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8일(월)
* 시작 기도
주님...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영이 장막의 실로를 떠나기도 하셨습니다.
하오나 신약시대 그것도 성령의 시대가 된 후로는 하나님의 견인하심으로 오늘도 주의 품안에 거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천방지축 내 맘대로 자행자지하던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예수로 살 수 있게 하여 주심이 그저 은혜입니다.
오늘은 육신의 아버지께서 천국에 가신 지 8주기 되는 날입니다.
부족한 저를 신앙의 집에서 태어날 수 있도록 창세전에 택하여 주시고 믿음의 부모아래 태어나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신앙으로 이렇게 길러주신 어머니 아버지를 추억합니다.
부모님을 통하여 4남매가 이렇게 성장하였고 손주들 역시 믿음 안에서 자라 지금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들을 하고 있음도 감사할 일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씻어 주의 정결한 신부로 세워주소서.
주의 자녀들이 어디에 있든지 주의 자녀됨의 본분을 잃지 않고 주를 날마다 기뻐하여 즐거워하는 자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삼하 15:13-23
제목 : 다윗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방인 잇대, 예수 그리스도께 나의 믿음을 드리는 이방인 나.
13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14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15 왕의 신하들이 왕께 이르되 우리 주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더라.
16 왕이 나갈 때에 그의 가족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왕이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하니라.
17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멈추어 서니
18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600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
19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20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21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22 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 건너가라 하매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수행자들과 그와 함께 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23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 나의 묵상
압살롬은 다윗을 반역하였다.
그리고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반역의 세력은 점점 커지고 압살롬에게로 돌아가는 백성들이 많아졌다.
한편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마음이 앖살롬에게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그는 신속히 대처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하자고 신하들에게 지시한다.
이는 압살롬이 자기들을 해치고 성읍을 칠까 하기 때문이다.
왕의 신하들도 왕이 하시는 대로 순종하겠다고 한다.
왕은 궁을 떠날 때 후궁 10명을 남겨둔다.
왕이 신하들과 함께 성을 빠져나갈 때 그 성의 마지막 집 곧 벧메르학(먼 궁)에 멈춰 섰다.
왕의 모든 종들이 왕의 곁을 지나가고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과 왕의 호위병들도 그리하였다.
또한 블레셋의 가드 지방에서 온 600명도 왕의 곁을 지나갔다.
이 때 다윗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너는 왜 우리와 함께 가느냐고 묻는다.
너는 쫓겨난 나그네가 아니냐면서 돌아가서 압살롬 왕과 함께 있으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잇대는 이방사람이고 그들이 있는 곳은 그의 고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잇대는 다윗에게 온 지가 어제라고 하는데 이는 자기에게 온 지가 얼마 되지 않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그런 그를 자기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를 축복하는데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기원하고 그를 돌려보내려 한다.
하지만 잇대는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다윗 왕의 살아계심으로 맹세하면서 다윗과 함께 있겠다고 한다.
(21b)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그러자 다윗은 그를 앞서 보냈고 잇대와 그의 수행자들 그리고 그와 함께 한 아이들까지도 왕의 곁을 지나갔다.
모든 백성은 왕의 곁을 지나가면서 큰 소리로 울었다.
다윗 왕도 기드론 골짜기를 건넜고 그 후에 모든 백성은 광야 쪽으로 갔다.
온 이스라엘의 마음은 현실적 권력을 장악한 압살롬을 향한다.
다윗 역시 압살롬을 제어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예루살렘을 두고 도망한다.
그러나 다윗에게 속하지 않은 이방사람들 곧 그렛과 벨렛 사람 그리고 가드 사람들은 다윗과 함께 하였다.
다윗은 빠져나갈 수 없는 궁지에 몰려 있지만 이들 이방인들은 다윗을 여전히 자기의 지도자로 여겨 충성을 맹세한다.
이들 중 특히 가드 사람 잇대의 행동은 각별했다.
다윗이 그를 아껴서 돌려보내려 했으나 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끝까지 다윗을 따른 것이다.
이는 눈에 보이는 현실적 권력인 압살롬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에 자신들을 드린 것이다.
이는 다윗의 왕됨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예표한다.
예수는 창세전부터 그리스도 곧 메시야이셨고 영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왕이요 구원자로 오셨다.
