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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장 13절 - 23절 - 세상의 중심이 주님임을 고백하면서 겸손히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며 살게 하소서

작성자신앙이삶|작성시간26.01.15|조회수85 목록 댓글 0

2026년 1월 15일 묵상 본문 : 마태복음 2장 13절 - 23절 - 세상의 중심이 주님임을 고백하면서 겸손히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며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따뜻한 일기 가운데 하루를 시작합니다.

주님이 베푸시는 따뜻한 은혜의 손길을 누리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주님은 늘 신실하게 저의 삶을 붙드셨음을 발견합니다.

할 줄 아는 것은 죄악을 행하는 것 외에 없는 자에게 선한 것과 진리를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생명을 누리며 사는 길을 보이셨고 걸어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의 삶은 신실한 은혜에 합당한 삶이 되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인생의 본질이 죄와 허물이며 하나님 앞에서 선한 것이 없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다시 주의 긍휼과 자비를 간구하오니 주의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옵소서.

신실하신 은혜를 따라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이끄시고 그 은혜를 증거 하며 생명 되신 주를 전하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변함없이 긍휼과 사랑으로 죄인을 돌이키시며 갈 길을 밝히시고 인도해 주시는 사랑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헤롯이 아이를 죽이려는 의도를 가졌기에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요셉이 애굽으로 피신해 가 있도록 명령하신다. 그리고 그 말씀에 즉각 순종하는 요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요셉은 천사의 명령을 듣고 밤에 바로 애굽으로 출발한다. 베들레헴에서 애굽의 변방까지의 거리만 해도 약 120km가 넘는 거리였다. 여행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 가운데 이동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요셉은 헤롯이 죽기까지 애굽에 머물렀는데 아마도 헤롯이 죽고 나서 다시 천사의 명령이 주어졌을 것으로 예상한다. 마태는 이러한 예수님의 행적을 호세아 11:1절의 말씀의 성취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호세아 11장 1절에서 의미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미래의 사건이 아닌 과거에 있었던 사건의 해석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가 호세아의 말씀을 미래적 사건으로 말한 것은 예수님은 애굽에 계속 거주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죄에서 자유하도록 이끌기 위해 오셨다. 결국 마태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상징으로 출애굽의 의미를 예수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용시켰음을 보여준다.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헤롯은 동방의 박사들이 자신에게 메시아의 출생지를 알려주기로 약속했으나 그것을 지키지 않았음을 알고 분노한다. 그리고 그의 포악한 성경대로 당시 베들레헴에 있는 2살 이하의 사내 아이는 모두 죽이는 잔인함을 보여준다. 당시 베들레헴에서 살해된 어린이는 약 20명 이하라고 추정하는데 이는 당시 베들레헴의 인구가 천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마태는 당시 유아 살해와 그 어머니들의 통곡이 예레미야 31장 15절의 성취로 제시한다.

이는 야곱의 아내 라헬이 자식이 없음으로 인하여 통곡하며 울었던 표현을 당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슬픔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20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헤롯의 죽음 사실을 알려 주시고 이스라엘로 가도록 명령하신다. 아마도 이때 요셉은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것이다.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아켈라오는 백성의 지도자이라는 의미를 담을 이름이다. 헤롯이 죽을 때 남은 아들은 안티파스, 아켈라오, 빌립 등 3명이었으며 이들은 유대 땅을 나누어서 통치하였다. 안티파스는 갈릴이와 요단 동편을 다스렸고, 빌립은 유다 남방지역과 이두매 지역, 요단 동편의 드라고닛을 다스렸고 아켈라오는 유다와 사마리아, 이두매 일부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다. 아켈라오도 헤롯 못지않게 잔인한 인물이었기에 하나님은 요셉을 베들레헴이 아닌 갈릴리 나사렛으로 옮기게 하신다.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나사렛은 갈릴리 호수 남서쪽에 위치한 언덕 위의 마을이며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엇다. 이곳은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하기 전에 살았던 마을이기도 하였다.(눅1:26) 나사렛은 나조라이오스라는 나무의 가지, 순, 싹을 의미하는 네체르와 관계된 단어로 본다. 이는 이사야 11장 1절에 나오는 이새의 뿌리에서 유래된 단어로 예수님의 모습을 상징하는 마을로 볼 수 있다. 이곳은 로마 군대가 주둔했던 곳으로 이스라엘에게는 경멸의 장소였다. 나사렛이라는 호칭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무 흠모할 만한 것이 없는 작고 보잘 것 없는 나사렛 마을처럼 예수님도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경멸을 받는 사람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묵상

