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장 13절 - 25절 - 악한 일에는 미련한 자로 선한 일에는 지혜로운 자로 세우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소서
작성자신앙이삶작성시간26.06.10조회수55 목록 댓글 02026년 6월 10일 묵상 본문 : 고린도전서 14장 13절 - 25절 - 악한 일에는 미련한 자로 선한 일에는 지혜로운 자로 세우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한 주의 절반인 수요일 아침을 시작하며 주께로 나아갑니다.
땅의 것을 얻기 위한 수고로 조금은 몸이 지쳐있는 것을 느낍니다.
육신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주의 은혜로 강건함을 얻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모든 상황과 여건은 오직 주님의 손길 가운데 주어진 것임을 고백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주의 뜻을 분별하게 하시고 주의 길을 찾아 그 길을 걸어가도록 도와주옵소서.
오늘도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오늘도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주의 은혜를 나누는 자 되길 소망합니다.
깨어 있게 하시고 주님의 지혜를 따라 진리를 드러내는 일에 힘쓰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성령을 통해 일깨워 주시고 바른 길로 이끄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바울은 방언의 기도는 통역이 필요함을 제시하며 통역이 있을 때 방언 기도는 개인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기도로 변하게 됨을 보여주고 있다.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바울은 방언의 기도는 영의 기도이지만 마음의 열매는 맺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이기에 알아들을 수 있는 이성적인 기도가 병행되어야 함을 제시한다. 방언기도와 이성적 기도 둘 다 함으로써 자신과 교회에 유익이 되는 기도생활을 해야 함을 제시한 것이다.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바울은 방언 기도가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하면 감사할 수 없고 아멘으로 화답할 수 없음을 제시하면서 이는 자신에겐 유익하나 다른 이에게 덕을 끼치지 못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바울은 자신도 방언을 할 줄 알고 고린도 성도들보다 더 많이 할 수 있기에 바울이 방언하는 자들을 시기하여 이렇게 말한다고 하는 오해를 종식시킬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고백한다.
19 그러나 교회에서 내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바울은 방언보다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보다 큰 유익을 끼치는 것임을 제시한다.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바울은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악에 대해서는 어린아이가 되고 지혜에 있어서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권면한다. 이는 교회 공동체를 위한 일에는 지혜로운 자가 되고 자기 은사에만 열중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모습에서 벗어날 것을 권면한 말이다.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바울은 이사야 28:11,12절을 인용하여 앗수르 인들을 통한 심판의 말씀을 전했으나 이스라엘이 듣지 않아서 결국 심판에 이르게 된 사건을 언급한다. 그 이유는 고린도 성도들의 방언이 당시 앗수르의 방언과 같이 심판을 향한 선포임에도 불구하고 알아듣지 못하면 고린도 성도들도 결국 심판에 처하게 되는 것과 같음을 제시한 것이다.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바울은 방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믿지 않으면 심판의 근거가 됨을 말한다. 반대로 예언은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기회와 힘을 공급하는 것임을 제시하고 있다.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온 교회가 함께 모인다는 것은 공적 집회로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 모두가 방언을 하면 초신자나 불신자들이 볼 때 미친 사람과 같은 취급을 할 것임을 제시한다.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된다면 그 복음을 듣고 허물과 죄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게 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그리고 고린도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다는 고백을 하게 될 것임을 제시하고 있다.
나의 묵상
바울은 방언은 통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제시하면서 방언을 하려면 통역하기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교회에 유익이 될 수 있음을 선언한다.
통역이 없는 방언은 개인에게는 유익이 될 수 있으나 교회에는 덕을 끼칠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모든 성도들이 공적 예배에서 방언만 한다면 초신자나 불신자들이 성도들을 미친 사람과 같은 자들로 취급하게 될 것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바울의 권면은 한국 교회가 기도원에서 방언하는 모습이 TV를 통해 방영되었을 때 나타난 반응을 보여준다.
교회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방언 기도를 뜨겁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초신자나 불신자들은 열광적인 방언 기도를 보며 광신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바울은 방언보다 예언을 하라고 권면하면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초신자나 불신자들도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주께 돌아오게 될 것을 제시한다.
이러한 모습은 평양에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서 자기 죄를 깨닫고 고백하며 서로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불신자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성도들을 칭찬했던 일을 생각하게 만든다.
예언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깨닫고 전한다는 관점에서 이러한 교회의 모습은 사도 바울이 제시한 예언의 유익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오늘날 교회가 이러한 모습이 극히 적어진 이유는 아마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깨닫는 일이 적이 때문이며 또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일이 빈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의 교회는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보다 사람이 주는 휴머니즘에 더 강하게 반응할 때가 많으며 인간적인 재미와 만족을 하나님의 기쁨과 은혜로 여기는 모습이 많다.
그래서 설교 본문의 말씀을 통해 무엇을 말했는지를 기억하는 사람보다 설교 가운데 했던 예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이런 예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임을 느낄 때가 많다.
히브리서 기자도 당시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서신을 전하면서 그들이게 멜기세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들이 이것을 오해할까 두려워서 제대로 말할 수 없음을 이야기했다.
이는 말씀에 대한 분별력이 없으면 그 신앙은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임을 제시했던 것이다.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5:11~14)
바울은 악에 대해서는 어린아이가 되고 지혜에 대해서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권면한다.
이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미련하게 반응하고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는 성숙한 자와 같이 행동할 것을 권면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자기 이익에 대해서는 장성한 자가 되고 교회의 진정한 유익을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사도 요한도 바울과 같이 동일한 내용으로 가이오를 향해 권면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요삼1:11)
오늘도 주의 말씀은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그 깨달은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며 순종하는 것이 영적으로 장성한 자의 모습임을 가르쳐 주신다.
또한 모든 삶의 변화는 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가능하기에 오늘도 그 복음을 선포하는 자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느낀다.
오늘날 교회에 직분자도 많고 스스로 지도자로 자처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진정한 지도자요 주님의 제자는 복음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전하며 또한 순종하는 사람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그런데 여전히 내 모습은 어린 아이와 같이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이 많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또 다시 주의 긍휼과 자비가 아니면 어찌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언제 장성한 자의 모습으로 설 수 있는지 가늠할 수도 없는 지경임을 보게 되지만 또한 여전히 주님은 기회를 주시고 주의 복음위에 설 수 있도록 이끄시고 계심을 고백하게 하신다.
그래서 그 은혜를 힘입어 오늘도 복음을 통해 생명의 자리로, 무능하지만 주의 능력으로 서는 자리로 나아가도록 도우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은 여전히 미숙하고 어리석으며 주의 뜻에 무지한 저의 모습을 보게 하시고 주의 긍휼과 자비를 구해야 하는 자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언제까지 이러한 연약하고 무지한 모습으로 살게 될지 알 수 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여전히 말씀하고 계시며 깨닫게 하시고 주의 은혜를 구하며 깨어 있는 백성이 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복음의 말씀을 깨닫고 그것을 전하는 일에 힘쓰는 자 되게 하시고 온전한 때를 바라보며 오늘도 주님과 연합되기를 힘쓰는 자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세상은 자기의 유익과 편안함을 위해 전력으로 질주하며 나아갑니다.
그것을 막을 사람도 없고 힘도 없으며 그렇게 할 이유도 없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악한 일에 미련하고 선한 일에 지혜로운 자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시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인내하며 주의 뜻에 합당한 자로 살아가도록 친히 이끌어 주옵소서.
오늘도 주어진 모든 상황에서 주님의 주 되심을 드러내고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날마다 갈 길을 비추시고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