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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귀, 보는 눈을 주신 이유 (잠20:1~14)

작성자묵상여행|작성시간23.11.20|조회수226 목록 댓글 0

(시작 기도)

주님,

감사가 넘치는 주일을 보냈습니다.

한 영혼에게 전도하는 일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요!

그 결과는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오니 그의 마음을 만져주시옵소서.

 

오늘은 창원 복생캠프를 방문합니다.

전하는 자나 참여하는 자나 새 은혜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성장로의 몸의 컨디션을 좋게 하셔서 맡은 강의를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이 되어 말씀을 받게 하옵소서.

진리의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

2. 왕의 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으니 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니라

3.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4.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5.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6.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7.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의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

8. 심판 자리에 앉은 왕은 그의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하느니라

9.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

10.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는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11.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12.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

13.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

14. 물건을 사는 자가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

 

(본문 주해)

1절 : “포도주는 사람을 거만하게 만들고, 독한 술은 사람을 소란스럽게 만든다. 이것에 빠지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혜롭지 않다.”(새번역)

 

술에 취하면 이성적인 뇌의 작용을 방해한다. 그러면 겁이 없어지고 과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술에 미혹되거나 중독이 되면 지혜롭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술만이 아니라 이 시대에는 더 많은 미혹거리가 있다.

오직 성경의 참된 지혜만이 여러 가지 미혹거리를 멀리하게 할 수 있다.

 

2, 8~9절 : “왕의 노여움은 사자의 부르짖음과 같으니, 그를 노하게 하면 목숨을 잃는다.”(새번역)

“재판석에 앉은 왕은 모든 악을 한눈에 가려낸다.

누가 "나는 마음이 깨끗하다. 나는 죄를 말끔히 씻었다" 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새번역)

 

왕이 진노하면 심판을 받는다. 본문의 왕은 ‘공의로운 왕’을 의미한다. 정직하고 바른 왕이라면 그의 눈빛으로도 악을 흩어지게 할 것이다. 이러한 왕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거나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고 할 자가 없다.

누가 주님의 눈길을 피하겠는가?

주께서 죄를 살피시면 그 앞에 설 자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님께 있기에, 그 인자와 풍성한 속량이 주님께 있기에 오늘도 우리는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볼 수가 있다.

 

3절 :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인데도, 어리석은 사람은 누구나 쉽게 다툰다.”(새번역)

 

모든 다툼은 자기주장의지와 자기의 때문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이러한 자기주장의지와 자기의를 십자가에 못 박으니 다툼이 없다. 이러한 자가 지혜로운 자이다.

 

4, 13절 : “게으른 사람은 제 철에 밭을 갈지 않으니, 추수 때에 거두려고 하여도 거둘 것이 없다.”(새번역)

“가난하지 않으려면 잠을 좋아하지 말고, 먹거리를 풍족히 얻으려면 깨어 있어라.”(새번역)

 

게으름에 대하여서 잠언에서 많이 언급하고 있다.

씨를 뿌릴 때 게을러서 뿌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육체로부터 심는 것은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는 것이며 성령으로부터 심는 것은 영생을 거둔다(갈6).

혈과 육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수가 없다. 혈육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썩어진 것을 거둘 뿐이니, 오직 성령으로 부지런히 심어야 할 것이다.

 

5절 : “사람의 생각은 깊은 물과 같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낸다.”(새번역)

“사람 마음속에 있는 생각은 천 길 물 속과 같아 슬기로운 사람이라야 그것을 길어 올린다.”(공동번역)

 

사람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그 사람의 영 외에는 그 사람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하나님의 깊으신 마음을 알듯이 성령이 임하면 서로의 마음에 알 수 있다.

예수님을 믿는 지혜로운 자(슬기로운 자)에게 임한 같은 성령이 서로의 마음에 있는 것을 나눌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6절 : “스스로를 성실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으나, 누가 참으로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느냐?”(새번역)

 

사람들이 자신이 인자를 베풀거나 신실하면 자신을 자랑한다.

그런데 정말로 충성되고 신실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신실하고 충성된 자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 무익한 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눅17:10).