 

예수님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베들레헴을 떠나 애굽으로 피신을 가게 된다.

이는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예수님이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나도록 도우시고 섭리하셨음을 보여준다.

마태는 이러한 하나님의 행하심을 구약 성경의 성취로 제시한다.

먼저는 출애굽 사건과 같이 예수님이 죄인들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으며 애굽에 있다가 다시 돌아오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대변하는 분이심을 선언한다.

그리고 요셉은 천사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애굽에서 헤롯이 죽기까지 머물게 된다.

순종하는 삶이 잘 되지 않는 오늘날의 성도들의 모습과 다르게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행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 백성의 갖춰야 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요셉의 모든 결정과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했으며 자기의 생각과 의지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애굽은 낯선 곳이며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이었을 것이다.

물론 당시 애굽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많았으며 회당도 짓고 말씀을 배우는 기관도 있었기에 요셉이 정착하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아는 사람도 없고 특별히 120km가 넘는 먼 거리 여행을 아내와 갓난 아기를 데리고 간다는 것은 결코 쉽게 순종할 수 없는 일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은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태도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만 순종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서 절망과 아픔을 고백하게 된다.

그러나 내게 소망이 없고 아픔과 고통만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의 모습 속에서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시고 아픔을 기쁨으로 바꾸신다.

그것은 사람의 노력과 의지가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며 가능한 것임을 가르쳐 주신다.

예수님은 이러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애굽에 있다가 예루살렘으로 오셨다.

그 모든 섭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진행되는 것이지만 죄인의 신분에서 하나님 백성의 일원으로 변화되는 것은 세상을 알 수 없는 놀라운 변화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증거 한다.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2:1~7)

인생의 본질과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들은 자신의 욕구를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깨달아 살아가는 자가 된다.

이는 땅의 것에 허무함을 알기에 자기의 욕심대로 살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사랑을 알기에 그 사랑에 합당한 열매, 섬김의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순종의 태도는 가장 지혜로운 삶을 세우는 능력이 된다.

요셉은 천사의 말을 듣고 순종하여 베들레헴이 아닌 나사렛으로 향했으며 이는 당시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와 함께 예수님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게 했다.

결국 하나님께 순종함이 인생의 지혜요 능력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을 주로 모시고 사는 것이 가장 능력 있는 삶의 비결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주님을 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모습은 주의 말씀에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자기의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겸손히 듣고 반응하는 모습이다.

세상은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말하고 행동하여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에 목적을 두고 계신다.

오늘도 그 주님의 뜻을 따라 내 생각과 마음이 중심이 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과 은혜, 그리고 인도하시는 손길에 중심을 두고 주를 따라가는 주의 백성으로 설 수 있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은 인생의 지혜가 사람의 논리와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것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내 감정과 논리와 방법을 제시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요.

어리석은 자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주 안에서 생명의 은혜를 누리며 살도록 인도하옵소서.

주님을 주로 여기며 사는 것이 지혜이며 능력임을 알고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 주의 음성을 듣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세상은 자기가 중심이 되도록 만드는 자가 성공자요 능력자로 여깁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님이 중심이 되셔서 주의 뜻에 겸손히 순종하는 자가 능력자임을 말합니다.

세상의 가치와 기준을 버리도록 도와주시고 오직 주님이 기준이 되도록 날마다 말씀 앞에 서게 하시고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이 인정하시는 삶, 순종의 모습이 나의 삶, 그리고 지체들의 삶 가운데 풍성하게 나타나도록 이끄실 것을 기대하며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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