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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3-21).

작성자복음지기|작성시간26.01.07|조회수65 목록 댓글 0

202617()

 

* 시작 기도

(7:55-56)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주님...

스데반 집사는 대제사장과 관원들 그리고 많은 유대인들 앞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야기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까지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를 죽인 자들이 바로 너희들이라는 과정에서 유대인들이 화가 나서 이를 갈며 그를 돌로 쳐죽였습니다.

이 죽음 앞에서 그는 죽는 자신의 연민이나 아쉬움을 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과 아들 예수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 때 스데반은 오히려 예수님이 하신 기도와 똑같이 하였습니다.

나의 영혼을 받아주소서, 그리고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종 사랑의 전형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거룩한 불구자로 서서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일 4:13-21

제목 :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 나의 묵상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우리를 사랑하시되 이종(異種)사랑으로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화목 제물로 삼으시고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사랑하셨다.

우리는 바로 이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든지 깨닫지 못하든지 우리는 그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기에 거기에 걸맞는 사랑을 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자는 또한 우리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해진다.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한 전한다.

그래서 누구든지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요라고 말하면 그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또한 그 사람도 하나님 안에 살게 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이며, 또한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시는 것이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그 때에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아들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두려움이 없고, 또한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다.

사람을 두렵게 하는 것은 내가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마음 때문인데 이런 자는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자이다.

 

사랑은 우리가 먼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 또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따라서 누구나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옆에 있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사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눈에 보이는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해야만 한다고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을 받았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모르는 자였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이 다른 나를 그토록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사람의 모양으로 보내사 십자가에 죽이시고 나를 당신의 아들로 삼아주셨다.

그런데 나는 같은 同種인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는 자였다.

나의 사랑은 사랑을 가장한 폭력에 지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두 명의 아들을 주셨다.

어려서부터 이 아이들이 아빠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잠언 말씀을 인용하여 초달하였다.

성경은 자식을 사랑하면 초달하라고 한다.

(한글개역. 13: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그런데 잘못한 아이들을 매로 다스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안에서 묘한 감정이 섞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매 안에 감정이 섞이고 그 매는 초달이 아니라 나의 분노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아이들을 말씀으로 잘 다스리고 훈육하려고 했던 것이 나의 분노로 변하여 결국 매를 맞는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곤 하였다.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은 질풍노도와 같다.

언제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르는 세대요, 그래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세대라고 말들을 한다.

나는 두 아들의 아비로써 그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잘못한 것을 질책하고 그것을 꾸짖어서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자였다.

그러나 나의 이 방식은 결국 아이들과 관계만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특히 큰 아들은 어려서부터 아빠에게 맞은 결과 아빠의 눈치를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모른다.

아빠를 보면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슬금슬금 나를 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빠로써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동종 사랑을 하려고 한다.

같은 사람끼리 사랑을 한다.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며, 자기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동종 사랑이다.

게다가 동종 사랑은 성격이나 습관이 다른 사람을 그 모습 그대로 봐주지 못하고 자기와 같은 사람으로 바꾸려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자기와 같은 습성으로 만들어서 동질화시킨 후에 그를 사랑하게 된다.

이런 사랑은 거의 일반화 되어 있다.

그러나 동종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이지만, 그 사랑의 목적은 자기중심적 사랑이라 할 수 있다.

나를 상대에게 주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를 나에게 맞추도록 이끌어오는 이기적인 사랑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사랑하며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동종 사랑을 뛰어 넘어서 異種 사랑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니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다.

나와 생각이나 가치관이 달라도 그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나와 하는 행동이 좀 달라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나를 노엽게 하는 행동을 할지라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요, 이것이 진짜 이종(異種) 사랑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으로써 이런 이종 사랑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나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능히 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

왜냐하면 그 사랑이 하나님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초달(楚撻)은 내 분을 섞어서 때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초달의 사전적 의미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것을 말한다.

부모나 스승이 자식이나 제자의 잘못을 징계하기 위하여 회초리를 들고 종아리를 때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감정이나 분이 섞여서는 안 된다.

물론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으면 아프지만, 그 안에는 때리는 사람의 사랑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진정한 초달은 사랑이다.

 

그러나 나는 사랑이 함유된 초달이 아니라 폭력을 행사하였다.

그 폭력은 나의 아버지 안에 있었던 것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잘못하게 되면 굉장히 무서운 얼굴로 매를 들고 와서 때리셨다.

그것은 나의 형님이나 나에게 무섭고 두려운 아버지로 각인되었다.

나는 생각하기를 내가 커서 결혼을 하여 아이들을 낳으면 절대로 아버지처럼 키우지 않겠노라고 다짐 또 다짐을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아이들을 낳아서 키우다보니 내 안에 어느새 무섭고 두려운 아버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실수를 한 아들을 때리는 나는, 초달이 아니라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나를 보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 몽둥이를 던졌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꿇어 엎드려서 용서를 구했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물론 아이들은 머리로는 이해를 했을지 모르나 아빠와의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 후로 아이들에게 매를 대지 않았다.

그러면서 아이들과의 관계도 점점 회복되어졌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좀 어긋난 길로 걸어가도 매를 들기보다 그 아이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아이들을 품고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기도하였다.

그러다가 복음을 듣게 되었고 하나님의 이종 사랑을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종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내 형제를 이종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의 이종 사랑이 아니라면 나는 죽어도 벌써 죽은 목숨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종 사랑은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고, 그 사랑이 나를 강권하여 주의 종으로 섬기게 된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

그렇기에 나에게 그리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도 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 가운데서 일어나는 일임을 인정한다.

이제는 그 상황을 내가 인위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내게 필요하기 때문에, 내 자녀들에게 가장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결국은 주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이 주시는 특별한 선물이다.

지금 당장 내 눈에는 아프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의 특별한 선물인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다.

합력하여 이루는 선()도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며 곧 하늘에 속한 것이다.

 

내가 내 방법과 나의 의도로 자녀들이나 사람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하나님께서 다루어 가시도록 내어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며 또한 최고의 사랑인 이종 사랑임을 믿는다.

오늘 아침 나를 이종 사랑하여 주신 주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 안에 나도 알지 못했던 분노가 어려 있나이다.

그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다른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나, 그런 나를 이종 사랑하시고 아들의 생명을 주셔서 이제 영생을 누릴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주님이 하시는 일을 인정하며 그 주권에 머리를 조아립니다.

나의 생각과 가치관에 좀 부딪힐지라도 그것이 나의 생각이 아니라 주님의 방식으로 주님께서 다루실 것을 믿습니다.

하여 소망이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있음을 날마다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 되게 하소서.

나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게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을지라도 그들조차 사랑하는 진정한 사랑, 곧 이종 사랑임을 깨닫고 행하게 하소서.

나는 할 수 없으나 주님은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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