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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는 그(목자)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요 10:1-10).

작성자복음지기|작성시간25.02.04|조회수217 목록 댓글 0

202524()

 

* 시작 기도

주님...

오늘은 어머니가 천국 가신지 벌써 6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살아 계실 때의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정말이지 당신은 못 먹고 못 입을지라도 자식을 위하여 헌신하신 어머니는 예수님 그 자체이셨습니다.

그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품속에서 평강을 누리실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평안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거룩한 불구자로서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10:1-10

제목 : 문지기는 그(목자)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나의 묵상

양의 우리에 들어갈 때 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가는 자는 목자이지만, 문이 아니라 담을 넘어가는 자는 도둑이요 강도라고 말씀하신다.

양의 우리를 지키는 문지기는 목자를 보고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서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다.

밖으로 나온 양들은 그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지만, 다른 사람의 음성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도망간다.

 

예수님은 이런 비유를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자 돌직구를 날리신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하늘의 진리를 말하겠소. 내가 바로 양의 문이오.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도둑이며 강도요.”

그래서 양들이 듣지 않은 것이오. 진짜 문인 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것이며, 들어가고 나올 때 꼴도 얻을 수 있소.”

도둑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오지만, 나는 양에게 생명을 주되 풍성한 생명을 주려고 왔소.”라고 하신다.

 

주님은 목자와 강도로 구별하여 아주 강력하게 말씀하신다.

목자는 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가 양을 지키고 보호하지만, 강도는 문이 아닌 담을 넘어 들어가서 양을 훔치고 죽이는 자라고 말이다.

주님은 나를 이 시대의 목자로 세우셨다.

맡겨 주신 양들에게 꼴을 잘 먹이고 인도하며 보호할 책임이 바로 나에게 있다.

도둑이나 강도는 정도(正道)를 걷지 않는다고 하신다.

문으로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리고 남의 양을 훔치거나 잡아먹는다.

 

주님은 나를 목자로 세우셨는데 한동안 나는 목자가 아니라 도둑이요 강도짓을 하면서 살아 왔다.

다른 사람은 아랑곳 하지 않고 내 배만 부르면 되는 것처럼 얼마나 남의 양을 훔쳐 왔는지 모른다.

부목사 때 섬기던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권사님 딸이 불신 결혼을 하였다.

신랑은 작지만 제법 탄탄한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주일이 되면 겨우 얼굴 도장만 찍고 신랑과 함께 쇼핑하면서 세상적으로 럭셔리 하게 살아갔다.

어느 날 남편이 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코마상태로 1년 넘게 병원에 누워 있었다.

아내인 여집사는 열심히 병수발을 하였다.

하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즈음 여집사는 교회에 부끄럽고 면목이 없어서 교회를 옮기게 되었고 옮긴 곳이 다른 곳이 아니라 내가 섬기는 교회 부목사가 개척한 교회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몇 년이 지났다.

우연히 그 여집사와 연락이 닿게 되었다.

잘 지내느냐고 안부를 물었는데 신앙생활이 여의치 않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여기로 다시 오라고 강권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전화를 하게 되었고 결국은 여집사가 그 교회를 나와 내가 섬기는 교회로 오게 되었다.

담임목사님도 좋아하고 여러 성도들도 기뻐하였다.

나도 한 건 했다고 생각하면서 기뻐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일로 인하여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많이 힘들어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일들이 요즘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목사가 목자가 아니라 도둑이요 강도짓을 하는 일 말이다.

내가 바로 그런 자였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하나님 편에서는 왼쪽 주머니에 있는 사탕을 오른쪽 주머니에 옮겨 넣는 것에 불과한 일인데, 땅에 있는 교회들은 양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전도가 잘 안 되니까 더욱 그렇다.

어떻게 해서든지 남의 교회에 있는 성도라도 데리고 오려고 한다.

내가 살고 있었던 지역의 큰 교회는 대놓고 그런 일을 한다.

담임목사가 성도들에게 공공연히 다른 교회 사람들을 데리고 오라고 한단다.

사람이 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먹을 것도 많고 떨어지는 콩고물도 많은 것이라고 하면서 작은 교회 큰 교회 할 것 없이 데리고 오라고 설교 한다고 들었다.

새벽기도 때 낯선 사람이 오면 부목사가 그 사람을 미행해서 집을 알아 놓았다가 나중에 찾아가서 자기 교회에 등록하도록 종용한단다.

그 교회 출신 성도에게 들은 이야기라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

내가 그랬었고 많은 목사들이 이렇게 사역을 하고 있다.

왜 목회를 하는지, 목회의 목적은 무엇인지, 본질은 잊어버리고 탐욕에 사로잡힌 이리가 따로 없다.

