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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으로 충만한 자 되어 (욥32:11~22)

작성자묵상여행|작성시간21.12.11|조회수344 목록 댓글 0

(시작 기도)

주님,

토요일입니다.

주일을 잘 준비하게 하시고

오늘의 일정 위에도 함께 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행동으로 생각으로 죄만 짓는 존재가

주님의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케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실 때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1. 보라 나는 당신들의 말을 기다렸노라 당신들의 슬기와 당신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노라

12. 내가 자세히 들은즉 당신들 가운데 욥을 꺾어 그의 말에 대답하는 자가 없도다

13. 당신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진상을 파악했으나 그를 추궁할 자는 하나님이시요 사람이 아니라 하지 말지니라

14. 그가 내게 자기 이론을 제기하지 아니하였으니 나도 당신들의 이론으로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리라

15. 그들이 놀라서 다시 대답하지 못하니 할 말이 없음이었더라

16. 당신들이 말 없이 가만히 서서 다시 대답하지 아니한즉 내가 어찌 더 기다리랴

17. 나는 내 본분대로 대답하고 나도 내 의견을 보이리라

18. 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내 영이 나를 압박함이니라

19. 보라 내 배는 봉한 포도주통 같고 터지게 된 새 가죽 부대 같구나

20. 내가 말을 하여야 시원할 것이라 내 입을 열어 대답하리라

21.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리니

22. 이는 아첨할 줄을 알지 못함이라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이가 속히 나를 데려가시리로다

 

(본문 주해)

11~14절 : 지금까지 엘리후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들었다. 엘리후가 자세히 들으니 친구들 가운데 욥을 꺾어 그의 말에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엘리후는 어른들(욥과 세 친구들)이 할 말을 찾는 동안에 줄곧 말을 참고 기다렸다.

세 친구는 당시의 지성을 대표했던 자들로 보이며, 그들의 지혜는 오랜 연구와 조상 때로부터 물려온 전통 등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세 친구들은 욥의 주장을 꺾어 하나님의 정의로움을 변호하지 못함을 엘리후는 알았다. 그리고 겨우 ‘하나님만이 욥을 추궁할 수 있다’는 변명 따위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13절)

 

“그러고서도 어떻게 지혜를 발견했다고 주장하실 수 있으십니까? 세 분께서 이 일에 실패하셨으니, 내가 이제 욥 어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대답을 들으시도록 하겠습니다.”(13절, 새번역)

 

엘리후는 변론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세 친구의 처신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욥을 향하여 변론을 시작한다. 물론 욥이 엘리후에게 직접 말을 걸어온 것은 아니지만 엘리후는 세 친구와 다른 방식으로 욥에게 말하겠다고 다짐한다.

 

15~20절 : 엘리후의 마음 속에는 할 말이 가득하였다.

욥의 세 친구들이 할 말이 없었던 것에 반해, 엘리후는 온통 하고 싶은 말과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해야만 하는 말들로 꽉 차 있었던 것이다.

마치 엘리후 자신이 정말 터지기 일보 직전에 있는 발효된 포도주의 가죽 부대처럼 되었다는 생생한 표현을 하고 있다.

엘리후는 자신의 발언이 하나님의 숨결에서 나온 지혜라고 주장하였다.(8절)

그는 오랫동안 참고 견디었으므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을 하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불붙는 예레미야의 심정과 바울의 심정이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20:9)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16)

 

21~22절 : 엘리후는 논쟁을 통해서 친구들이든 욥이든 누구의 편을 들어서 사람의 호감을 사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는 정직하고 공정하게 말함으로써, 오직 하나님의 판단에만 자신을 맡길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만일 아첨하면 자신을 지으신 이가 속히 데려가기를 원한다고 할 정도로 자신의 행동 기준을 하나님께 두려고 한 것이다.

이는 엘리후가 자신의 연설이 하나님의 명예를 변호하기 위한 신성한 사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나의 묵상)

오늘 본문의 엘리후를 자기의가 가득한 자로 여김으로, ‘말을 많이 또는 함부로 하지 말고 아끼라’는 차원의 해석을 듣는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엘리후가 그렇게 답답하며 ‘이제는 말해야겠다’ 하고 나선 것은 자기의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발언이 하나님의 숨결에서 나온 지혜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8절)

이제 막 엘리후의 변론이 시작되어 아직 그의 연설을 다 듣진 못했지만, 사실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와 다르고, 또 욥과도 다르다.

 

욥과 세 친구들은 재앙을 바라보는 관점이 과거 지향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욥은 과거에 하나님의 주체성을 인정하며 살았기 때문에 지금의 재앙에 자신의 책임이 없다는 것이고, 세 친구들은 과거의 죄악 때문에 지금의 재앙이 온 것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엘리후는, 미래에 하나님께서 욥에게 바라시는 모습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고난을 연단과 시험으로 주시는 것이라는 관점인 것이다.

엘리후의 이러한 관점은 하나님이 나타나시기 전까지 욥과 세 친구들이 알아야 일이요, 꼭 필요한 과정이었으리라. 그 증거가 하나님께서 엘리후에 대하여 나무라지 않으시고 바로 엘리후의 말을 받아서 등장하신다.(37~38장)

 

그러니 엘리후가 어찌 말하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새 술이 가득 담긴 포도주 부대가 터지듯이, 내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습니다. 참을 수 없습니다. 말을 해야 하겠습니다.”(19~20절)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의와 정당성을 변론하고자 하기에 말이 많다. 요즘에는 말 못 하는 사람들이 없구나 싶을 만큼 말을 많이 하고 또 잘 한다.

거기다 특히 교회 다니는 사람들 ‘말 잘한다’고 비꼬는 말을 많이 듣는다.(물론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말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오늘 엘리후가 하나님의 숨결에서 나온 지혜 즉 영이 자신을 압박하기에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그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엘리후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하고자 한 그 말은 욥과 세 친구를 향한 하나님을 변호하는 말이다. 물론 하나님은 그 누구의 변호도 필요치 않으신 분이지만, 엘리후나 나의 입장으로는 꼭 해야만 할 말인 것이다.

내가 해야 할 말은 바로 복음의 말씀이다.

발효된 포도주로 터질 것 같은 가죽부대가 된 심정으로, 예레미야의 불붙는 심정으로, 만일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있으리라 고백한 바울의 심정으로 전해야 하는 복음의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간다.

성령님께서 나로 하여금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게 하셔서 주님과 교제하게 하시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오직 복음으로 충만한 자, 아들의 생명으로 사는 자가 되어 이 복음의 말씀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묵상 기도)

주님,

엘리후의 말을 들으며,

예레미야의 불붙는 심정을 이해하며,

바울의 복음 전파 사명을 배워갑니다.

 

다른 할 말은 없고

복음만을 풍성하게 전할 수 있도록

복음으로 충만한 자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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