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각자의 삶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지체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저희들은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니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28.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1.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본문 주해)
16~21절 : 진심으로 나그네를 환대하는 아브라함은 그들과 전송하려고 함께 얼마쯤 걷게 된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소돔과 고모라성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신다(20~21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말씀을 해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언약의 상대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천하 만민이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하시리라는 그 언약을 맺었기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시는 것이다(18~19절).
22~33절 :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악인과 의인을 함께 멸하시면 되겠습니까?’ 라며 하나님의 공의를 가지고 기도한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의인 50-45-40-30-20-10명까지 내려가면서 하나님께 용서해달라고 구하자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신다.
그런데 사실 소돔과 고모라에는 의인이 한 명도 없었다.
물론 아브라함은 ‘롯’을 염두에 두고 구한 것이었고, 롯이 그 악한 성에서 구원받은 것은 아브라함을 인하여 구원받는 것이다.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벧후2:7~8)
정말 롯이 그곳을 싫어할 만큼 의인이라면 그곳을 떠나야 하는데 떠나지는 못하고 단지 그 성안에 일어나는 음란한 행실을 보고서 고통하고 그 마음이 상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롯의 의라고 하는데, 이러한 고통과 그 마음의 상함이 역시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로 인함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는 예수님 한 분뿐이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히8:6)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9:15)
우리의 중보자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는 지금 새 언약의 시대에 있기에 다른 중보자가 없다. 이 중보자의 완전한 중보기도 덕분에 성도들이 소돔과 고모라 같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의 음란함과 악을 보고서 마음을 상하고 고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와 자매를 위하여 성도가 기도하는 것은 중보자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중보자의 은혜를 입었기에, 한 분 중보자 안에 있기에, 서로를 위하여 간구할 수 있는 것이다. 중보자 예수님 안에서 성도들은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나의 묵상)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성을 위해 의인 50명에서 시작하여 10명까지 언급하며 중보기도한다. 물론 아브라함의 머리속에는 조카 롯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기도를 아브라함이 알아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게 하신 것이다.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하시며, 소돔과 고모라성에 대한 심판을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뜻을 숨기셨다면 아브라함은 롯을 위한 중보기도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귀한 기도 역시 하나님께서 하게 하신다.
언제였던가.....중보기도는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니 우리가 남을 위해 하는 기도에 ‘중보기도’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좀 당황스러웠지만 명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넘어갔지만 그 용어 때문에 다소 불편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오늘 새벽에 목사님께서 거기에 대해 언급하셨다.
‘중보자’는 예수님 한 분뿐이시지만 이제는 우리들의 기도에도 그 말을 사용한다고 하셨다. ‘축복’이란 단어가 원래는 ‘복을 빈다’는 뜻이니, ‘하나님......축복하옵소서’가 틀린 표현이지만 요즘에는 이것을 단순히 그냥 ‘복’으로 생각하듯이....(나는 이 ‘축복’을 좀 구분해서 쓴다. 하나님께 쓸 때는 ‘복 내려주옵소서’ 라고 하고, 사람에게 쓸 때는 ‘축복합니다’ 라고 한다.)
오늘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로 인해 내가 중보기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중보기도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님 안에 내가 있기에, 나는 타인을 위해 중보 할 수 있는 은혜를 받게 된 것이다.
내 믿음이 성숙한 것을 보이기 위해 중보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예수님 안에 있으면 타인을 위해, 지체들을 위해 중보하게 되어 있다.
아들의 생명을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니 주님의 눈과 마음이 되어 영혼의 소중함과 그들에 대한 사랑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자신을 위한 기도가 점점 뒤로 밀리고, 그들을 위한 기도를 기쁨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동시에 자기를 위한 것은 주님께서 이미 다 알고 계심을 느끼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사실 문제거리가 많지만) 그런 평안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악함을 알고도 거기를 떠나지 못하고, 그저 마음만 상하여 살아가는 롯.....그 롯을 위해 아브라함이 중보할 수 있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어제 지체들이 아프고 다친 소식을 들었다.
마음이 아팠다.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다.
육체적인 고통이 덜 하도록, 달라진 일상의 불편함 속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도록 기도했다.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기에 진짜 동행하는 심령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이 어려운 시기가 끝나면 더욱 주님 가까이 나아가 있을 그들을 생각하며 기도했다.
소돔과 고모라 성과 같은 이 세상에서 희노애락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오직 주님 안에 있어 서로의 영혼을 위해 중보 하는 자로 살아가길 기도한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묵상 기도)
주님,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중보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저도 그 대열 속에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죄인 주제에 도대체 누굴 위해 기도할 수 있을까요?
아무 자격 없지만,
주님 안에 거하게 하신 은혜가 너무도 큽니다.
이제 주님의 눈과 마음이 되어 지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과 같은 이 세상을 살면서
오직 주님께 긍휼함을 입기를 소원하며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