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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지혜로 행복을 구하였으나, 이제는 창세전 영원한 지혜로 생명을 얻다(전 7:1-14).

작성자복음지기|작성시간22.12.19|조회수92 목록 댓글 0

20221219()

 

* 시작 기도

주님...

잠을 자고 눈을 뜨니 마음이 왜 이리 불안한지요?

내 심령이 곤고하여 안정되지 못하고 심히 떨리나이다.

밤새 비존재세력으로 인하여 평강을 잃어버린 나를 주께서 만져주소서.

나를 붙들고 있는 옛 사람의 죄성들이 지금도 공격하며 스올의 권세로 끌어가려 하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하게 하사 주의 품에서 안식을 누리기 원합니다.

나를 주의 보혈로 흠뻑 적셔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님만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7:1-14

제목 : 세상의 지혜로 행복을 구하였으나, 이제는 창세전 영원한 지혜로 생명을 얻다.

1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5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6 우매한 자들의 웃음소리는 솔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7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고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11 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12 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1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 나의 묵상

코헬렛 곧 전도자는 인생의 의미를 알고자 지혜를 궁구한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되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자는 이것을 명심할 것이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슬픈 얼굴에 바른 마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으나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잔칫집에 가 있다.

어리석은 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지혜자의 꾸지람을 듣는 것이 더 낫다.

어리석은 자의 웃음은 솔 밑에서 가시덤불이 타는 소리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헛되다.

탐욕이 지혜자를 어리석게 만들고 뇌물이 그 마음을 어둡게 한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인내가 마음의 교만보다 낫다.

조급하게 화를 내지 말 것이다. 어리석은 자의 마음에 화가 있다.

옛날이 지금보다 훨씬 좋지요? 라고 묻지 말라.

지혜자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지혜는 유산과 같이 좋은 것이며 해 아래 있는 사람에게 유익하다.

왜냐하면 지혜의 그림자에 앉는 것은 돈 그림자에 앉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즉 지혜는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게 생명을 준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살펴볼 것이다.

하나님께서 굽게 만드신 것을 누가 곧게 펼 수 있을까?

좋은 날은 좋은 것이고 나쁜 날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인간이 자기 면전에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1절의 교훈은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다고 한다.

여기서 이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과 좋은 기름에 해당하는 쉐멘은 발음이 비슷한 히브리어의 두 단어로서 언어 유희를 통한 시적인 상징성과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는 좋은 기름이 상징하고 있는 물질적 부요보다 이름이 상징하는 인격과 인품 그리고 명성이 더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전도자는 이생의 삶이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태어나는 것은 헛된 삶으로 진입하는 것과 같다.

하여 헛된 삶과의 이별인 죽음이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더 낫다는 것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은 헛된 삶과의 이별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그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끝에 대해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웃는 것보다 슬퍼하는 것이 더 나음은 그것이 지혜를 주기 때문이다.

지혜는 해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유익하다.

지혜가 돈보다 더 나은 것은 지혜자를 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지혜라도 결국 헛되다.

 

인간의 지혜 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인간에게 좋은 날과 나쁜 날이 교차하는데 이것은 그에게 할당된 몫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날을 정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그 누구도 굽게 할 수 없다.

 

세상의 지혜는 사람이 이생을 사는 동안 유익하다.

그리고 그 지혜는 깊은 슬픔과 고뇌 가운데에서 생겨난다.

어리석은 자의 웃음 소리는 이생의 삶을 황폐하게 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지혜는 죽음 앞에서 헛되고 무익하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없는 제한된 지혜이다.

 

헛되고 무익한 것으로 귀결되는 이생의 지혜는 영원한 지혜를 갈망한다.

세상의 현자들은 참된 지혜를 구했으나 결국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구한 참된 지혜는 신을 향한 갈망, 곧 에로스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에로스는 결핍과 풍요 사이에서 헤매는 중간자이다.

항상 다가갈 수는 있으나 한 순간도 결핍을 채울 수는 없는 신, 이것이 에로스의 실체이다.

그래서 에로스는 가혹한 괴로움이다.

이를 보건대 세상 현자들의 갈망은 고통으로 끝난다.

 

하지만 참된 지혜는 만물 안에 속하지 않으며 하늘에 속한 지혜이다.

이는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니님의 지혜이며 곧 창세전부터 감추어졌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것인데, 십자가를 통해서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이다.

(고전 2: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 예비하신 것이다.

그리고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닫게 하신다.

(고전 2:9-10)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세상의 지혜는 이생을 위한 지혜요, 슬픔과 고뇌 속에서 깨닫는 지혜이다.

하늘의 지혜는 창세전 약속된 아들의 생명을 주는 지혜이며, 오직 성령으로 깨닫는 지혜이다.

이생에 태어난 자, 그가 아들의 생명을 얻게 되면, 헛되고 무익한 인생은 참되고 영원한 인생이 된다.

 

나는 이생의 지혜를 구하던 자였다.

젊은 시절에는 비참한 인생을 보상해주는 세상 지혜를 구하였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자 신앙생활에서 지혜를 구하였다.

하지만 이 또한 이생의 삶을 위한 것이었다.

나의 신앙생활은 철저히 현세적이었으며, 이생에서 보란 듯한 삶에 그 목적이 있었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끝, 죽음 앞에서 헛되고 무익한 것이 되고 말 그런 인생이었다.

 

그런데 그 끝이 나에게는 일찍이 임하였던 것이다.

이생의 행복을 위해 세상과 교회에서 구했던 지혜와 그 성과물들이 몰수되었다.

세상에서 존귀한 자가 가증한 자가 되었고, 부요한 자리에 있던 자가 티끌과 재 가운데 누운 자로 전락하였다.

내게 임한 인생의 죽음이 나의 생전에 임한 것이다.

이렇게 나의 이생의 삶도 종결되었다.

 

그런데 그런 무덤과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나를 살리셨다.

아들의 죽음과 무덤 안에서 새 생명으로 나게 하시고 살게 하신 것이다.

창세전부터 미리 정하신 뜻, 그 때로부터 주어진 하나님의 지혜 곧 아들의 생명을 알고 누리는 자가 되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알지 못한다.

오직 성령만이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게 하신다.

이제 창세전 약속된 생명, 그리스도 안의 비밀을 알았으니 그것을 전하는데 나의 남은 인생을 드린다.

생명을 얻게 하는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충성할 뿐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이생의 행복을 위하여 지혜를 구하던 자가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당하는 죽음의 문턱에서 그 지혜와 행복은 무용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소경이 되어 헛된 것을 갈구하며 질주하던 어리석고 무익한 자입니다.

그뿐 아니라 내가 소경된 자로서 다른 소경들을 인도하는 아주 몰각한 지도자였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죽음을 당한 자를 주께서 심판하셨습니다.

그 심판은 나를 살리는 심판이며 나를 살리심으로 나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자들을 살리는 심판임을 믿습니다.

내게 임한 심판은 우리 주님의 공의였으며 생명을 주기 위한 심판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며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창세전부터 감추어진 하늘의 지혜입니다.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가 이제 주를 향하여 살기 원합니다.

이생의 지혜를 그치고 오직 하늘의 지혜로 충만하게 하소서.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영생의 삶으로 부요케 하옵소서.

육신으로는 이생에서 연약한 자가 되지만, 영원에 속한 묵시 속에서는 완전한 생명으로 섭니다.

그 은혜가 이 하루도 주님 안에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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