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생명의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판단과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 못 박습니다.
타인의 티를 볼 때마다 내 눈에 들보를 생각하며
주님께 긍휼을 구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정결한 마음이 되어 아버지 품속으로 달려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13.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14.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15.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6.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본문 주해)
8~9절 : “내가 그 편지로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편지가 잠시나마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고서 후회하기는 하였지만,
지금은 기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픔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픔을 당함으로써 회개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하였으니, 결국 여러분은 우리로 말미암아 손해를 본 것은 없습니다.”(새번역)
고린도 교회의 잘못들을 인하여 바울이 사도로서 마땅히 책망할 것을 책망하였지만 그 편지를 받고서 성도들이 감당을 하지 못하여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데서 오는 후회였다. 그것은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태도로서, 바울의 진정성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하는 염려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한다. 그 이유는 그 편지가 잠시만 근심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근심으로 인하여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게 되었으니 기뻐한다는 것이다.
10~12절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하는 근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알지만 그렇게 살지 못해 고민하며 갈등하는 근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을 ‘죄에 대한 근심’, ‘주님의 은총을 저버린 행위에 대한 근심’, ‘신령한 근심’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세상 근심은 회개와 상관없는 근심으로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세상적인 근심이다.
11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근심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고린도 교인들의 태도가 나타난다.
‘간절하게 하며’는 고린도 교인들이 전에는 바울의 권면과 호소를 무성의하게 대했지만, 이제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변증하게 하며’는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적대자들의 공격에 대하여 정식으로, 집회를 통해서나 공식적인 회의 석상에서 그들의 무죄를 주장하며 변호하였다는 것이다.
‘분하게 하며’는 교회를 혼란하게 하고, 바울의 신뢰성에 대해 반기를 들은 적대자들의 수치스러운 행동에 대해서 의분을 느끼는 것을 가리킨다.
‘두렵게 하며’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사도 바울의 책망에 대한 두려움을 의미한다. ‘사모하게 하며’는 고린도 교인들의 바울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분명하게 나타내 주는 말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을 보고 싶어 하였으며 더 나아가 바울과 이전처럼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맺기를 열망한 것이다.
‘열심 있게 하며’는 고린도 교회가 전과는 달리 이제는 죄를 배척하고 바울의 교훈을 지키기 위해 열심을 다했던 것이다.
‘벌하게 하였다’는 것은 고린도 교회가 죄가 들어오도록 방관했던 옛 자세를 벗어 버리고 죄를 벌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세워나갔던 것이다.
이런 근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편지한 것은, 남에게 불의를 행한 사람이나, 불의를 당한 사람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여러분의 간절한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에게 환히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12절, 새번역)
13~16절 : 디도는 고린도 교회에 가기를 어려워했을 것으로 보인다. 바울 사도의 권면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고린도 교회가 사도의 심부름을 하는 디도를 받아들일까 하는 염려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에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를 자랑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디도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자랑한 것이다.
이제 그 사실이 확인되었기에 기쁘다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영접하듯이 디도를 두려워하고 떪으로 영접하여 순종하는 것을 보고서 디도의 심정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더욱 깊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바울과 디도의 공로도 아니요, 고린도 교인들의 노력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의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더욱 고린도 교인들을 신뢰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한다.
(나의 묵상)
바울의 ‘눈물의 편지’를 가지고 고린도 교회로 가야 하는 디도의 무거운 마음과 그 편지를 보내 놓고 노심초사 그 반응을 기다리는 바울의 마음이 전해진다.
일이 되어 가는 것으로 추측하자면 부정적인 결과가 예측되는데....뜻밖의 반전이 일어난다.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고 바울에 대해 마음이 열리게 된 것이다.
어떻게 그러한 반전이 있게 된 것일까?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하나님의 뜻은 알지만 그대로 살지 못하는 인간의 유한함과 연약함을 고백하고 그에 대해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주관하시어 일을 만들어 가시고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이다.
죄 많은 인간들이 결단하고 노력해서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은 없다.
나 같은 죄인이 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회개하는 일뿐이다.(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과거에 ‘내가 뭐 그리 잘못한 것이 많아서 맨날 회개해야 하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매일의 말씀의 빛 앞에 서니 입이 천 개, 만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숨 쉬는 것처럼,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손으로, 발로, 입으로, 생각으로....온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는커녕) 죄 짓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매일, 순간마다 주님 앞에 회개하며 애통의 한숨을 내쉰다.
어떤 이는, 회개한 죄를 또 짓는 것은 진정한 회개를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나는 회개한 죄를 또 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또 용서를 구한다. 이런 일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내가 죽기까지 여전히 반복될 것이다.(그것은 내 죄에 대해 점점 더 민감해지니 몸으로 사는 동안에는 그쳐질 일이 아니다.)
육체를 입고 이 땅을 살아가면서 죄악 된 세상에서 십자가를 붙들고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을 주님께서 절대 외면치 않으실 것을 나는 생각한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이 근심이 주님의 일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에 일어난 그 변화들-그 열성, 그 변호, 그 의분, 그 두려워하는 마음, 그 그리워하는 마음, 그 열정, 그 응징-이 참으로 놀랍다.
바울의 근심이 한 방에 다 날아가고 기쁨이 가득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죄악 된 내 삶에 대한 애통함을 주님께 아뢰고 그 십자가 그늘 아래로 들어가면-은 주님께서 내 마음을 주관하심으로 주님의 뜻에 합당한 결과를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교회를 다녔어도 말씀이 내 삶을 통치하기 전에는 나는 언제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세상 근심이 가득한 자였다.
사실 그것을 ‘근심’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살아가는 적극적인 지혜로 여겼다. 그렇게 나를 위해, 세상에 대해 혼신의 힘을 다하여 살다가 멸망의 나락으로 빠지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나는 예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살아서는 주님 주시는 형통함으로 이 땅에서 행복, 죽어서는 천국(혹시 천국이 있다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복음은 세상 근심을 그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게 한다.
만약 지금이라도 매일을 말씀으로 살지 않는다면 곧 세상 정신이 나를 사로잡아 버릴 것이다.
공중권세 잡은 죄의 세력은 결코 만만치 많다. 그야말로 작은 틈만 보이면 곧장 스며들어오니 그것을 내 힘으로 막을 길이 없다.
그래서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십자가를 붙잡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는 자가 된다.
이 근심이 많은 자가 복 있는 자임을 생각하며.....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묵상 기도)
주님,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란 다 죽을 일뿐입니다.
거기서 빠져나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는 자가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개인적인 제 삶과 영지 믿음의 공동체를 위해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 위해
이 근심을 많이 하는 자 되어
주님의 위로를 얻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이루시는 그 일을 눈으로 보며 기뻐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