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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알기에 (고후1:23~2:11)

작성자묵상여행|작성시간22.07.09|조회수144 목록 댓글 0

(시작 기도)

주님,

주일을 준비하는 토요일입니다.

토요 새벽기도로 모여 함께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재개발 현장을 늘 훤히 볼 수 있는 높은 건물로 교회를 이사하게 된 것도 참 감사합니다.

늘 눈으로 보고, 늘 간절한 마음이 되니 언제나 기도하게 하십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저의 편협함과 부정성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오니 정결케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3.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2:1.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10.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본문 주해)

23~24절 : 고린도의 성도들을 아끼는 바울 사도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그는 강조한다. 바울 사도가 지금 당장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게 되면 문제를 일으킨 자들을 치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먼저 편지를 보냄으로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는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바울 사도는 자신을 통해 복음을 믿게 된 고린도 교인들이지만 자신이 그들의 믿음을 주관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이 믿게 된 것은 바울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복음을 듣고 믿게 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단지 그들을 돕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안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2장 1~3절 : “다시는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여러분을 방문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나를 기쁘게 해줄 사람에게 슬픔을 안겨주는 셈이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만나서 기뻐해야 할 사람들을 만나보고 오히려 내 마음이 슬퍼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기뻐야 여러분도 기뻐하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을 찾아가는 대신에 그 편지를 써 보냈던 것입니다.”(공동번역)

 

바울사도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게 되면 책망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근심하게 하는 것이기에 근심하지 않고 기쁨으로 만나기 위하여 방문을 연기한 것이다.

 

4절 : 바울 사도가 쓴 ‘눈물로 편지’는 고린도전서와 후서 사이에 쓰인 편지로 A.D.56년 디도를 통해 고린도에 보내진 것으로 보이나 현존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아주 강력한 책망의 내용으로 추측되는 이 편지를 받고서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책망도 결국은 그들이 믿음에 서고 그 믿음으로 인하여 기쁨을 더하게 하고자 함이지 책망 자체가 목적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넘치는 사랑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5~9절 : 고린도 교회에 근심하게 하는 자가 있었지만 그는 바울만을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근심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이미 그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기에 이제는 그를 용서하라고 한다. 그 벌이란 많은 사람들이 그와 교제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를 용서하고 위로하라고 하는 것이다.

계속하여 그로 하여금 벌 받게 하면 많은 근심에 사로잡힐까 염려가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근심은 사망에 이르지만 이러한 근심은 회개하여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니, 이제는 그에게 사랑을 나타내라고 한다. 이것을 통하여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한다는 것이다.

 

10~11절 : 어떠한 죄인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은 없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자신과 같은 죄인을 용서하신 주님께서 자기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고 위로하고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단에게 속지 않기 위함이다.

사단의 궤계가 무엇인가? 사단은 늘 참소하는 자이다. 없는 것도 만들어내고 작은 것도 부풀게 하여 참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에게서 끊어내려고 하는 것이 사단의 궤계이다.

그러한 사단의 궤계를 이기는 것인 바로 용서의 위력인 것이다.

 

(나의 묵상)

바울은 하나님을 증인으로 내세울 만큼 고린도 교회를 사랑한다고 한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방문을 연기함으로 그들이 먼저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준 것이다.

감사하게도 ‘눈물의 편지’ 이후 고린도 교회가 회개했다는 소식을 디도를 통해 바울이 전해 듣는다.

고린도 교회가 회개함으로 바울은 기쁨으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와 바울의 관계가 마치 나와 주님의 관계인 것 같다.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면 바울 사도와 기쁨으로 재회할 수 없는 것처럼, 내 삶 속에 회개가 없다면 나는 주님과 기쁨으로 만날 수 없다.

 

또 내가 회개했을 때 주님은 얼마든지 용서해 주신다.

바울은 자신과 교회를 근심하게 했던 그 누군가를 이제 용서하라고 권면한다.

용서야말로 가장 큰 사랑의 힘이요, 사단을 이길 무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용서를 잘 할 줄 모르는 자이다.

꼭 기억했다가 되갚아 주어야 직성이 풀린다. 또 입으로는 용서했다고 하지만 마음에 여전히 품고 있을 때가 많다. 심지어 스스로 용서했다고 믿은 것들이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면 다시 살아나 나를 괴롭히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면 튀어나오는 생각과 말이 ‘어째 맨날 그 모양이냐!’ 한다. 그것은 과거의 ‘그 모양’을 꼭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주님께서 내게 이런 말을 하신다면 나는 너무도 암담할 것 같다.

그러면 ‘에라, 모르겠다. 마음대로 살자.’ 하든지, 스스로 목숨을 끊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그 길로 가듯이......

 

그런데 이유 없는 은혜를 받은 것이다.

복음이 귀에 들려지고, 복음으로 살게 되니 무한대로 용서하시는 주님 앞으로 매일 나아가는 것이다.

죄덩어리인 내가 염치없지만 주님의 보혈을 힘입어 용서를 구하니, 주님은 나의 더러운 모든 죄를 다 덮어주시고, 흠 없는 자라고, 의인이라고 하셨다.

‘전에도 그러더니...어째 맨날 그 모양이냐?’ 하시지 않는다.

 

이러한 은혜를 입은 내가 용서하지 못할 죄인이라고 여길 자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자신에게 해를 입히고, 훼방하는 자를 용서할 수 있음은 자신이 구제불능의 죄인이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즉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것이다.

 

회개는 내가 주님을 만나 기쁨으로 교제하기 위한 일이요, 주님을 기쁨으로 만나는 일은 생명을 공급받는 일이니 이것을 멈출 수는 없다.

내가 매일 회개함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자리는 말씀 앞으로 나아가 십자가를 붙잡는 자리이다.

이 자리에서 용서받은 나는 또 다른 이를 용서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일만 달란트 탕감 받아 놓고, 백 데나리온 때문에 누군가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못 되고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매일 말씀의 빛으로 인도함을 받는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6:12)

 

주님 앞에 회개하고 또 용서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은 주님과의 기쁨의 만남 때문이다.

영생의 교제인 매일의 만남.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실 때의 그 만남을 위해서.....

 

(묵상 기도)

주님,

얄팍하고 찰싹거리는 저의 영성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꼭 당해봐야 깨닫게 되는 어리석음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진정한 사랑과 용서.....

저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알기에

이 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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