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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주님의 단어 (고전13:1~7)

작성자묵상여행|작성시간26.06.07|조회수128 목록 댓글 0

(시작 기도)

주님,

주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시고

지체들과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하게 하옵소서.

 

오후에 연합회 실행 회의가 있습니다.

무미건조하고 의례적인 회의가 아니라,

주님의 이름이 높여지는 시간이 되어 하늘의 기쁨이 충만한 시간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진리의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본문 주해)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수많은 은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 사이에 ‘사랑장’이라는 13장이 있다.

그런데 이 사랑장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은사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점검하는 장이다.

 

1~3절 : 사랑으로 사용되지 않는 은사의 무익함을 말한다.

방언, 천사의 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아는 예언하는 능력, 산을 옮길 만한 믿음, 자신의 모든 것으로 구제하는 것,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것....

고린도 교회에서는 이런 것을 은사로 여겼다.

그러나 이러한 대단한 은사가 있을지라도 사랑으로 행하지 않으면 그런 일을 행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정도가 아니라, 예수께서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 하시는 것이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고린도 교회에서는 다른 은사들보다 특히 방언의 은사가 훨씬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방언은 울리는 구리와 꽹과리에 불과하다.

고린도에서 이방 제의를 열렬히 행할 때, 구리와 꽹과리를 미친 듯이 쳤다. 즉 사랑으로 사용되지 않는 방언의 은사는 이교도들이 신을 내리게 하려고 사용하는 그런 시끄러운 악기의 소음과 같은 것이다.

 

4~7절 : 사랑하기 위해 7가지의 해야 할 것이 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 인내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은 온유한 것 즉 친절한 것이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진리를 떠난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다. 즉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다.

또한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끝까지 소망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꿋꿋하게 견디어 내는 것이다.

 

또 사랑하기 위해 8가지의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투기(시기), 자랑, 교만, 무례함,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음, 성냄, 악한 생각을 하지 않음,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 등이 전부 사랑으로 가는 길에 버려야 할 것들임을 알아야 한다.

 

이 사랑의 모든 내용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다.

 

(나의 묵상)

아무리 많은 은사를 받았어도 사랑으로 행하지 않으면 은사가 없는 것보다 못하고, 아무리 탁월한 은사라도 사랑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으로 행하는 은사의 궁극적 목적은 교회(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복음을 알지 못했을 때, 내가 받은 모든 은사를 내 자랑으로 여기고 사랑으로 행하지 않았다.

복음을 알고 생명의 삶을 사는 이즈음은 영혼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커지고 있다.

그래서 나도 사랑으로 행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본문을 대한다.

그런데 역시, ‘사랑’이란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을 확인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첫판부터 걸린다.

나는 오래 참지 못한다. 옛날보다는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 참는 것이 한숨을 쉬면서, 때로는 이를 갈면서 참는 것이다.

 

오늘 사랑의 내용의 주체를 예수님으로 바꾸면 다 맞아떨어진다.

예수님은 오래 참으셨고, 온유하시며, 진리 자체이시다.

예수님은 인간의 허물 정도가 아니라 죄를 덮어주셨다.

그리고는 드디어는 저주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다.

 

나는 조급하고, 사납고, 시기하고, 자랑과 교만의 대가(大家)이다. 또 자기중심적이라 예의 없이 굴 때가 많고, 내 유익을 찾고, 관계 속에서 따지고 성 내는 일이 많고, 내심 악한 것을 생각하는 자이다. 불의라는 것을 알아도 이기적인 생각에 슬그머니 넘어갈 때가 있고, 진리와 상관없는 일이라도 박수를 치며 기뻐할 때가 있다.

 

세월이 흘렀으니 과거보다 내가 좀 나아졌을까 기대하며 본문을 대하지만, 역시 나는 참 한결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시고, 이 사랑으로 나를 오래 참아주시는 예수님을 묵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전에는 그저 욕심을 더하여 ‘이런 사랑을 하게 해 주소서’ 기도했는데, 이제는 나 자신에 대한 회개와 애통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가 더 많아졌다.

 

사랑이 없으므로 모든 은사가 헛방으로 되어 버리는 그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나를 정결케 하시는 주님의 보혈을 의지한다.

모든 은사의 바탕이 되어야 할 그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게 하는 죄악 된 나의 본성을 순간마다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오직 주님의 몸에 붙어있는 가지가 되어 그 사랑의 작은 열매라도 맺기를 원하고 원할 뿐이다.

 

(묵상 기도)

주님,

‘사랑’은 저의 단어가 아니라, 주님의 단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가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제가 주님께 연합되는 것만이 답임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주님께 꼭 붙어있음으로

주신 모든 은사가 점점 사랑으로 사용되어지게 하옵소서.

 

오늘은 말씀을 맺는데도 다소 무거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으며 기도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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