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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소중한 지체들을 떠올리며(고전12:21~31)

작성자묵상여행|작성시간26.06.06|조회수114 목록 댓글 0

(시작 기도)

주님,

어제 공원 연주와 금요기도회를 마치니 몸이 몹시 곤하였습니다.

전날, 네팔 선교 생각으로 3시간밖에 잠을 못잤기 때문입니다.

기뻐 흥분된 마음 때문에 잠을 설친 것이니 아무 문제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보다 더 응답하시는 주님을 기대할 뿐입니다.

지난밤에는 푹잠 자게 하시니 회복되었습니다.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기리는 현충일입니다.

제 삶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바쳐지는 것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세상 속에서 늘 오염되는 영혼입니다.

주님의 보혈로 덮어주옵소서.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진리로 인해 기쁨의 춤을 추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본문 주해)

21~27절 :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지체들이 서로 돌볼 것을 강조한다

은사를 주신 것은 한 몸을 이루시기 위하여 주셨기에, 어떤 차별이나 우열이 있을 수가 없이 오직 한 몸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지체가 자기 잘난 체하여도 다 몸에 붙어 있어야 지체가 될 뿐이다.

그래서 성도 각자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또 지체의 각 부분이므로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됨을 바울 사도는 강조하고 있다.

몸의 각 기관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듯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어느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온 몸이 고통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돌아보아 연약한 지체에게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28~30절 : 각자 받은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라고 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교회 안에 섬김의 도구인 직분을 소개한다.

‘첫째. 둘째’라는 서열은 신분상의 차별이나, 중요성을 말한다기보다, 교회의 기초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 시간의 순서로 보아야 한다. 즉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다.

 

사도는 그 직임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명령을 받은 자로서, 교회 전체의 인정을 받고 그 능력이 분명하게 드러난 자를 가리킨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이며, 교사는 사도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이다. 당시 교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교사의 위치는 상당히 중요했다. 능력 행하는 자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나타내는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이다.

 

몸에 여러 지체가 존재하는 것과 같이 교회에서도 모두가 동일한 은사와 직분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각광을 받거나 선호하는 은사 받기를 원한다거나 직분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억제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은사나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31절 : 바울 사도는 ‘더 큰 은사, 가장 좋은 길’을 보이겠다고 한다.

더 큰 은사의 기준은 교회에 덕이 되는 것, 곧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바울이 보이겠다는 ‘가장 좋은 길’은 13장의 ‘사랑’으로 연결된다.

어떤 은사든 직분이든 간에 ‘사랑’으로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나의 묵상)

요즘처럼 지체의 소중함을 실감하는 때가 없는 것 같다.

각자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각자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교회의 지체들과 연합회 지체들이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뿐이다.

그리고 서로 돌보고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고, 나도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아니라 고맙고 감사한 일이 되는 것이다.

내게 은사를 주시고, 직분을 주셔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붙어 있게 하신 은혜가 참으로 크다.

 

오늘 새벽에 목사님께서 교회는 오케스트라와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물론 자주 들어왔던 말씀이다.

각자의 소리를 내되 지휘자의 지휘에 맞추어야 한다.

그런데 지휘자가 누구인가?

지휘자는 바로 주님이시다.

 

주님의 지휘를 본다는 것은 곧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것이다.

매일의 말씀은 나의 어리석음과 부족함을 늘 일깨워 주신다.

지체를 보며 ‘왜 나와 다를까?’ 했던 분노와 판단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이제 그 ‘다름’이 내게 너무도 필요한 지체의 은사임을 실감하고 주님께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마치 돌봄이 필요 없는 자같이 굴었던 교만을 회개한다.

참 부족하고 어리석은 존재인지라 그동안 지체들의 도움을 가볍게 여긴 것도 회개한 것 중에 하나이다.

역할이 다른 지체, 그래서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 그래서 서로 돌보아야 할 존재임을 알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한다.

 

주님의 지휘 아래, 내가 혼자 소리를 낼 때가 있고, 다른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어 소리낼 때 은은히 받쳐주는 배경이 되는 소리를 낼 때가 있고, 그 강약을 조절하고, 드디어는 모두 합쳐서 힘있게 연주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이 모든 때, 지휘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때 주님의 뜻 안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때 지체들은 서로의 소중함을 더 실감한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의 소중함을 알아 서로 돌보라는 주님의 지휘에 반응하는 싱그러운 아침이다.

 

(묵상 기도)

주님,

이 아침에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소중한 지체들을 떠올리며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한 지체가 심히 아프니 저희가 함께 아파합니다.

모든 치료과정에서도 지휘하시는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

더욱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냄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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