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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마음의 다섯 마디의 말이 생명의 언어가 되길 기도합니다. (고전14:13~25)

작성자묵상여행|작성시간26.06.10|조회수133 목록 댓글 0

(시작 기도)

주님,

우리는 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존재들이오니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주님께서 판단하여 주옵소서.

 

새 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오염된 영혼을 주님의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정결한 영혼에 생명의 말씀이 담기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본문 주해)

13~19절 : 일단 바울 사도는 방언을 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소망하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그 방언에 예언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14:5)

방언으로 기도하면 그 영은 기도할지 몰라도 그 사람의 이성은 이해하지 못한다. 즉 어떤 사람이 공중 예배 때 방언으로 축복과 찬송과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더라도 그 말을 회중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다면 회중은 그 기도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대가 영으로만 감사를 드리면, 갓 믿기 시작한 사람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듣지 못하므로, 어떻게 그 감사 기도에 "아멘"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훌륭하게 감사 기도를 드린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덕이 되지 않습니다.”(16~17절, 새번역)

 

바울은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방언을 말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러기에 방언보다 예언하기를 더 사모하라고 당당하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교회에서는 방언으로 일만 마디 말하는 것보다 오히려 이성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여 다른 사람을 가르치라고 권면한다.

 

20절 : “형제자매 여러분, 생각하는 데는 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악에는 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데는 어른이 되십시오.”(새번역)

“성도 여러분, 생각하는 데 있어서는 어린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악에 대해서는 갓난아이가 되어야 하겠지만, 생각하는 데 있어서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쉬운 성경)

 

‘지혜’는 ‘생각’으로 번역된다.

이 생각은 ‘인식하고 분별하는 기능’이며, 새롭게 된 이성의 활동으로 주어진다.

바울은 이성을 사용하는 예언을 중시함으로써 방언을 선호하는 고린도 교인들의 반지성주의를 경계한다.

 

21~25절 : 바울은 이사야서 28장 11절을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사28:11)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알아듣지 못할 말씨와 다른 나라 말로 이 백성을 가르치실 것이다.”(사28:11, 새번역)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했던 남유다가 멸망하리라는 예언의 말씀이다.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은 듣기 거북하고 이상한 말 곧 이방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알아듣기 쉬운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 말씀을 무시한 남 유다가 결국 이방인들이 쳐들어와 듣게 되는 그 이방 언어가 곧 자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방언은 믿는 사람을 위한 표징이 아니라 불신자를 위한 표징이 된다. 하지만 예언은 불신자들을 위한 표징이 아니라 믿는 사람을 위한 표징이 된다.

불신자들은 교회의 선포를 알아듣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방언은 그들 불신자들에게 심판의 표징이 된다. 하지만 예언은 알아듣는 말로 전해지기 때문에 이미 믿는 자들을 각성시키는 심판의 표징이 된다.

 

방언이 아니라 예언을 하게 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에 숨은 일이 드러나는 것이다.

방언을 한다고 온 교회가 왕왕거리면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미쳤다고 하겠지만, 모든 교인이 다 예언을 하면-예언이란 점치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과 하실 일을 증거 하는 것이다-그것을 듣고 그들의 마음의 숨은 죄가 드러나고 회개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묵상)

누구보다도 방언을 더 많이 하는 바울 사도가 방언보다 예언을 강조한다.

그것은 당시 고린도 교인들이 예언을 통해 공동체의 신앙을 성숙시키는 것보다 방언을 하는 자신을 자랑하고 또 그것에 만족을 얻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런 그들에게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예언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방언은 자기 만족적인 은사에 그칠 가능성이 많지만, 예언은 불신자에게는 영혼구원의 길을 마련하고, 교회 공동체를 성숙하게 하는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복음을 알고 생명의 삶을 살게 된 이후 주님께서 내게 예언의 은사를 주셨다.

비록 깊은 수준은 되지 못하더라도 ‘깨달은 마음으로 하는 다섯 마디의 말’을 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쁜 것이다. 동시에 그 은사가 내 만족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임에 분명한 깨달음이 있다. (사실, 예언의 은사만이 아니라, 주님 주신 모든 은사가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어야 함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교회의 덕을 세우고 그 유익을 위해 하나님 주신 것을 다 쓰라고 하시니 결국 내 삶은 ‘남을 위해 사는 삶’이 되어야 함을 생각한다. 그것은 단순히 착하고 정의롭게 사는 도덕적 삶이 아니라, 영혼 구원을 위한 삶이다.

그 ‘남들’ 속에는 가족, 친지, 교우 그리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다 포함된다.

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주님께서 내게 특히 예언의 은사-복음을 통해 생명의 교제로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은사-를 주셨으니 육체의 생명이 있는 동안 이 은사를 사용해야 하리라.

 

돌이켜보면 처음 복음을 듣게 되었을 때, 복음은 내게 ‘방언’이었다.

분명히 한국어인데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성경에 다 있는 말씀인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놀란 나를 그날로부터 주님께서 말씀의 자리에 앉히시고, 계속 말씀하여 주셨다.

주님께서 10년 넘게 복음을 듣고 또 듣게 하시고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니 눈을 뜨게 되고귀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입을 열어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셨다.

‘깨달은 마음으로 하는 다섯 마디의 말’을 하는 자가 된 것이 너무 기쁘다.

 

찬송가 205장이 생각난다.

바로 나의 고백이기에 얼마나 마음을 다해 부르게 되었는지 모른다.

가사의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다 보니 다 긋게 되어 다시 다 지운다.

 

주 예수 크신 사랑 늘 말해 주시오 나 항상 듣던 말씀 또 들려주시오

저 뵈지 않는 천국 주 예수 계신 곳 나 밝히 알아 듣게 또 들려주시오(1절)

아침의 이슬 방울 쉬 사라짐 같이 내 기억 부족하여 늘 잊기 쉬우니

잘 알아듣기 쉽게 늘 말해주시오 날 구속하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2절)

후렴 : 나 항상 듣던 말씀 나 항상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날마다 주님께 듣는 그 말씀이 나를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 됨을 감사하며, 깨달은 마음으로 하는 다섯 마디의 말을 주님께서 예비하신 그 누군가에게 잘 알아듣기 쉽게 전하는 그 은사를 내게 넘치도록 부어주시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제게 베풀어 주신 은혜의 선물들이

영혼구원과 생명의 삶을 증거 하고 인도하는 은사들이 되게 하옵소서.

 

제가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의 말을 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혼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생명의 언어가 되게 하옵소서.

 

이 땅의 삶이 지속되는 동안 이 일을 기쁨으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님, 저를 주관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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