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의 보혈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갑니다.
오늘도 진리를 보고 기뻐하며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에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7.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
18.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19.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20.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
21. 의인에게는 어떤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리라
22.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23.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
2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25.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26.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
27.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28.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본문 주해)
잠언에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중요한 내용이 말(17~23절)과 부지런함(24~28절)에 관한 것이다.
17절 : 인간에게서는 의가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이다.(롬3:10) 그러므로 참된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인간의 의가 없음을 말할 뿐만 아니라, 유일하고 참된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사람이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을 하는 자가 의를 나타내는 자이다.
18절 : 진리를 말하고 양약같이 말하는 성도의 생활이 지혜롭고 의로운 생활이라는 것이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겨서 마음의 미련한 것을 자꾸 드러낸다. 이것이 궤휼(거짓)을 말하고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는 것이다.
말은 하고 나면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말은 늘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다. 진리를 말하고 양약 같은 말만 하면서 살아야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미련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말을 하고 칼로 찌는 듯한 말을 할 때도 있다.
19절 : 진실한 입술이란 진실을 말하는 그 사람 자체를 가리킨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진리가 담겨있기 때문에 그는 영원히 보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것이다. 거짓 혀도 역시 그 사람 전체를 가리킨다. 거짓말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잠시 동안 잘 먹고 잘사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말과 거짓말이란 단지 몇 마디 하는 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20절 : 참말과 거짓말이라는 앞의 내용으로 연결하여 보면 된다.
길과 진리와 생명과 의가 되시는 예수님이 없는 사람은 늘 마음에서 악을 꾀하고 속임이 가득한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생명이 있는 자는 화평과 희락이 있다.
21절 : 세상에서는 의인이 재앙을 당하고 악인이 형통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의인에게는 영원한 재앙이 없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영원한 재앙만이 가득할 뿐이다.
22절 : 거짓 입술과 대칭되는 단어가 진실하게 행하는 자이다. 그러면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참된 입술을 가진 자 즉 진리를 말하는 자이다.
거짓 입술을 가진 자는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기에 자기의 것으로 말하며 마귀에게 속은 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자들에게서 나오는 말이란 거짓일 뿐이다. 아무리 세상의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것을 말해도 그것이 영원과 진리의 빛에 비추어보면 거짓으로 드러날 뿐이다.
23절 : 슬기로운 자가 지식을 왜 감추겠는가? 그것은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제 속에 있는 미련한 것을 전파한다. 스스로도 그것이 거짓에서 나온 것 인 줄도 모르고 전파하는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미련한 많은 사람들이 그 거짓말을 따라간다.
24절 : “부지런한 사람의 손은 남을 다스리지만, 게으른 사람은 남의 부림을 받는다.”(새번역)
이스라엘에서는 가난 때문에 종으로 팔린 사람들이 있었다(레25:39~40). 그런데 이들 중에는 게으름으로 인해 가난해지고 그러한 가난을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남의 종이 된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자이니 더욱 부지런해야 한다.
25절 : 마음속에 있는 근심이 사람을 번뇌하게 한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 선한 말이요, 그 복음은 사람의 근심을 찬송이 되게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7:10)
26절 : “의인은 이웃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만, 악인은 자기 스스로 불행한 길로 나아간다.”(쉬운 성경)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로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이웃을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그러나 악인은 자신의 악한 행동이 스스로 올무가 되어 더욱 깊은 죄악 속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멸망하게 된다.
27절 : “게으른 사람은 자기가 잡은 사냥감도 요리하기 싫어하지만, 부지런한 사람은 보화를 캔다.”(쉬운 성경)
‘사냥하다’라는 말은 ‘잡다’라는 뜻과 ‘굽다’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만일 ‘사냥하다’로 읽으면 게을러서 아예 사냥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굽다’를 의미로 취하면 이미 잡아 놓은 짐승조차 게을러서 요리하기를 싫어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어느 것을 취하든 부지런한 사람과 대조되는, 게으르고 미련한 자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28절 : “의로운 사람의 길에는 생명이 있지만, 미련한 사람의 길은 죽음으로 이끈다.”(새번역)
의로운 길은 의인의 길이다.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에, 그 말씀에 순종하고 미련한 행동을 피하며 말을 지혜롭게 하는 사람이다. 그는 영생을 누리게 된다.
(나의 묵상)
의인이란 진리를 증거 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을 믿어 의인 된 나의 입에는 어떤 말이 나오는가?
과연 생명에 속한 말, 참된 말, 양약이 되는 말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가?
복음을 모르고 살았을 때, 정말 함부로 말하며 살았었다.
함부로 말했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하나는 의도적으로 찌르는 말을 하고도 그것을 당연히 여기는 태도였다. 그 답답한 상대에게 그렇게 확실히 말해 주어야 그가 깨달을 것이고 내 속도 시원한 것이다.
또 하나는 그렇게 속이 시원하도록 했던 말이 사탄의 속임수를 따른 말인 것도 모르고, 나야말로 똑똑하고 정의로운 자인 것처럼 착각했던 것이었다.
복음을 알고 생명의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얼마나 미련한 자인가를 알게 되었다.
생명을 주는 말보다는 죽이는 말을 많이 했고, 참된 말보다는 거짓(참인 줄 알았던)을 더 많이 말했다.
아, 복음을 몰랐으니 이는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성격상 안 그런 척하거나,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참아내는 그런 가식으로 포장하지 않으니, 이건 바로 ‘거짓의 직격탄’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생명을 살리는 말은 ‘내가 해야지’ 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참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으로 나 자신을 충만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말씀의 빛에 비추어진 나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미련한 자인지를 보게 되면,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그 더럽고 가증스런 나를 보혈로 덮어주시는 은혜를 경험한다.
그것은 주님께서 보내주신 성령께서 이 비참한 나를 보게 하시고, 십자가를 붙들게 하시는 역사이다. 그 성령의 역사는 거짓과 죽이는 말을 했던 나 스스로에 대해 회개하고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이것이 예수님으로 나를 충만하게 하는 일이다.
죄의 세력은 나를 본능대로 살게 하려고, 옛 사람으로 살게 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본다. 하지만 나는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그리스도로 옷 입기를 기도하며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간다.
하여 진심으로 예수님으로 충만한 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함부로 찌르는 말을 해대는 자가 아닐 뿐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찔러도 과거에 했던 것처럼, 거짓인 내 말로 방어하고 공격하려고 직격탄을 쏘아대는 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오직 십자가 아래로 달려갈 뿐이다.
완벽하게 정결케 하시고, 완벽하게 방어해 주시는 주님의 보혈 아래에 머무는 것이다.
이제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하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성경이 증거 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의 인도자가 되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여 주시고, 지나간 세월 동안 오래 참아 주신 이유를 이즈음에 와서야 깨닫는다. 그것은, 과거의 나와 똑같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생명의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묵상 기도)
주님,
죽이는 말만 하던 자,
이제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하기를 원합니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약3:11)
주님,
이 말씀 앞에 머리 조아립니다.
여전히 한 구멍으로 단 물과 쓴 물을 내는 한심한 재주를 가진 자입니다.
이제 오직 단 물을 내는 샘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역사 속에서 살아갈 때 엎어지고 자빠지지만
주님께서 제 손목을 굳게 잡고 계심을 믿습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