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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묵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엡6:10~17)

작성자묵상여행|작성시간23.10.30|조회수444 목록 댓글 0

(시작 기도)

주님,

어제는 참 좋은 날씨 속에 야외예배를 드리게 하시고

성도의 즐거운 교제를 나누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즐거이 행하는 많은 섬김이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고

그것은 주님 안에서 저희들이 함께 자라고 있는 증거임을 깨달으며

주님만을 찬양합니다.

 

새 날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저의 부정성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정결케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본문 주해)

10~13절 :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이란 우리의 혈과 육으로 이루어낸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내신 것들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이다. 예수님 홀로 이 일을 이루어내셨지만 이 일에 성도가 성령으로 함께 연합이 되어짐으로 그 힘의 능력을 덧입게 되는 것이다.

 

성도가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려고 하면 반드시 마귀의 간계를 만나게 된다. 즉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적 전쟁의 대상이 누구인지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새번역)

 

‘혈과 육’이 아니라는 것은 인간을 상대로 싸우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대상은 누구인가?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고 한다. 이는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세상의 모든 힘과 정신을 가리킨다.

이들이 하는 일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게 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한다. 이는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갖추어낼 무장들이 아니다. 주 안에서 나오는 힘의 능력이 아니면 인간은 사탄을 대상으로 싸워 이길 수 없다.

 

14~17절 : 영적 전투에 입을 옷은 진리, 의, 복음, 믿음, 구원,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장한 의의 겉옷이다. 한마디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다.

 

@진리의 허리띠 : 허리띠를 묶는다는 것은 일과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의 보내신 성령이 무엇을 하시는지, 복음으로 드러낸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믿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산다는 것은 자기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매여 진리에 끌려가는 것이다.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끌고 가시는 사랑의 줄이다.

 

@의의 호심경 : 호심경이란 가슴과 배와 등까지 보호하는 것으로 칼이나 활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갑옷을 말한다.

그러므로 의의 호심경이란 의로 자신을 보호하는 무장이다.

여기서 의는 인간의 행위와 연결되는 자기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을 가리킨다.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임을 알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의로움임을 알고 믿는 자들이 의의 호심경을 입은 자들이다.

 

@평안의 복음의 신발 : 평안의 복음으로 예비한 신을 신으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무장하라는 말씀이다.

평안의 복음을 신는 것이란 바로 예수님의 평안을 성도가 덧입는 것을 가리킨다.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기뻐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평안이요, 이런 모습으로 사는 것이 평안의 복음이 예비한 신을 신는 것이다.

 

@믿음의 방패 : 본문의 방패는 전신을 가릴 수 있는 큰 방패를 말한다. 이런 방패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대적 사단이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불화살을 쏘기 때문이다.

 

믿음의 방패에서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그 다 이루심으로 그의 영을 자기 백성에게 보내주신 것이다. 즉 성령이 임한 것이다.

이런 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며, 믿음의 방패를 가진 자들이다.

이 방패로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세상에 대한 탐심과 근심과 염려-을 막아내는 것이다.

 

@구원의 투구 : 투구는 머리 보호용 기구이다. 머리는 생각하는 곳이고, 성도의 생각들을 통하여 사탄이 대적하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투구를 쓰라고 한다.

사탄의 공격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을 오해하도록 만든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라,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투구를 쓴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 전 자기 약속을 이루어내시는 결과임을 믿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 :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라고 하면 될 텐데 왜 성령의 검이라고 표현했을까?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성령께서 우리의 지각을 열어주셔야 말씀을 제대로 받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으로 보게 되면 이 말씀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말씀이다.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성경의 뜻을 가르쳐 주신다. 그 핵심은 예수님의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심으로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을 알게 하여 준다.

그러므로 성령의 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이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이 마귀를 대적하는 것 일뿐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사단의 진들도 무너뜨리는 것이다.

