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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신자에서 알맹이 신자로 거듭나다(고후 3:1-11).

작성자복음지기|작성시간22.07.11|조회수112 목록 댓글 0

2022년 7월 11일(월)

 

* 시작 기도

주님...

간밤에도 단잠을 주셔서 푹 자고 일어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하신 것처럼 베푸신 그 사랑 앞에 머리를 조아립니다.

이 종의 어디를 둘러봐도 주의 사랑을 입을 만한 가치가 없지만 주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그 큰 사랑을 베푸시오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두 손으로 입을 가릴 뿐입니다.

이 새벽,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이 하루도 성령 안에서 우리 주님과 깊은 교제와 사귐을 갖기 원합니다.

나의 겉모습을 보고 외면하지 마시고 나의 속사람이 온전히 변화될 수 있도록 주의 너른 품으로 품어주소서.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고후 3:1-11

제목 : 껍데기 신자에서 알맹이 신자로 거듭나다.

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 나의 묵상

우리가 또다시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우리가 어떤 사람들처럼 추천장을 여러분들에게 보내거나 또는 여러분들에게서 추천장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우리 마음에 썼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읽는 것처럼 여러분이 바로 우리의 편지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전한 복음을 통하여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그 편지는 붓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썼으며 돌에 새긴 것이 아니라 육의 마음판에 새긴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확신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자격이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자격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으로 일할 자격을 주셨는데 이는 문자적인 율법 조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하셨습니다.

율법 조문의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하나님의 영은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돌판에 새겨져 있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율법에 의한 직분도 영광스러워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에 빛나는 영광 때문에 그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영으로 세운 직분이야 두 말 할 필요 없이 더욱 큰 영광이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을 정죄하는 직분도 영광이 있다면 의를 세우는 직분은 더 큰 영광으로 빛날 것입니다.

전에는 영광스러웠던 것이 그보다 더 큰 영광이 나타나면 이전의 영광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이처럼 없어질 것도 영광스럽다면 영원한 것은 더욱 큰 영광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율법 조문에 의한 직분에 사활을 걸고 매진했던 사람이다.

그는 율법에 의해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히브리인 중에서도 히브리인으로,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며 교회를 박해하는 열심이 특심이었으며 심지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

(3:4-6)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따라서 바울은 율법 조문의 영광이 얼마나 큰 지 잘 알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일언반구 토를 달 수 없었다.

게다가 율법의 조문대로 그대로 지키기 위하여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이를 암송했으며 서기관들은 이 율법에 따른 행동들을 적용할 수 있도록 적용의 범위를 정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데 문자 그대로 적용하여 이를 행할 뿐 아니라 지금도 정통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6:4-9)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이를 통해서 그들이 받는 영광은 대단하다.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사람들로부터 그들은 영광을 받는다.

이 영광은 또한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키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요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 땅에 있지 않다.

하나님을 잘 믿어서 이 세상에서 부자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하는 일이 잘 되는 그런 것에 하나님은 전혀 관심이 없으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심은 땅에 있지 않고 만물 위에 있으며 그것은 곧 영생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늘날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의 전철을 밟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과 같이 예수 잘 믿어서 이 땅에서 잘 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디 그런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도가 날 수 있고, 대학에 떨어질 수도 있으며, 암에 걸릴 수도 있다.

때로는 죽음에까지 이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예수를 잘 못 믿어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행동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어서 이 땅에서의 어떤 상황이든지 넉넉히 초월하여 아들의 생명을 통하여 영생을 누리며 살기 원하신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이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고난을 주신다.

왜냐하면 이 고난을 통해서만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본문 1절에 나오는 ‘어떤 사람’들은 거짓 사도들로써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부추겨서 바울의 사도권을 비방하고 폄훼하려 한다.

그는 추천서 한 장 없이 지금 우리들에게 사도권을 행사하려고 한다면서, 자기들을 한 번 보라고 우리들은 이렇게 추천서를 가지고 오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손으로 쓴 추천서로 성도들의 환심을 사고 무엇보다 그런 것으로 돈을 버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과 같이 손으로 쓴 추천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확실한 추천서가 있는데 곧 고린도 교회 성도들 자신이다.

(2-3)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고린도교회 성도들 자신이 곧 바울의 추천서요 바울을 통해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한다.

(고전 9: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이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이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하는 말씀으로 고전 15:58절에 대한 답이다.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다시 말하면 견실하여 흔들리지 말고 힘써야 할 주의 일이 곧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요, 이런 열매들이 바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라는 것이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자격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새 언약의 일꾼으로 삼으셔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삼으셨기에 그것은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하신 것이다.

율법은 사람을 죽이고 정죄하지만, 하나님의 영은 사람의 생명을 살린다.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따라서 새 언약의 일꾼된 자는 날마다 말씀과 성령으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자다.

그는 아들의 생명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자이며 그것이 곧 주님과의 연합이다.

 

나는 정말 복음을 전할 자격이 없는 자이다.

복음을 잘 모르기도 했거니와 그것도 십자가만이 유일한 복음인 줄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물론 그마저도 정확히 알지 못하였지만 말이다.

그저 나의 설교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써 손가락질 당하지 않고 남들에게 선을 행하며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이것도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생명이 바뀌지 않은 선행은 자신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들 뿐이다.

아담의 생명에서 아들의 생명으로 생명 자체가 바뀌는 것은 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것을 가르치며 전하는 일이 곧 새 언약의 일꾼으로서 할 일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담의 생명이 무엇인지, 아들의 생명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뿐 아니라 그저 겉으로 보이는 삶이 남들 보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에 항상성(恒常性)이 있을 리 만무하였다.

이런 나는 급기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그리고 통합복음을 알게 되었고, 그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로 들어간다는 진리도 깨닫게 되었다.

(벧전 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이전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삶의 모습에 치중하여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했던 껍데기 신자에서 이제는 생명이 바뀌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알맹이 인생, 곧 알맹이 신자가 된 것이다.

오늘도 이 자리가 바로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영생의 자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 비록 연약한 육신으로 인하여 넘어질지라도 주님을 힘입어 다시 일어나 담대하게 파레시아로 아버지의 품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새 언약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기에.....

 

* 묵상 후 기도

주님...

세상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교회 안에서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껍데기로 살아온 자가 여기 있습니다.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죄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죄요, 행하는 것이 다 죄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선한 일을 하고 착하게 산다고 하였으나 그것은 나의 의를 드러내는 보란듯한 삶이었기에 하나님 앞에서 거짓이 아닐 수 없나이다.

이 종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께 구할 것은 오직 한 가지 긍휼이오니 이 긍휼을 통하여 주의 십자가로 나아가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하는 무덤에 연합하게 하소서.

그 자리가 바로 나의 영생의 자리인 줄 아오니 주님과의 교제가 끊임없이 지속되는 자리로 나를 인도하소서.

그곳에서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먹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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