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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이 있어야지.... (마4:1~11)

작성자묵상여행|작성시간26.01.18|조회수131 목록 댓글 0

(시작 기도)

주님,

오늘은 여신도 주일로 지키며 실로암 성가대 찬양을 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오니 정결케 하옵소서.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자에 평강 주심을 믿습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본문 주해)

1~2절 : 예수께서 물로 세례를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는 것처럼,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것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는 일이다.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일이다.

 

예수님의 ‘40일 금식’은 유대인들로서는 모세의 금식을 기억하게 된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하여 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출애굽 또는 출 세상을 보여주기 위하여 40일 금식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40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사십 년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 전체와 성도의 일생도 다 40이라는 숫자에 담을 수가 있다.

그 이유는 시험을 받는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모세의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시험에서 실패한다. 그럼에도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내심으로 자기 백성을 아버지의 나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을 보여주신다. 

 

3~4절 :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은 40일을 굶주린 예수께 나아와 하나님의 아들 된 권능으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된 능력으로 굶주림의 문제, 먹고 사는 문제, 경제 문제를 해결하라고 유혹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로 영광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먹고 사는 일을 풍성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즉 죄사함과 생명을 주는 구원을 이루기 위해 오신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으로 시험을 물리치신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예수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에서 사람이 떡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부인하지 아니하셨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복은 그 이하에 이어지는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은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안에 거하는 존재로 지음 받은 것이다. 그가 하나님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이 그의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

 

5~7절 :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은 만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것이다.

이때 마귀가 시편 91:11~12절을 인용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경건한 자를 보호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마귀의 의도에 끼워 맞춰 인용한 것이다.

 

예수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지 않으셨다.

그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신6:16)는 말씀으로 시험을 물리치신다.

 

믿는 자들 사이에서도 정작 주어야 할 생명의 말씀보다 외형적이고 종교적인 기적들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마귀의 시험인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들에게 보암직한 것을 제공하여 이루어내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자기 약속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는 것이다.

 

8~10절 :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은 지극히 높은 산으로 올라가 예수께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노라고 한 것이다.

마귀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세상의 영광으로 유혹한다.

하나님이 지으시고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만물을 마귀는 자기의 것이라고 속이며 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실 일은 마귀를 멸하고 자기 백성을 구속하는 일을 자기 죽음으로 이루어내시는 일인데 세상의 영광이라는 방식으로 이루어내라고 마귀가 유혹하는 것이다. 

드러나는 것, 유명해지는 것, 성공하는 것, 영광 받는 것은 확실히 시험의 자리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고 명하시고,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신6:13)는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치신다.

 

11절 : 마귀가 예수님을 떠난 것을 누가복음에서는 ‘얼마 동안 떠나니라’(눅4:13)고 한다.

‘얼마 동안 떠났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애에 계속 마귀의 유혹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의 압력도 유혹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압력에 굴복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또 베드로조차 예수님을 유혹하는 자리에 있기도 했다. 십자가를 지지 못하도록 말리고 나서는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다.

 

이러한 모든 유혹의 정점은 바로 십자가이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너를 구원하여 보라’ 하는 이 최후의 유혹에도 예수께서는 어떤 표적도 기적도 없기 그저 ‘다 이루었다’고 하면서 죽으신 것이다.

 

(나의 묵상)

예수님이 받으신 세 가지 시험은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라면 다 받는 시험이다.

잘 먹고 사는 일에서부터 이 세상에서 보호를 받는 일과 성공과 출세 등 높이 되는 일까지, 성도라도 이 땅을 살아가노라면 이 유혹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라고 마귀가 한 것은,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성도라면’ 이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사탄은 매일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네가 사는 모양이 그 꼴이냐?’

실제로 경제적으로 가난하거나 세상 속에서 낮은 자의 위치에 있는 삶일 수도 있고, 영적으로 연약한 모습일 수도 있다.

사탄이 계략과 술수가 뛰어난 존재이니 성도의 이런 연약한 빈틈을 지나칠 리 없다.

틈만 나면 유혹하고, 기회만 되면 낙담을 시키는 것이다.

사탄의 최종 목적은 성도들을 주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죄를 지어 멀어지게 하든지, 절망감을 주어 제풀에 나가떨어지게 하든지.....

 

하나님의 아들에게도 이런 시험과 유혹이 있었다면 성도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겠다.

그러나 그것을 이미 아시는 주님께서 성도가 그의 일생의 시험과 유혹 앞에서 어떻게 주님을 따를 것인가를 모본으로 보여주셨다.

그것은 바로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말씀으로 사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성도가 어디 있겠는가?

예수 믿는 자라면 ‘말씀(과 기도)’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무조건 ‘아멘’한다.

그러나 입으로는 ‘맞습니다’ 해 놓고는 말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바빠서, 피곤해서, 게을러서...... ‘주일의 말씀만으로 충분하지 뭘 또?’에 이르기까지 변명이 다양하다.

 

나도 그랬다.

주일에 목사님 말씀에 은혜 받고, 일주일에 서너 번 큐티를 숙제 해치우듯이 하고, 통독 진도에 맞추어 성경을 읽어가니 내가 해야 할 바를 다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총은 허리에 찼는데, 막상 총알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대번에 마귀를 쫓아내실 수도 있으셨을 것이다.

쨉도 안되는 것을 그렇게 상대해 주시는 것은 내가 어떻게 마귀를 상대하며 싸워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마귀가 속이며 인용하는 말씀 앞에 한 마디도 못하고, 쩔쩔매는 꼴이 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다.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에 ‘아멘’ 하며 총을 허리에 찼다면, 총알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한 지 10여 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다.

마귀를 대적하는 말씀의 총에 총알이 점점 많이 준비됨을 느낀다.

주님과 나를 떼어놓으려는 사탄의 온갖 이간질에도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내가 총을 쏘는 순간이다.

그러면 마귀는 나를 힘없이 떠나갈 수밖에 없다.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가 잠시 예수님을 떠나고 또다시 그분의 일생을 기웃거리며 방해하고 유혹하였듯이, 나의 평생에 이놈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겠지만, 늘 말씀 안에 있으니 완전한 안전지대인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4절)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7절)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10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먹으며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이 땅의 풍성함과 높은 자리를 주시려고 오신 예수님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오신 예수님이심을 보이시려고

마귀의 시험까지 마다하지 않으신 나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

인생의 모든 유혹과 시험거리 앞에서 주님께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상대할 가치도 없는 존재를 상대하시며

말씀으로 그것을 꼼짝 못하게 하신 모본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치고,

총은 있어도 총알이 없는 자들에게

어떻게 총알을 준비하는지 교제하며 살겠습니다.

 

성령님, 이끌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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