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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을 너에게 주었다.’는 말의 의미(창 48:12-22).

작성자복음지기|작성시간22.11.18|조회수411 목록 댓글 0

20221118()

 

* 시작 기도

주님...

죄에 이끌려 살아가는 죄인들이 평화를 구하되 심판 없는 평화를 구하여 결국 심판 아래 다 쓰러지고 말 것을 잘 아나이다.

이 죄인도 내 맘 한 구석에 주의 심판 없는 평화를 갈구하고 있나이다.

보는 것이 죄요 듣는 것이 죄이며 말하는 것과 만지는 것이 죄 뿐인 나의 인생이 심판 없는 평화, 십자가 없는 구원을 갈구하오니 내가 머무를 곳이 어디니이까?

주여, 나를 심판하소서.

오늘 이 새벽, 주의 말씀 앞에 앉았사오니 말씀으로 나를 심판하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어 주 앞에 모든 것 드러나게 하소서.

나는 할 수 없으나 오직 주님은 하실 수 있사오니 주 앞에서 순전하게 살기 원하나이다.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죄의 몸은 불구로 삼아주소서.

주의 보혈로 긍휼을 베푸사 정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님 앞에서 나는 감추어주시고 오직 주님으로만 채워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48:12-22

제목 : ‘내가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을 너에게 주었다.’는 말의 의미.

12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 나의 묵상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 곧 양자로 삼았다.

이제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서 잘 보지 못하는 야곱이 양자로 삼은 두 아들을 축복한다.

이들을 축복하기 위해서 요셉이 아버지의 품에 있던 두 아들을 조금 뒤로 물린 후에 아버지에게 절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손으로 에브라임을 야곱의 왼손에 향하게 하고 므낫세는 야곱의 오른손에 향하게 하여 아버지 앞에 앉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자신의 양손을 엇바꿔서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은 므낫세의 머리에 얹어서 축복하였다.

 

그는 요셉을 위하여 축복을 한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은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십니다.

나아가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시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들을 통하여 나의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이 알려지게 될 것과 이 아이들이 이 땅에서 많은 자손을 가지게 해달라고 간구하였다.

 

아버지 야곱이 두 손을 엇바꿔서 두 아들을 축복한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아버지의 손을 바꾸려고 하면서, 아버지 이 아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으로 축복해 달라고 하자 아버지 야곱이 이렇게 말한다.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내가 그것을 왜 모르겠느냐?

그가 장자이지만 그도 한 족속을 이룰 것이며 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는 여러 민족을 이룰 것이다.

 

그 날 야곱은 그들에게 이렇게 축복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축복할 일이 있을 때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에브라임과 므낫세 같이 해주시기를 바란다.

이처럼 야곱은 므낫세보다 에브라임을 앞세워서 축복하였다.

또한 아버지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한다.

나는 죽을 것이지만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셔서 너희를 인도하여 너의 조상의 땅으로 다시 데리고 가실 것이다.

내가 네 형제들보다 너에게 세겜 땅을 더 줄 것이다.

그 땅은 내가 칼과 활로 아모리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여호수아 시대에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는 세겜이 아닌 다른 곳을 기업으로 받았다.

하지만 애굽에서 가져온 요셉의 뼈 곧 그의 해골은 야곱이 100크시타를 주고 산 세겜에 묻는다.

(24:32)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100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이렇게 하여 결국 야곱의 축복과 같이 세겜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야곱이 무려 400여 년이나 후에 있을 일을 마치 자기가 이루어 완성된 것처럼 과거완료 시제를 써서 표현한 것이다.

(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22b, KJV) I took out of the hand of the Amorites with my sword and with my bow.

이런 표현은 하나님 나라의 실제를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된다.

우리는 아직 천국에 가지 않았지만 우리의 실존은 천국에 이미 있는 것과 다름없다.

계시록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우리 믿는 자들이 그 나라에 이미 들어가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런 것을 미래적 완료라 한다.