욕심부리지 말고 나에게 맡겨 주신 양들에게 좋은 꼴을 먹이고 양육하면 되는데, 그렇게 훔쳐 온 양들에게 과연 무슨 꼴을 먹인단 말인가?

결국 그 영혼을 죽이는 일밖에 더하겠는가?

탐욕으로 얼룩진 목회는 결국 양을 병들게 할뿐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다.

 

주님은 목자요 나는 문지기로서 문을 잘 지켜야 하는데 문지기인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양을 잡아먹는 꼴이 되어 버렸다.

정말 복음으로 그 양들에게 생명을, 그것도 풍성한 생명을 주어야 할 목사인 내가, 생명을 주기는커녕 먹일 꼴이 없어서 쫄쫄 굶겨 죽이는 자였다.

맛있는 꼴을 준다고 이것저것 비벼서 잡탕밥을 만들어 주곤 했는데 이것이 그들에게는 생명이 아니라 바로 독약이었다.

그 독약을 먹고 비실거리며 상황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거기서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만물 안에서 자기만의 하나님을 만들어 그를 섬긴다.

양들은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다.

이런 양들이 어떻게 아버지와 아들의 영광을 보고 기뻐할 수 있겠는가?

지금 당장 먹고 사는 일에 매여 창세 전 아버지의 영광은 별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일은 결국 목자가 아니라 삯군이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이다.

나는 감추어지고, 오직 복음으로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목사의 역할이다.

그런데 양들에게 아버지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니 거기에만 머물러 있는 양들은 굶어 죽기 십상이다.

 

오늘 이 아침에 주님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본다.

이제 복음을 알고 날마다 말씀 묵상을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보는 자로서 남의 양을 기웃거리지 않을 것이며, 이제는 또한 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내게 주어진 양이 아주 조금 있을 뿐 달리 빼앗아 올 다른 양도 없다.

다만 누구에게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서 그들이 섬기는 그 교회를 이전보다 더욱 더 잘 섬길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바로 나의 일이다.

이제는 탐욕의 화신이 되어 내 주머니만 채우려는 그런 도둑이나 강도짓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할 수도 없다.

그저 누구를 선별하여 골라서 어떤 이들에게는 전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전하지 않는 그런 취사선택이 아니라 주님이 가라면 가고 가지 말라면 가지 않는 그런 목자로 복종하며 사는 목사가 되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탐욕의 화신으로서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우상숭배에 불과한 자가 되고 말 것이다.

 

나에게 주신 양이 얼마가 되었든지 그 양에게 복음을 전하여 이들에게 아들의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어 배불리 먹게 하는 것이 목회요 선교의 본질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시간이다.

양을 훔치는 절도요 강도였던 나는 이제 참 목자되신 주님이 오가는 문을 지키는 문지기이다.

오직 그 주님만을 전하는 자가 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양들에게 그 아들의 생명을 풍성하게 나누어주는 작은 목자가 되기를 다짐해 본다.

그리하여 복음을 들은 양들 또한 다른 타인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자기 목자의 음성 곧 참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인 복음에 귀를 기울여 주만 따라가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결국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그날까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바르게 정도를 걸어가는 양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지금 아프리카 차드와 세네갈에서 복음생명캠프를 진행중이다.

어린이 어른 다 합해서 2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서 갈급한 마음으로 이 복음을 들었고 또한 현재 듣고 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들리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는 것처럼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듣는 이들이 함께 한 호흡으로 기도하며 중보한다.

 

동녘에 떠오르는 찬란한 주의 얼굴의 빛, 영광의 빛이 태양보다 더 붉게 타오른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목사로 세움을 받았지만 절도요 강도였음도 알지 못하는 자였습니다.

남의 목장을 기웃거렸고, 내 양떼를 돌보는 일보다 어떻게 하면 저들을 훔쳐올까에 더 관심을 보였던 아주 흉측한 도둑이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였고, 나는 그 심판 앞에 굴복하였습니다.

무덤 안에 거하는 나를 주님은 가혹하고 매서운 손길로 다스렸으나 그 손의 온기만큼은 너무도 따스했습니다.

그곳이 주님과 함께 하는 자리요 성소임을 고백합니다.

그 자리에서 주님은 저에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 복음이 나를 살렸으며, 내 자신의 정체성을 보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들의 생명을 자원으로 살아갑니다.

탐욕이 아니라 분복으로 자족하는 마음을 배우기 원합니다.

훈련된 양을 훔치는 도둑이 아니라 복음으로 아들의 생명을 나누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말씀 앞에서 내가 바로 작은 예수요 작은 목자가 되기를 원하오니 주여, 이 종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오직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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