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청년부 설교를 잘 준비하게 하시고
오늘 모임 위에도 은혜를 더하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저의 부정성과 교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정결한 마음과 정직한 영으로
오늘도 아버지 품속의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35.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38.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본문 주해)
24~27절 : 제자들 사이에서는 또다시 '누가 크냐'라는 논쟁이 발생한다. ‘또’ 라고 하는 것은 전(눅9:46~48)에도 그랬기 때문이다.
이번 논쟁의 발단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자신들의 충성심을 과시함으로써 자신은 결코 배신자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데서 시작된 듯하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방인의 임금들’은 세상 권력을 잡은 자들을 가리킨다. ‘은인’(恩人)은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라는 뜻으로서,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 군주와 로마 황제와 신들에 대하여 사용되던 호칭이라고 한다. 은인에게 후원을 받는 자들은 그 권위를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찬양해야 할 의무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방적인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주고 받는 관계인 것이다. 즉 아부한다고 은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세상 나라에서는 이러한 권력자들이 스스로 세상의 주인이 되어 백성들을 종처럼 만들어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세상 나라의 질서와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정반대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말씀과 삶의 모범을 통해 제자들에게 섬기는 자가 큰 자인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28~30절 : 지난 3년 간 주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소망의 말씀이다,
제자들은 아직 알아듣지 못하지만, 연약한 제자들에게 앞으로 하나님 나라 건설을 맡기시겠다는 것이다.
‘내 나라’는 예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즉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섬김의 권세를 맡기시고,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그와 함께 먹고 마시는 복을 약속하신 것이다.
30절의 ‘다스림’은 예수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시는 그 섬김으로 다스리심같이, 제자들에게도 같은 모습을 기대하시는 것이다. 즉 섬김으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31~34절 : 예수님께서 사탄의 역사에 흔들릴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제자들의 연약함을 측은히 여기시며 베드로를 용서하시는 사랑의 말씀을 하신다.
예수께서 ‘베드로’ 대신 ‘시몬’이라는 본명을 사용하신 것은 베드로가 육신의 연약함으로 예수를 부인하게 될 것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실수에서 돌이켜 회개한 후에는 그와 같이 사탄의 공격을 받게 될 형제들의 믿음을 굳게 하도록 요구하시는 말씀이다.
그러자 베드로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의 충성을 강하게 주장하며 옥에도 가고, 함께 죽을 수도 있다고 호언장담을 한다.
이런 베드로에게 주님은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을 말씀하신다. 주님의 예언은 54~62절에서 그대로 성취된다.
35~38절 :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직전에, 전대와 주머니와 검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복음 전파를 위해 파송하셨을 때(눅9:2, 눅10:1)는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에 대하여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빈손으로 복음을 전하러 다녀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져서 사람들이 복음에 대하여 적대하게 될 것이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특히 예수님께서 검을 준비하라고 하시는 말씀은 ‘불법자의 동류라고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이 무죄한 자가 죽었다는 말이 나오지 않고, 불법자의 증거가 나와야 된다는 것이다.
‘범죄자 중의 하나로 헤아림은 입었다’는 말씀(사53:12)의 성취를 위하여 예수님은 검을 준비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에 제자들이 칼 두 자루가 있다고 한다. 제자들은 지금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무장봉기를 일으키시고자 하는 줄로 착각한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넉넉하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칼 준비가 넉넉하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음을 나타내신다.
(나의 묵상)
예수님께서 고난 받고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는 중 배신자에 대해 언급하시자(21~22절) 제자들은 각각 자기의 충성심을 내세우며 배신자가 되지 않을 것과 그것을 넘어서서 ‘누가 크냐’는 주제로 다투며 그들의 대화가 삼천포로 빠진다.
그렇게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이지만 주님은 세상 나라와 정반대인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말씀해 주신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신만만한 베드로에게 ‘너를 위해 내가 기도하였다’ 하시니 자존심 상한 베드로는 특기를 살려 호언장담을 한다.
주님은 베드로가 그날 밤에 세 번 부인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십자가 사건 이후 전과는 달라진 상황으로 복음 전파의 어려움을 예견하시고 잘 준비하라는 말씀을 하시자, 제자들은 또 엉뚱한 반응을 한다.
심각한 상황 분위기에도 무감각한 제자들이 서로 충성심을 경쟁하며 누가 크냐고 다투는 모습과 제자들의 대표격인 베드로의 호언장담하는 모습, 그리고 계속해서 주님과 동문서답하는 이들의 모습이 나는 너무너무 이해가 된다.
동병상련이라고.....그 모습들이 내 모습이고, 그런 모습은 지금도 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품어주셔서 드디어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도가 되게 하신 주님의 신실하심, 그것만이 성도의 희망임을 생각한다.
그것은 주님께서 지금도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십자가만 지시고 ‘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하거라’ 하시지 않고, 끝까지 영원히 나를 책임을 지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
어제, 복음충신교회 조목사님의 요한복음 강해설교를 복생반과 묵상교제를 하는 지체들과 공유하였다.
가슴이 뜨겁고 눈물 흘리게 하는 그런 감동의 설교라서 공유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생명의 교제를 누리는 것이 얼마나 당연한 것이며, 그것은 창세전 삼위 하나님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함을 가르쳐 주시는, 아주 중요한 내용을 많이 언급하셨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참 중요한 표현으로 다소 막연했던 것들을 분명히 알게 하시는 부분이 많았다.
그 영상을 공유한 친구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주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만물 위의 삶을 누리면서 살면 세상이나 환경이 이렇든 저렇든 마냥 기쁠 텐데, 수시로 내 생각과 계획이 나를 다스리는 것을 보게 되네’ 했다.
나는 ‘우린 늘 그런 존재이니...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잖아~~~그런 우리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속으로, 그 영광스런 관계 속으로 이끄시려는 주님의 신실하심만 믿고 나가자’고 하며 교제하였다.
주님과 함께 그렇게 시간을 보냈어도 여전히 엉뚱한 소리를 하는 제자들과 만물 위를 보지 못하고 자주 자신의 생각과 계획대로 살려고 하는 내가 이상할 것은 조금도 없다. 태어나기를 그런 존재로 태어난 것이니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베드로가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다 소용없는 헛소리일 뿐임이 그 밤 당장에 증명이 되지 않았는가?
그런 우리-감각 없고 부실하고 연약한 우리-를 주님께서는 다 아시지만 끝까지 신실하게 인도하시는 것이다.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다는 주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감격스럽고, 그 말씀에서 이 세상 최고의 안정감을 누린다.
주님의 기도 때문에 베드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자가 되었다. 큰 소리 치는 헛껍데기에서 단단한 생명의 알맹이가 된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신 주님이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신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것을 믿기에 오늘도 나는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린다.
(묵상 기도)
주님,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영 엉뚱한 행동과 말을 해대는 저를 오래 참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동문서답하는 제게 ‘족하다’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는
그것이 응답인 줄 알고 좋아하던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 많은 세월을 참아주셔서 오늘에 이르렀지만
저는 여전히 동문서답하는 자인 것을 압니다.
우매한 저를 깨우쳐 주시옵소서.
저의 결단과 결심은 참으로 부질없는 것이요,
오직 주님의 신실하심만을 믿고 의지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