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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1-12).

작성자복음지기|작성시간26.01.16|조회수106 목록 댓글 0

2026116()

 

* 시작 기도

(16:22-23)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주님...

주께서 비로소 제자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여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수제자 베드로는 주님 앞을 가로막고 서서 이 일은 결코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꾸짖었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도 베드로를 꾸짖으시면서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면 거기서 한 자리를 차지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여 예수님이 죽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임을 당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이 죄인도 베드로와 똑같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에 얽매여 있던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복음을 모를 때는 그저 육신의 일이 잘 되는 것만 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우리 주님과 함께 고난의 길 곧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하여 오늘도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이 하루를 거룩한 불구자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3:1-12

제목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나의 묵상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앞서 세례 요한이 먼저 등장하여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세례 요한은 세례를 통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세상에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세례 요한의 최대의 사명이다.

 

오늘 본문에서 세례 요한은 회개를 촉구한다.

특히 세례 베푸는 장소로 나아오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해서는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독설을 퍼부으면서 누가 너희에게 닥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하라고 일러 주었느냐고 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한다.

또한 11절에서는 자신은 너희가 회개하도록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라고 한다.

세례 요한이 등장하여 전하는 첫 일성은 회개이다.

 

병행 구절인 누가복음에서는 세례 요한이 회개를 촉구할 때 나아온 사람들이 어떻게 회개할 지에 대해서 묻는다.

(3:10-14)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이를 보면 회개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회개는 어떤 신비한 것을 행하는 것이나 크고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말한다.

삶의 방향이 바뀌면 더 많이 취하고 더 많이 쌓아두려는 생각이 나눠주는 삶으로 변하는 것이다.

삶의 방향이 바뀌면 욕심부려서 내게 유익으로 취하던 것을 가장 정상적이고 합당한 삶으로 변하게 만든다.

삶의 방향이 바뀌면 강탈하고 거짓 증거하며 항상 원망 불평하던 삶이 더 이상 빼앗지 않고 진리를 말하며 감사의 삶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삶의 방향이 바뀌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은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 곧 생명이 바뀌어야 한다.

번 생명에서 번 생명으로 바뀌는 것, 즉 아담의 만들어진 생명에서 아들의 태어난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에서 교회에 다니고 말씀을 듣고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하지만, 여전히 그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 자이다.

 

회개는 그냥 turn이 아니라 return을 의미한다.

15장에 나오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유산을 받아 아버지 집을 떠나서 외국에 나가 허랑방탕하며 모든 재산을 다 탕진하고 아무 먹을 것이 없어 가장 비참한 상태가 되었을 때, 아버지 집이 생각이 났다.

그는 그 자리에서 돌아서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회개이다.

그가 돌아갈 때는 이미 그의 존재가 바뀐 것이다.

 

아버지 집을 떠나고 아버지 품을 떠나 죄의 세력에 붙잡혀 살던 그가 자신의 가장 비참한 상태를 깨닫고 아버지를 생각하며 다시금 아버지의 품으로 가는 것 그 자체가 그의 존재가 변화되었음을 말한다.

존재가 바뀌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히게 된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듯이 말이다.

따라서 회개는 나온 자리, 즉 아버지 집으로 return하여 돌아가 아들의 신분으로 회복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바로 존재가 바뀌는 것이다.

그는 이제 아들의 신분을 가지고 아들답게 살아갈 수 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예순님을 은 30에 대제사장에게 넘겨 준 가룟 유다는 일련의 모든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죄를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잘못한 것을 깨닫고 스스로 뉘우쳤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27: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그는 분명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잘못을 알고 뉘우쳤다.

그러나 거기서 머물렀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으면 다시금 나아온 아버지 집,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는 그냥 그 자리에 머무르고 만 것이다.

그 후에 그는 받았던 은 30개를 성소에 던지고 나서 스스로 목매어 죽고 말았다.

 

이는 참 회개가 아니다.

그저 뉘우치고 후회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회개는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존재가 변화되지 않으면 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회개를 하였다.

