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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히 그리고 열렬히 (고전14:26~40)

작성자묵상여행|작성시간26.06.11|조회수124 목록 댓글 0

(시작 기도)

주님,

공이로 찧어도 벗겨지지 않는 어리석음이 가득한 인간들입니다.

그것 때문에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오직 감사하며

몸으로 살아가는 때의 연약함에 대해 서로 불쌍히 여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아들의 이름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덮어주시니

오늘도 정결한 그릇이 되어

진리의 보배를 가득 담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38.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본문 주해)

26절 : 공중 예배 때 찬송과 말씀 선포와 계시와 방언과 통역의 은사들이 나타난다.

이때 이 모든 은사는 덕을 세우는 것이 되어야 하는데 바울 사도는 특히 절제함으로 나타나는 질서를 강조하였다.

 

27~28절 : 질서가 세워져야 할 첫 번째 영역은 바로 방언의 은사였다.

누군가 방언을 말하면 두 세 사람으로 한정하되 한 번에 한 사람씩 말해야 하고, 반드시 통역하게 한다.

만일 통역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없을 때, 교회에서는 말하지 말고 자기 자신과 하나님께만 말할 것이다

 

29~33a절 : 또 예언하는 사람도 둘이나 셋이 말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잘 새겨야 한다. 앉아 있는 다른 사람에게 계시가 임할 경우에는 먼저 말하던 사람은 잠잠할 것이다.

그래야 한 사람씩 다 예언을 할 수 있게 되고 또 모든 사람이 배우고 권면을 받게 될 것이다

 

초대교회의 모임에서는 어느 특정한 사람이 ‘준비된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 모두가 성령의 감동을 따라 말씀을 나누는 형식이었다. 즉 모든 회중이 성령의 뜻을 따라 예언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때 예언하는 자들은 성령이 부여한 질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예언하는 자 중 한 사람이 예배 시간 전체를 독점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33b~35절 : 여자에 대한 권면으로 논란이 되는 말씀이다.

그런데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씀이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33b절)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무조건 여자를 비하하여 금하려는 것은 아니다. 30절에서 예언의 경우 남자들에게도 ‘잠잠하라’ 라는 표현을 썼고, 앞서 11장에서 여자가 공적인 모임에서 기도하고 예언(설교)하는 것을 인정하였고, 다만 너울을 쓰고 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고전11:5)

 

그러므로 이 말씀은 고린도 교회 안의 특정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무질서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던 일부 여성들의 문제를 알고 있었고, 그러한 무질서를 근절하기 위해 율법에서 말한 복종을 이야기하였고, 또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어보라는 강도 있는 말로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래서 남자 예언자가 계속 말하는 것이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할 때 잠잠해야 하듯,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잠잠하라는 것이다.

 

36~38절 : 바울은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 다시 예언하는 사역자들을 경고한다.

예언의 은사는 특정인이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언의 은사를 가진 자가 착각하는 것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것으로 자랑하고 교만해져서 교회 개척자인 바울의 말까지 거부하려 하였다. 이에 바울은 자기 말이 주의 명령이라고 하며, 그들을 경고한다.

 

39~40절 : “그러므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예언하기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그리고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막지 마십시오.

모든 일을 적절하게 하고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새번역)

 

방언과 예언의 은사에 대한 바울 사도의 결론이다.

예언이나 방언이나 은사는 다 유익한 것이다. 다만 그것이 덕을 세우지 못하고 질서를 해치는 방향으로 사용되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나의 묵상)

오늘 본문에 ‘잠잠하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방언의 은사도 통역이 없으면 잠잠해야 하고(28절), 예언의 은사도 성령의 지시하심에 따라 잠잠해야 할 때가 있고(30절), 특별한 은사를 받은 여자들도 무질서하게 굴지 말고 잠잠해야 한다(34절).

 

이렇게 잠잠할 수 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관계가 있다.

그러니 잠잠한 것은 그냥 ‘조용히 있는 것’을 넘어서서 오히려 ‘열심히 성령의 뜻을 바라고 구하라’는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내가 ‘잠잠히’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열렬한’ 내 마음의 표현이듯이 말이다.

 

조용한 새벽에 홀로 일어나 잠잠히 말씀 앞에 앉는다.

주님과 나의 친밀하고도 열렬한 교제가 이루어진다.

주님은 말씀하시고, 나는 듣는다. 나는 묻고 주님은 말씀하여 주신다.

오늘처럼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씀에 뾰족한 마음을 갖다가, 당시 상황과 배경을 이해하며 그 잠잠함 역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 잠잠할 수 있음이 주님 주시는 능력이요, 은혜임을 생각한다.

 

이 시대에서는 소그룹의 모임이나, 생명의 지체들과의 개인적인 교제 속에서 주님 주시는 말씀을 마음껏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쁨이 넘치는지 모른다.

이런 나의 마음과는 달리 사석에서 절대 주님과의 교제라든가 은혜를 말하지 않는 목회자도 있더라.

여러 번 그를 만난 적이 있지만, 사석에서는 마치 ‘주님 이야기 금지!’를 실천하는 사람 같았다.

앉으나 서나 주님 이야기가 하고 싶은 내가 그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고 나 역시 그런 분과의 만남은 지루하기 이를 데 없으니 점점 자리를 같이 하지 않게 된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성도의 교제 속에 어떻게 ‘주님 이야기’가 빠질 수 있을까 말이다.

 

불완전한 계시가 있었던 사도시대와 달리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완전한 계시로써 우리들에게 주어졌다.

여러 가지 은사로 무질서할 필요가 없다.

오직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복음만이 선포되고 전하여질 것이다.

여러 모양의 성도의 교제 속에 언제나 복음의 이야기가 꽃을 피우고 그 복음 앞에 날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더 잘 믿게 되는 것이 이 시대의 가장 큰 은사요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주님 앞에 잠잠히 나아가 날마다 복음을 듣고 또 들으며, 또 세상 속으로 나아가 열렬히 복음을 전하고 또 전할 뿐이다.

 

(묵상 기도)

주님,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잠잠히 주님을 바라보오니

저의 모든 은사가 품위 있고, 질서 있게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그로 인해 교회의 덕이 세워지길 원합니다.

 

무엇보다 주님 앞에 잠잠히 듣게 하시고,

그 들은 것을 사람 앞에 열렬히 전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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