운 사람을 뽑아야 함을 말한다.
그래야만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가 바로 세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사를 비롯하여 장로나 집사나 권사 등 이런 직분자들을 인간적인 기준을 가지고 세우려는 시도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문제는 이런 직분이 마치 교회 안에 서열을 정하는 것이 되어서, 마치 계급과 같이 취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장로에 선출이 되면 자기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다는 것으로 알고 어깨가 으쓱해지는 반면 선출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 한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교회에 불란을 일으키고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체계론이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여기에 보면 제일 낮은 5단계가 생존의 욕구이다.
이는 기복적인 신앙으로써 예수를 믿으면 잘 살고 복을 받는 다는 신앙의 단계이다.
이것이 어느 정도 충족이 되면 안정의 욕구인데 이때는 안정을 위해 부르짖고 응답받는 신앙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기도원에서 밤낮 부르짖으면서 기도하고 응답받음으로 안정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안정을 얻게 되자 이보다 한 단계 위인 친밀감의 욕구를 원하게 된다.
생존과 안정을 위해 사는 동안 마음의 문제를 방치하고 산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생존과 안정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면 자신의 마음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상처와 아픔 등을 치유하기 위하여 90년대부터 많은 목회자들이 이 사역에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물론 지금 당장 힘들고 아픈 성도들의 마음을 만져주고 위로하여 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목회의 궁극적인 사역이 아니라 그런 성도들을 영원한 아버지 집으로 인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 교회에 숫자를 많게 하는 양적 부흥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참된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영생을 누리게 하는 일은 잘 알지 못하고 관심을 갖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친밀감의 욕구가 채워지면 그 위의 단계인 자아존중의 욕구를 원하게 된다.
이 자아존중의 욕구는 기독교인의 경우 직분과 상당히 관련되어 있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집사나 권사 또는 장로와 같은 직분을 얻느냐 못 얻느냐에 따라 자아존중의 욕구가 충족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교회 일에 열심을 내고 충성한 사람들이 교인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존중 받아서 그런 직분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경우는 나름대로 열심을 냈다고 했는데 이런 직분을 얻지 못하면 시험에 들거나 그 입에서 원망 불평을 쏟아내기도 한다.
좀 심하면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런 직분을 얻지 못하면 마치 신앙생활을 실패한 것인 양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가치인 영생을 알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이처럼 땅의 것에 천착하여 자신이 더욱 추해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 최상위의 욕구는 자기실현의 욕구이다.
이 욕구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원초적인 욕구를 말한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의로 일을 하며 자기를 주장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나타나게 된다.
주로 목회자들에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목사나 장로, 또는 집사나 권사 등 교회의 직분으로 자신이 인정받으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는 것이며 이 땅에 속한 것, 만물 안의 것으로 만족하며 살려고 신앙을 이용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목회자는 복음을 통하여 성도들을 진리인 복음을 전하여 궁극적 가치인 영생을 얻어 누리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목사들은 이런 진리를 알지 못하거나 때로는 성도들과 타협하여 이 진리를 망각하기도 한다.
성도들은 복음을 통해 생명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고 날마다 그곳으로 가지 않으면 교회 안에서 직분을 얻으려는 이 일이 오히려 추태를 보이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목사로써 나의 삶을 돌아보면 정말 부끄러워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다.
사실 이런 복음의 진리를 모를 때는 내가 잘 하고 있는 줄로 착각하였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나니까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부교역자로 섬길 때 정말 탁월하게 사역을 하였다.
열심으로는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심을 내었다.
맡는 부서마다 숫자적인 부흥을 이루었다.
유년부는 자리가 비좁을 정도로 아이들을 많이 모았다.
매주 토요일이면 교사들이 모여서 기도회를 하고 학교 앞으로 전도를 나갔다.
학생회를 맡을 때는 이 아이들과 눈높이를 같이 하여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놀았다.
그랬더니 어느새 눈에 뜨게 숫자적으로 부흥을 이루고 있었다.
청년들을 맡을 때는 주일을 비롯하여 하루가 멀다하고 청년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잘 먹였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기도도 하고 성경통독도 하였다.
내가 맡는 부서마다 부흥과 성장을 이루었다.
그래서 담임목사에게 인정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일반 성도들도 나를 인정하며 존중해 주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어깨가 으쓱으쓱해졌다.
내가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한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존중받으면 힘이 나서 더욱 열심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는 자아존중의 욕구와 자기실현의 욕구의 중심에 서 있던 자이다.
나는 교회를 개척하고 설교를 하고 나면 성도들에게 한 마디를 듣고 싶어 하였다.
“목사님 은혜 받았습니다.”라는 말이다.
이 말 한 마디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설교 후에 인사하면서 이런 말 한 마디 없으면 풀이 죽는다.
어깨에 힘이 빠진다.
‘오늘도 설교 죽 쑤었구나’라는 자괴감 때문에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실상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복음과는 거리가 먼 사역을 하였다.
복음은 제대로 전하지도 못했다.
알면서도 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매 번 설교 때마다 무엇을 전해야 할지 그것이 고민이었다.
그래서 이 책 저 책 뒤지기도 하고 이 설교 저 설교를 들추어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목사의 궁극적 사역은 자기실현을 도와주는 그런 사역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여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얻어서 영생을 누리도록 하는데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말씀묵상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나는 어떤 사역보다도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물론 한계는 있다.
모든 성도들의 신앙 수준이 다 같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면 다 알아 듣지 못하는 한계이다.
그렇다고 타협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공적인 설교를 통해서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고 개인적으로 만날 때는 그들의 신앙 수준에 맞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의 신앙이 한 단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가 먼저 이 신앙을 유지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다.
주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내가 생명으로 살 수가 없다.
그래서 매일 말씀 앞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말씀이 나를 살리기에 그 말씀 앞에 앉아 주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말씀이 나를 위로하며 말씀이 나를 살리는 양식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묵상을 시작할 때는 마음이 무겁고 불안하였으나 지금 묵상을 마치려 할 때는 나도 모르게 안정이 되어 있다.
주께서 만져주시기 때문임을 나는 잘 안다.
그래서 이 말씀이 나의 곤란 중의 위로가 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은 나의 모든 것입니다.
말씀이 나의 생명임을 고백합니다.
염려와 불안 속에서 묵상을 시작하였으나 나의 상황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묵상하는 중에 나를 만지시나이다.
나의 심령이 말씀묵상을 통하여 쉼과 회복을 누리오니 감사하나이다.
주님,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은 나의 양식이기에 나는 생명의 양식을 먹고 살기 원합니다.
오셔서 나를 온전히 살게 하소서.
양식이 존재를 결정하오니 나는 개밥을 먹는 자가 아니오며 개밥을 던져주는 자도 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의 말씀이 나의 양식이 되어 그 안에서 생명을 얻게 하시고 이 복음을 듣는 이들에게도 생명의 양식을 전하는 주의 종이 되게 하소서.
이 사역으로 나의 자아실현에 이용하는 도둑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나는 없어지고 오직 주님만 드러나게 하소서.
나는 가난하나 주님으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