이런 미래적 완료는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살고 있지만 그것은 이미 미래적으로 완료된 삶을 향하여 현재로부터 다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가리켜 창세전 언약이라고 한다.

창세전 언약은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 이미 약속을 한 것인데 이미 청사진을 다 그린 후에 그것을 하나씩 펼쳐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시간 안에서 현재일지라도 이 모든 시간은 우리 주님과 나누는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현재로 누리는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 사는 것이다.

이것이 곧 영원한 생명을 사는 영생이다.

이처럼 영생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실재이다.

(요일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영생의 본질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며 곧 아는 것이다.

이로써 영원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계시되고 경험된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알지 못하는 자였다.

영생은 죽어서 가는 천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나는 그저 막연하게 들은 것으로 영생을 이해하였고 천국은 전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았다.

이런 나는 신앙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늘 헤맬 뿐이었다.

그러던 나에게 복음이 찾아왔다.

이 복음은 그동안 허공만 치던 나의 신앙을 전혀 새롭게 하는 패러다임 시프트 곧 발상의 대전환을 가져왔다.

나의 신앙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였지만 그 예수를 이용하여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 것인가를 꿈꾸며 그 목표를 이루는 하나의 알라딘의 램프였던 것이다.

지극히 나 중심적인 신앙이었다.

내가 목사였음에도 나 중심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역을 했으니 이런 나를 따라오는 성도들은 소경을 따라 인도함을 받는 소경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소경과 같은 목자의 눈을 뜨게 한 것은 복음이었다.

이 복음으로 묵상을 하는 것은 날마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과 함께 더불어 교제와 사귐을 갖는 것이며 이 사귐이 바로 영생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이 영생을 누리기 위하여 하루라도 이를 쉴 수가 없다.

쉬면 내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물속에 있어야 살 수 있듯, 아들의 생명을 얻은 자는 날마다 말씀을 먹지 않으면 죽은 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날마다 넘어지는 구제불능이다.

이 말씀묵상도 나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감당할 뿐이다.

그 은혜가 나를 살린다.

그래서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을 이제는 눈으로 보게 된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지평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말이다.

욥의 고백이 곧 나의 고백이 된다.

(42:5-6)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을 지렛대로 삼아서 내가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니며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내가 하는 일은 나의 무력함과 불가능함을 더욱 피부로 느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게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님과 그의 십자가임을 오늘도 중심으로 고백한다.

 

하나님 나라는 비밀이며 신기함 그 자체이다.

우리가 죽어서 가는 미래를 뛰어넘어 그 나라를 현재로 누리는 영생임을 알게 해 주신 그 은혜가 너무도 크고 귀하다.

무엇보다 오늘 야곱의 미래완료적 고백이 나의 심장을 콩닥콩닥 뛰게 한다.

지금 내가 이곳 지상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묵상하고 있을 때 또한 내가 하나님 나라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하지만 이것은 성경이 증거하고 있기에 나의 믿음과 상관없이 실재이며 참이다.

나의 눈을 열어 그런 비밀을 알게 해 주신 우리 주님께 다시 한 번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영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까막눈이 여기 있습니다.

이런 나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공의로 심판하시어 주의 백성으로 삼아주시오니 그저 감사와 감격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눈을 뜨고 있는 요셉보다 나이가 들어서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는 야곱이지만 눈을 감은 야곱이 더 영적으로 깨어 있음을 보오니 나 또한 탐욕으로 점철된 육신의 눈은 감겨주시고 주의 영으로 그 나라를 볼 수 있는 영의 눈을 열어주옵소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습니다(9:39).

나의 육신의 눈이 봄으로 영적이 아니라 시력이 점점 사라질지라도 맹인에서 벗어나 영안을 열어 주를 보게 하옵소서.

이 하루도 오직 우리 주님과의 교제 안에서 영생을 누리는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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