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0일(금)
*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허락하셔서 주님과 동행할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나의 생명이요 나의 모든 것 되시는 주님을 이 시간 찬양합니다.
너무도 쉽게 세상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나를 봅니다.
나의 의와 교만으로 인함이오니 나의 의는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의를 힘입어 나아가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님이 주시는 햇빛이 구름 사이를 뚫고 비칩니다.
이 빛이 세상을 비추듯 주의 말씀의 빛이 나의 심령을 가득 채우게 하소서.
이 하루도 성령께서 온전히 주관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고전 16:13-24
제목 :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 이 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18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20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21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 나의 묵상
바울은 이제 고린도교회를 향한 편지를 마무리 하면서 간절한 당부와 함께 인사를 한다.
깨어 믿음에 견고하게 서서 용감하게 강건하여라.
여러분이 행하는 모든 일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행하라.
여러분들에게 당부하는데 스데바나 집안의 사람들은 아가야 지방에서 제일 처음 예수를 믿은 그리스도인이며 또한 성도들을 잘 섬기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나 이들과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순종하여라.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가 내게 와서 내가 너무나 기쁘다. 여러분을 만나지 못해 못내 아쉬웠었지만 이들이 와서 그 아쉬움은 물러가고 내 마음이 시원하여졌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의 수고를 여러분들이 꼭 알아주기 바란다.
아시아의 모든 교회들이 여러분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 그리고 그 집에 있는 가정교회의 성도들이 여러분에게 간절하게 문안한다.
모든 형제들도 여러분에게 문안인사를 하기에 여러분은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필로 작성했지만 이 부분은 나 바울이 직접 친필로 여러분에게 문안을 한다.
만일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이다.
마란-아타, 주께서 지금 여기에 임하셨도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여러분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할 것이다.
오늘 본문 13절 말씀이 내 마음을 울린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잠에서 깨어날 것과, 믿음에 견고하게 설 것이며, 남자답게 강하라.
잠에서 깨어날 것은 영적으로 잠자는 자가 되지 말고 이제는 깨어 있으라는 말인데 깨어 있어야 무슨 일이 일어나도 대처를 빠르게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공중권세 잡은 자 곧 마귀에게 여지없이 지고 말 것이다.
(벧전 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믿음에 굳게 선다는 것은 곧 주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주님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또한 주님의 구속사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믿음은 상당히 관념적이고 지식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믿음에 굳게 서라고 할 때는 사실 어찌해야 할지 애매할 때가 많다.
나는 믿는다는 말에 대해서 어떤 실제적인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래 내 마음으로 믿으면 되지.” 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믿음은 결코 관념적이거나 지식에 그치는 말이 아니라 가장 실제적인 말이다.
물론 사람을 믿는다거나 다른 우상을 믿는다고 할 때는 구체성이나 실제가 없지만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때는 믿는다는 뜻을 가진 believe라는 타동사에 전치사 into가 따른다.
일반적으로 believe는 타동사이기 때문에 전차사를 취하지 않지만, 이 believe가 예수님이나 그의 구속사건과 함께 나올 때는 반드시 into라는 전치사를 취하게 된다.
여기서 믿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확정지어 준다.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사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다는 말은 내가 주님과 연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그의 구속사건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로마서 6:4절 말씀처럼 주님의 죽으심과 함께 나도 죽고, 그와 함께 장사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으로 행하는 것이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바로 믿음인 것이다.
따라서 믿음에 굳게 선다는 것은 날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나의 옛 사람을 못 박아 죽이는 것이며, 나에게 감당하기 힘든 환난과 고난의 상황이 닥친다 할지라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상황을 무덤으로 알고 그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무덤은 주님께서 나의 잠자는 영혼을 깨우기 위해서 주신 심판이며 ‘주님의 심판은 옳습니다’ 하고 받아들일 때 그 심판이 나를 깨우며 세우는 은혜의 선물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그런 무덤의 상황에서 매일 말씀 앞에 서는 일 외에는 말이다.