 

7절 : “의인은 흠 없이 살며,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다.”(새번역)

 

인간은 온전하게 행하여 의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온전한 행위로 인하여 죄 사함을 받을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니 이것이 참 복이 되는 것이다.

 

10절 : “규격에 맞지 않은 저울추와 되는 모두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다.”(새번역)

 

주님은 한결같지 않는 저울추와 되를 싫어하신다. 이것은 단지 상거래의 속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인생살이와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기분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주님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다.

이 말씀은 억울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강청하는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다(눅18장). 이것을 강청기도라 하여 소원을 이루어내자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억울할 일을 당하며 살아가는 세상살이 속에서 주님의 약속을 믿고 한결같이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이 있겠느냐는 말씀이다.

 

11절 : “비록 아이라 하여도 자기 행위로 사람됨을 드러낸다. 그가 하는 행실을 보면, 그가 깨끗한지 더러운지, 올바른지 그른지, 알 수 있다.”(새번역)

 

사람의 행위는 그 사람의 속에 있는 뜻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은 항상 악하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로 타락한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죄인이다.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죄인일 뿐이니 어른들은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어른이 어린아이보다 더 악한 이유는 자신의 행실을 위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행위로서는 의에 이를 수가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다(롬3:22).

 

12절 : “듣는 귀와 보는 눈, 이 둘은 다 주님께서 지으셨다.”(새번역)

 

인간이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신다.

인간이 들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이 사는 길이다.

그 눈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내용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런데 타락한 인생은 듣고 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에만 꽂혀 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무엇을 듣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

 

14절 : “물건을 고를 때는 "나쁘다, 나쁘다" 하지만, 사 간 다음에는 잘 샀다고 자랑한다.”(새번역)

 

자기 마음에 드는 물건을 싸게 사려고 좋지 않다고 말하면서 가격을 대폭 깎은 후에 집에 와서는 물건 잘 샀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파는 사람은 물건 값을 깎을 줄 알고 비싸게 불러놓고 깎아 준 것일 수 있다.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이런 세상에서 믿음으로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박해를 받는 일이다(딤후3:12~13).

 

(나의 묵상)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12절)

 

인간이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신다.

인간이 들어야 하는 것은 세상의 떠들썩한 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휘황찬란하여 그럴듯한 이 세상을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내시는가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창세전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다. 죄로 허덕이는 이 세상의 인간들을 아들을 통하여 구원하여 내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것이다.

말씀을 통해 주님의 십자가를 보는 일, 그것이 인생이 살 수 있는 길 즉 생명의 길인 것이다.

 

나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자였다.

타락한 인생으로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은 생각하지도 못했으니, 보이는 이 세상과 들리는 이 세상의 말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를 세상 속에서 끄집어 내셔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 심어 주신 것이다.

창세전 아들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내게도 주심으로, 내가 속한 나라가 달라졌고, 그 소속이 달라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이 세상을 살지만 나를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야 함을 알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구약에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당신의 약속에 신실하셨는가를 말씀을 통해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나의 창조자시며 나의 왕이 되심을 보여주셨다.

그 과정 속에서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셔서 인도하여 내시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런 드라마틱한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 살아계심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러한 간증이 전부가 아니다.

주님이 살아계시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주님과 동행하며 교제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눈을 뜨게 하시고 귀를 열어주신 것이다.

귀를 활짝 열고 복음을 듣고 또 들으며, 약속에 신실하신 주님이 내 삶을, 이 세상을 어떻게 주관하여 가시는가를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에 대한 간증거리가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무엇을 듣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주님께서 간증거리를 주신 것은 그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 일상을 주님과 교제하자고 이끄시는 사인(sign)임을 알아야 한다.

 

(묵상 기도)

주님,

늘 주님과 교제하는 자리에 앉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제 기분대로 나오다가 말다가 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결같이 나아가는 자리입니다.

제게 눈과 귀를 주실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주셨으니

전심으로 주님께 나아가길 원합니다.

복음을 듣고 또 듣게 하시고

십자가를 보고 또 보게 하셔서

세월이 흐를수록 주님께 온전히 연합된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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