어쩌면 그는 가룟 유다보다 더 악한 자인지 모른다.

그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던 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배신자의 자리에 남아서 후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다시금 일어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를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이전과 이후의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후 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이 되어 주님과 같이 순교하는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이다.

 

찬송가 853절의 가사가 이렇다.

참 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시고 구하고 찾는 자에게 기쁨이 되신다.

회개하여 존재 곧 생명이 바뀐 사람에게 주님은 진정한 소망이 되어 주신다.

회개하여 존재가 바뀐 사람은 위로부터 태어난 생명을 살게 된다.

그는 아담의 생명에서 아들의 생명을 얻은 자로 영생의 부요함을 누리는 자이다.

그가 진짜 거듭난 자요 참 복 있는 자이다.

그는 주님께서 손에 키를 들고 와서 타작 마당을 정리하시고 알곡은 곳간에 들이실 때, 그 곳간으로 들어갈 자이다.

 

그 곳간은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바로 오늘 이 시간 말씀 앞에서 주님을 존재로 만나는 자가 누리는 영생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17:3).

아는 것은 그 분과 함께 말씀으로 깊은 교제와 사귐 가운데 연합함이다.

그 안에 진정한 회개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된다.

존재가 변화되지 않고 여전히 옛 사람으로 사는 자에게 아름다운 열매를 구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다.

 

나는 60년 넘게 살면서 지은 죄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정말이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 것이다.

나는 죄를 짓고 죄책감이 들 때마다 가슴을 치면서 후회도 하고 나름대로 회개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다시 죄의 자리에 들어가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것은 내가 지은 죄에 대해서만 회개했지, 존재로 변화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죄의 세력에 지배를 받는 옛 사람의 속성은 죄를 은밀하게 즐기고 누린다는 것이다.

죄를 지으면 그 죄책감으로 인하여 견딜 수 없어서 회개는 하지만 내 존재가 변화되지 않으니까 계속해서 죄의 열매를 맺곤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삶을 무려 60년 동안 살아왔다.

왜냐하면 회개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회개는 존재가 변화되는 것이요, 생명의 질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은 죄의 현상만 보고 그것만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에 나는 애먼 몸뚱아리만 탓하고 괴로워했었다.

 

그런데 통합복음을 통하여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는 죄를 짓는 몸뚱아리의 문제가 아니라 죄의 세력을 밝히 보고 알 때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복음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사실(the fact)은 몸뚱아리는 온전하지만, 진리(the truth)안에서는 장애인이며 더욱이 중증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왕의 명령으로 나에게 주어진 복음이기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진리이다.

이제 나는 존재로 변화되었고 아담의 생명 안에서 옛 사람으로 살던 내가 이제는 아들의 생명을 얻어 영생을 맛보고 누리는 자가 된 것이다.

지금도 간혹 은밀하게 죄를 즐기려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오곤 한다.

하지만 나는 눈도 빠지고 팔과 다리도 잘린 불구자이기에 예전처럼 살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 때마다 말씀 앞으로 달려간다.

나는 아들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죽기에만 합당한 자를 살려주시고 아들의 생명을 주셔서 당신의 아들 삼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와 영광은 주님의 것입니다.

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회개도 알지 못했던 이 죄인을 주님은 십자가에서 그 귀한 보배 피로 용서하셨습니다.

나는 그런 사실을 입술로 고백하고 믿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여 남의 다리만 긁는 자였나이다.

주여, 이 죄인을 용납하시고 당신의 생명을 주셔서 영생으로 살 수 있게 하셨사오니 이제 나의 남은 인생을 주님께 드리나이다.

나는 오직 주님의 것이오니 주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여 주옵소서.

지금 죽을지라도 주님의 뜻이면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나이다.

아들의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주님 안에서 참 안식과 평강을 누리오니 오늘도 말씀으로 찾아와 주신 당신을 내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환영하고 용납합니다.

나도 용납하지 못한 나를 용납하여 주신 주님을 이제 용납하나이다.

주님은 나의 생명이시며 나의 전부입니다.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영광을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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