 

(나의 묵상)

단 여덟 절의 본문 말씀인데 장장 57페이지에 이르는 해석을 읽고 본문 주해를 정리한다. 그 양이 너무 많아 자세히 읽지도 않고, 술술 넘어가면서 정리하는데도 이미 3시간을 훌쩍 넘긴다.

누군가는 하나님의 말씀의 풍성함을 찬송하는데 나는 너무 힘이 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에베소서가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주해’를 마치고 ‘나의 묵상’으로 넘어오니 끝이 보이는 것 같아 한숨을 돌린다.

 

오늘은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과 같은 말씀이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완전무장이며,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전신갑주는 영적 전쟁을 위한 무장의 표현이고,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은 세상에 보내진 편지로서 우리 삶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나는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은 허리띠를 풀 새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삶이 바쁠 때나 한가할 때나 언제나 허리를 동이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 땅은 내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니라, 나그네로서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허리를 동이는가?

진리이신 예수님으로, 복음으로, 성령으로 허리를 단단히 매어 중심을 잡는다.

그래서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또 기울이는 것이다.

 

나는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있는가?

오직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만 의롭다함을 받은 것을 나는 믿는다.

복음을 알기 전 이 세상 속에서 나의 의로 자랑하고 믿었던 모든 것은 배설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사탄이 끊임없이 나의 탐심을 부추기며 유혹한다. 그러나 보혈의 은혜를 아는 나는 이 모든 세상적 욕구를 십자가에 못 박으며, 그것들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거룩한 장애자가 되었음을 선포한다.

 

나는 복음의 신발을 신고 있는가?

복음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과 나타나심의 메시아적 행위들이다. 이것을 통하여 예수께서 하나님과 죄인의 담을 허무셨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담도 허물어 버리셨다.

그리하여 복음은 평안을 누리게 한다.

복음을 알게 된 나는 매일 생명의 교제를 하며 이 평안을 누리는 자가 된다.

이 생명의 삶의 걸음을 걷는 내게 신겨진 신발은 복음이 주는 평안의 신발이다.

 

나는 믿음의 방패를 들고 있는가?

창세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우리들에게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때 주님은 ‘다 이루었다’ 고 하셨다.

그 이루심을 나는 믿는다.

여전히 육신으로 이 세상을 살아감으로 어려움을 당하지만 나는 이미 하늘에 앉혀진 자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 믿음의 방패는 사탄이 내게 날리는 수많은 위협과 유혹의 불화살을 거뜬히 막아낸다.

 

나는 구원의 투구를 쓰고 있는가?

내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받은 것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만약 나로 인해 구원을 받은 것이라면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이 그것이 얼마나 믿을 수 없고, 나약한 것일까? 자격없지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나의 구원은 너무도 신뢰가 간다. 그리고 그 구원은 사사로운 내 뜻과 행복 때문이 아니라,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함 속에 이루어진 것이다.

사탄이 자격없다고 아무리 헐뜯고 참소를 해도 나는 끄덕없다.

나의 행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성령의 검을 가지고 있는가?

과거에 성경 구절을 많이 암송한 것을 무슨 총알을 많이 가진 자로 생각하여 부러워한 적이 있다. 물론 참뜻을 알고 암송을 많이 하면 할수록 좋지만, 성령께서 알게 하신 진리가 아니면 그것은 오로지 자기의가 될 뿐이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드라큐라에게 십자가를 내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십자가에 연합되어야 하는 것처럼, 복음의 말씀으로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진리로 옷 입게 하시는 성령님께 감사를 드린다.

 

기록하다 보니 내가 마치 완벽한 주님의 군사가 된 느낌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소망이고, 나의 이 소망을 듣고 보시는 주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다.

 

(묵상 기도)

주님,

제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혀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만들어서 입는 옷이 아니라,

주님께서 입혀주시는 옷이니 아무 염려 없습니다.

 

영적 전투를 겁내지 않고 치르게 하옵소서.

전투 후 너덜너덜해진 옷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새 옷으로 입혀주시니 감사합니다.

 

남은 생은 주님 위해 더욱 치열하게 살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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