그렇게 할 때 주님이 먼저 그 무덤에 찾아오셔서 나와 함께 말씀으로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내가 잠잠히 무덤에 거할 때 주님은 무덤에서 성소를 지으시고 그 성소에서 주님과 내가 말씀으로 교제와 사귐을 갖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의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새 생명을 주시며 그 생명으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모든 상황을 초월하여 이겨낼 수 있으며 생명이 죽음을 삼키게 되는 것이다.
(고후 5: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생명은 곧 하늘의 생명이며 그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의 기쁨이 땅의 모든 고통을 넉넉히 삼킬 수 있게 한다.
이것이야 말로 믿음에 견고하게 서는 것이다.
세상의 이런 저런 상황으로 인하여 일희일비하지 않고 견고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항상 소망을 잃지 않고 혹여 연약한 육신으로 인하여 넘어질지라도 예수를 힘입어 다시 일어나 담대하게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인 것이다.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그리고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권면한다.
남자답게 강건하라는 말은 용감하고 강하라는 말이다.
물론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진정한 용감함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이다.
나와 같은 목사요 선교사는 사람을 두려워하여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말(설교)을 전하기가 쉽다.
그러나 이는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타협하는 것이며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창세전부터 영생이며 이 영생은 오직 복음을 통하여 얻을 수 있다.
(요 6:40)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딤후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나는 사실 복음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믿음은 관념적이고 극히 지식적으로 알고 있어서 복음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극히 추상적인 단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이야기 하였으며 또한 믿음에 굳게 서서 강하고 담대하게 살라고 설교하였다.
나도 알지 못하는 말을 지식과 관념으로 설교하였던 것이다.
이런 나의 지난날의 모습을 보면서 성도들에게 정말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 때는 나의 설교가 성도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형식의 것이었으며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은 언감생심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심판을 선포한다고 해서 내가 성도들을 책망하고 꾸짖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설교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그 자체가 용감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목사는 성도가 듣기 원하는 설교를 하는 자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들려주기 원하시는 말씀을 선포하는 자인가?
두 말 하면 잔소리 아니겠는가?
나는 가끔 성도들에게 이 질문을 한다.
성도들은 100이면 100 다 후자를 이야기 한다.
당연히 하나님이 들려주시기 원하는 그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그대로 받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 질문은 당시에 내가 목회하던 교회의 성도들만 아니라 예수 믿는 모든 사람에게 물어봐도 정답을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러나 대답은 그렇게 해도 속 마음은 그래도 내가 원하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위로의 말씀, 격려의 말씀, 축복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편해지고자 하는 것이 사람들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위로 격려 축복의 말씀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무덤이 없는 위로 격려 축복은 거짓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복음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울이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과 똑같다.
(삼상 15: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기 십상이다.
나는 복음을 알고 지금은 베트남 선교사로서 언제든지 복음 외에는 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복음이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 생명은 얻어도 그만 안 얻어도 그만이 아니라 반드시 얻어야 영생을 누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요 3:3,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이처럼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 곧 거듭남이요 거듭남이 곧 아들의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는 말씀과 성령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친히 물과 성령으로 태어날 것을 니고데모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나는 오늘도 이 나라를 누리며 내 안에 영생의 기쁨이 넘친다.
주의 나라가 마란-아타, 주님이 내 안에 임하여 그 나라가 이루어지듯 오늘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생명으로 날마다 그 나라를 누리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마란-아타, 주님께서 지금 여기에 임하셨나이다.
마라나-아타, 주여 오시옵소서.
주님을 사모하여 기다리오니 지금 현재적으로는 복음을 통하여 당신의 생명을 누리는 자로 천국을 살게 하옵소서.
또한 완전한 주님의 나라가 주님의 재림과 함께 부활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믿사오니 그 나라를 속히 이루어주옵소서.
나는 불완전하여 너무나 쉽게 넘어지고 자빠지나이다.
이런 나를 주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피값으로 사셨사오니 연약하여 넘어지나 아주 넘어지지 않는 것은 주님의 신실하심 때문임을 믿나이다.
오늘도 험난한 세상에서 사는 동안 영적 잠에서 깨어 믿음에 견고히 서게 하시고 주님과 늘 동행하여 그 안에서 연합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용감하여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는 주의 종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사랑하고 또한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