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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내 삶에 대한 애통함 그리고 기도(고전13:8~13)

작성자묵상여행|작성시간26.06.08|조회수117 목록 댓글 0

(시작 기도)

주님,

주님께 순종하는 모습의 결과가 사람에게는 참 바보같아 보입니다.

그런데도 바보가 되는 것에 마음의 평안을 얻으니 곧 자기부인이요, 십자가를 따르는 삶입니다.

덫을 놓고 기다리는 사단에 대해서는 승리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십자가에 이끌리며 살게 하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본문 주해)

오늘 본문은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는 ‘사랑의 영원성’을 말한다.

 

8~10절 : 예언(복음의 메시지)과 방언(영적 언어), 지식(하나님을 아는 지식) 등의 은사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주어진 것들이다. 따라서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는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는 것이다.

 

종말의 때가 오면 아무리 탁월한 은사라도 다 사라진다. 성령의 은사란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성도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게 한다. 종말이 임하면, 모든 은사가 그치는데 당연히 예언도 방언도 지식도 그친다. 종말의 완전한 것에 비하면 현재는 부분적인 것이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한다. 종말에 완전한 것이 드러나면 부분적으로 하던 것은 사라진다.

 

그러나 사랑만이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않고 영원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

 

11~12절 : 어린아이 때는 어린아이 때의 것만 알지만 장성한 사람이 되면 어린아이의 일을 버린다는 것이다. 그 버려야 할 어린아이 때의 일이 바로 예언이나 방언이나 지식 등 여러 가지 은사들이라는 것이다.

 

지상적 삶에 속한 자는 바울이라도 어린아이이다. 그는 부분적으로 말하고 부분적으로 깨닫고 부분적으로 생각한다. 부분적으로 아는 것은 거울로 보는 것과 같이 희미하다.

당시 거울은 희미하게 보이는 청동 거울이었다.

지금 주님을 보는 것은 희미하다. 그러나 종말에는 주님을 대면하여 본다. 또한,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된다.

 

지상적 삶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제한적이다. 이것은 불충분한 것을 뜻하기보다, 불완전한 것을 뜻한다. 지상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다 알지 못해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주를 다 알지 못해도 주님은 이미 우리를 다 알고 계신다는 뜻이다. 비록 우리가 주님을 다 알지 못해도 충분한 것은 주께서 우리를 다 아시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때’나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한 상태’란 현재 이 땅에서의 성도들의 삶의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천국은 확실히 존재하며 그때(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반드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볼 날이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가치에 삶을 드리라는 것, 즉 사랑하며 살라는 것이다.

 

13절 : 이렇게 은사는 유한하지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영원하다.

그런데 믿음과 소망보다 사랑이 위대한 것은 사랑이 하나님의 본질의 계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로 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그 안에서 사는 자는 오직 사랑으로 행한다. 이것은 종말에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삶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유기적인 발전 단계의 마지막 지점이 사랑이라는 것이지 다른 두 가지가 더 열등하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 나라에 소망이 없다면 사랑도 존재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오직 사랑으로 사용되는 은사가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다.

 

(나의 묵상)

나는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들로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장차 주님 다시 오시는 그때에는 이 모든 은사들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이야말로 모든 것이 온전해지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는 유한하다.

 

그러나 성도가 가질 수 있는 믿음, 소망, 사랑은 영원하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라는 말씀이다.

성도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고, 그 소망을 가진 자는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을 닮아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사랑’ 문제로 마음에 갈등이 많다.

분명한 믿음과 소망을 가졌는데 왜 나는 여전히 사랑이 없는 자일까 생각해 본다.

육신을 입고 이 땅을 살고 있는 나의 약점을 잡아 죄의 세력은 나의 믿음과 소망까지도 나를 위한 것으로 바꾸려고 유혹하고 속인다.

복음을 알기 전에는 그 거짓에 속아 입으로는 ‘주의 일’이라 하지만, 속으로는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한 ‘나의 일’을 열심히 했었다.

그러니 사랑 없는 자가 되어 그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어 자기 일에 분주한 자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복음과 생명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창세전 내재적 삼위일체로 계신 하나님과 이 역사 속에서 창세전의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경륜적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그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그 영원한 생명을 나에게도 주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다. 그 믿음이 이 땅에서부터 이미 시작되는 영생의 삶을 살게 하고 또 천국 소망을 가지게 한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죄의 세력에 속지 않는다.

나는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분명한 자가 되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 창세전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내게 생명을 주시는 십자가 사랑을 붙든 자가 되었다.

물론 때로 넘어지고 자빠지지만 기어서라도 이 십자가를 붙든다. 아니 내가 붙드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붙들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내 삶에 대한 애통함이 간절한 기도가 되어 주님께 드려진다.

 

매일의 말씀 묵상은 나의 믿음과 소망이 진실로 말씀 중심인지를 점검하게 한다.

말씀 중심의 참된 믿음과 소망을 통하여 주님의 본성인 ‘사랑’이라는 온전한 열매가 내 삶에도 맺혀지길 간구한다.

이 땅을 사는 동안 내게 주신 모든 은사가 주님의 영원한 사랑을 담은 그릇이 되어 가는 곳마다 쏟아부어지길 기도한다.

그렇게 살다가 드디어는 주님의 얼굴을 맞대어 보게되는 행복자가 되길 소원한다.

 

(묵상 기도)

주님,

믿음과 소망은 있다면서

사랑 없는 저의 이중성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아무리 결심해도 되지 않는 이 일을 주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매일의 말씀을 통해 오직 십자가에 연합되는 삶을 살게 하시어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의 열매가 제게도 맺어지게 하옵소서.

 

그렇게 살다가 주님 뵈옵기를 소망하오니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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