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오염된 영혼을 십자가 보혈로 덮어주옵소서.
진리의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8.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30.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40.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본문 주해)
28~32절 : 안나스가 예수님을 그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보낸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를 인계받은 가야바가 공회를 열고 공회는 신성모독의 죄로 예수를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이 공회의 재판이 생략되고,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새벽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의 관저로 끌고간다.
빌라도는 AD. 26~36년에 유다 지방의 총독이었다. 당시 총독은 가이사랴에 살았지만, 유대인의 축제 기간에는 소요를 방지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머물렀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정결한 몸으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방인의 관저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빌라도가 밖으로 나와서 고소건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율법 조문을 지킨다는 자들이 율법의 제정자인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것이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고발한 이유를 묻는다. 무리가 예수를 행악자로 고발하자, 빌라도는 유대인의 법대로 재판하라고 말한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자기들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어겼거나 신성모독의 죄를 범했을 때 투석형을 비롯한 사형집행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간음한 여인(8장)을 투석형에 처하려 있고 또 이미 스데반을 신성모독의 죄로 돌로 쳐 죽였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를 로마 총독에게 넘긴 것을 그를 반역자로 몰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하기 위함이다. 십자가형은 반역자들에게 부과되는 로마의 사형집행 방식이기 때문이다.
32절 말씀은 이것을 확증한다.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인가를 암시하여 주신 말씀이 이루어졌다.”(새번역)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려는 것에는 다른 중요한 이유도 있다.
그것은 율법에서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를 추종하는 무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것이었다.
33~38a절 : 빌라도가 예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라고 묻는다.
예수께서는 즉답 대신 그 말이 빌라도가 스스로 하는 말인지, 무리가 한 말을 인용한 것인지 묻는다. 빌라도의 말은 자기 말일 수 없다. 그는 단순히 유대인들이 내세운 정치적인 혐의를 심문하고 있을 뿐이다.
빌라도의 질문은 ‘이 자가 정말 정치적으로 위험한 인물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이 볼 때도 예수는 정치적 위험 인물이 아니다.
단지 유대인들은 ‘유대인의 왕’을 빌미 삼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함이요, 이를 위해 빌라도를 이용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한다는 고발을 받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한다.
다시 빌라도가 묻는다.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하지만, 왕이 되려면 땅이 있어야 되고 백성이 있어야 되고 주권이 있어야 되는데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면 그러면 너는 왕이 아니구나 하며 다시 질문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니라 내가 너의 말처럼 왕이다’라고 하신다. 내가 이를 위하여 왔다고 하신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왕권을 확증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으신다. 일단 예수는 빌라도가 의미하는 세상의 왕이 아니라고 하신다. 그가 왕인 것은, 진리에 대해 증거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만일 그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과거나 현재나 이 세상으로부터 감추어졌을 진리를 증거하기 위함이다. 아들 자신이 하나님을 계시하는 진리이고(1:18; 14:6), 그가 증거한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이다.
아버지의 말씀은 아들에게 주신 아들의 말이며, 곧 영생이다.
영생의 말씀을 듣는 자는 아버지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된 자이다. 그는 진리에 속하는데, 이는 아들의 음성(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대답은 왕은 왕인데, 이 세상에 속한 왕이 아니라는 것과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는다’ 이다.
빌라도에게는 수수께끼 같은 대화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는 진리에 속하지 않은 자이므로 진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진리가 밥 먹여 주냐는 식으로 말을 툭 던지고는 다른 말이 없는 것이다.
39a~40절 : 빌라도가 심문하여 보니 이 자에게 로마를 반역할 그러한 죄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은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하며, 유월절 특사로 풀어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한다.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빌라도에게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자기 아내가 그 옳은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말라는 말도 들었고(마27:19), 유대인의 고발 과정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리들은 큰 소리로 예수가 아니라,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외친다. 바라바는 강도였다.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확신했으나 무리의 집요한 요구로 결국 예수를 십자가형에 넘겨준다.
(나의 묵상)
빌라도는 예수님께 정치적인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예수님을 무죄 석방하려고 했다.
그의 마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것은 자기 아내가 한 말도 있었고(마27:19), 이와 더불어 유대인들의 고발 과정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그의 마음을 찝찝하게 했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빌라도의 시도는 물거품이 되고, 결국 빌라도는 자신에게 유익한 대로 선택을 하게 된다.
빌라도에게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권세와 지위가 진리였다.
‘진리가 무엇이냐?’(38절)
‘진리가 밥 먹여 주냐?’는 식으로 툭 던진 빌라도의 말이 늘 마음에 남는다.
내게도 밥 먹여 주는 진리가 필요했고, 그것을 진리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예수께서 나를 잘 되게 해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으니, 그런 점에서 예수님을 진리라고 믿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진리라고 말은 하는데, 그 근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를 잘 되게 하셔서 이 땅에 뿌리 내리게 하셔서가 아니라, 죄악된 이 세상에서 나를 떼어 내시니 진리이신 것이다.
이것을 알고 고백해야 진리이신 예수님을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다.
태어나기를 하나님과 분리되어 태어나, 사탄의 조종을 받으며 살아왔으니 거짓을 진리라고 믿으며 살아온 세월이 내게 길었다.
어느 날 복음을 듣게 하시니 이제껏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성령께서 일깨워 주신다.
나의 진리는 내가 만들어낸 우상 예수가 아니라, 성경이 증거 하는 예수님이신 것이다.
나같은 죄인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시고, 나타나 보이시고, 하늘에 오르사 성령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
빌라도가 원했던 진리는 그의 권세와 지위였다.
나도 긴 세월을 그 같은 것을 찾아 헤맨 자였다.
그런 내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참 진리를 알게 하셨다.
이제 나는 세상에 속한 자가 되어 세상의 말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진리에 속한 자가 되어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자가 되었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37절)
빌라도는 예수님을 위해 나름 애쓰기도 했지만, 자기 유익에 따른 선택을 하는 자가 되고만 것은 그가 진리에 속한 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창세전부터 나를 진리에 속한 자로서 택해 주셨다.
세상 속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온 자를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터치하시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끌어 주신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다 이루셨기 때문이다.
‘이미와 아직’ 사이, ‘묵시와 역사’ 속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다.
육으로는 한계가 있고 연약하지만, 영으로는 언제나 진리에 속한 자이기에 성령께서 나를 놓지 않으시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더욱 충성하고, 더욱 순종하기를 원한다.
(묵상 기도)
주님,
겉으로는 세상에 속한 자들과 섞여 살아가지만 분명한 구별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가 아니라,
아들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자가 된 것입니다.
아들의 음성은 진리요, 아버지의 말씀이요, 영생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실력으로는 결코 되지 않는 이 일,
날마다 성령께서 더하시는 이 일에 감격하며 살아가니
진리에 속한 자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을 세상에 전함으로 진리에 속한 자를 불러내는 나팔수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