하지만 육신적 이스라엘은 메시야요 구원자로 오신 예수를 버렸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은 압살롬과 같이 현실적인 권력과 부를 움켜쥔 구원자 곧 민속 메시야를 고대하고 대망하였던 것이다.
구원은 이스라엘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옮겨졌다.
율법의 의로 구원을 얻고자 했던 이스라엘은 단 한 사람도 그 율법의 의를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약 2:9-11)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롬 3:10, 23)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렇게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한 것이 되었다.
(롬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구원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은 원가지이며 이방인은 접붙임 받은 가지에 불과하다.
(롬 11: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물론 이와 같이 잠시 버림받은 자 같은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구원이 다 이루어질 때 그 남은 자가 구원을 얻는다.
(롬 11:25-26)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구원은 자기들이 행한 율법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말한다.
나는 복음도 언약도 알지 못하던 이방인이었다.
이런 나는 구원에서 멀어도 한참 먼 자였던 것이다.
벧메르학처럼 다윗의 왕궁에서 가장 멀리 있는 왕궁에 불과한 초라한 자가 바로 나였다.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 자였던 것이다.
실제로 나의 지나온 삶은, 있는지 없는지 잘 알지 못하는 존재감이 전혀 없는 자였다.
무엇보다 나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 탓으로 인하여 나는 그런 삶이 편했다.
이런 성격 탓에 남들 앞에 나서기를 굉장히 꺼려하기도 했고 무엇을 발표라도 할라치면 심장이 벌렁거리고 땀이 온 몸을 주룩주룩 소나기가 내리듯 적시기도 하였다.
이렇게 극소심한 자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는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쑥맥이었다.
그런 나에게 신앙의 일대 전환기가 찾아왔다.
목사이면서 복음도, 하나님의 언약도 모르던 나에게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사실 복음이 알고 싶어서 나보다 훈련도 훨씬 많이 받고 청년시절부터 체계적으로 성경을 배워왔던 아내에게 복음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었고 같은 시찰에 있던 동료 목사에게 복음에 대해서 묻고 듣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의 갈급한 심령을 채우지는 못했다.
이런 나의 갈급한 심령을 주님께서 아시고 복음생명선교회를 통하여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을 듣게 하신 것이다.
이 복음은 그동안 내가 들어서 알고 있던 파편적인 복음들을 잘 꿰어서 보배로 만들어 둔 통합복음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이 복음을 총알로 삼아서 늘 장전하였고 어디를 가든지 이 복음을 쏠 수 있었다.
물론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었기에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확인하였고 그 믿음이 다른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행위 복음 안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그렇게 메시야로 예표되는 다윗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방인 가드 사람 잇대와 같이 내가 살든지 죽든지 주님과 함께 하겠노라는 충성을 맹세한다.
하지만 나의 맹세 곧 믿음은 언제든 넘어질 수 있다.
이런 맹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창세전 언약에 의해서 나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행동하심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믿음에 근거하여 나는 잠잠히 따라갈 뿐이다.
하여 오늘도 주님과의 교제와 사귐에 나의 온 몸을 드린다.
주님이 지신 그 십자가에 나도 함께 못 박고, 주님이 장사되신 그 무덤에 나도 함께 장사된다.
물론 나의 몸은 아직 구속받지 못한 죽을 몸이며 죄의 몸임을 인정한다.
하여 육신의 연약함으로 언제든 넘어지고 자빠질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연연하지 않고 넘어질지라도 아들을 힘입어 다시 일어나 담대하게 아버지 품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내 안에 있는 믿음이요 또한 나를 이끄시는 아버지의 믿음임을 안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연약한 자입니다.
언제든 넘어지고 또 자빠집니다.
하여 복음을 알기 전에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죄 곧 목록적인 죄에 매여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죄를 주님께서 심판하시고 그가 그 심판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임으로 자복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 죄의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함입니다.
저 역시 이제 목록적인 죄의 결과에 매이지 않고 아들을 힘입어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 파레시아로 담대히 아버지께로 나아갑니다.
옛적 일에 매이지 않고 주님이 이루실 영원한 생명에 나의 모든 것을 올인하기 원합니다.
내가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자 되게 하옵소서.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