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도토리 키재기 하듯 하는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주님만 더욱 사랑하라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아둔하고 편협한 자를
진실로 선한 길로 인도하시니 주님만이 나의 보배이십니다.
금요일에 비가 오면 마지 못한 듯 연주를 쉬어서 좋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계속 맑은 날이라 연습하고 연주하는 일이 숨에 찹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혼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준비합니다.
우리 생명소리팀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셔서 이 일을 기쁨으로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정직한 영을 허락하옵소서.
진리이신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하셔서
하나님 품속의 평강과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본문 주해)
1~2절 : “형제 여러분, 전에 내가 전해 준 복음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되새겨주려고 합니다. 이 복음은 여러분이 이미 받아들였고 또 여러분의 믿음의 기초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헛되이 믿는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내가 전해 준 복음 그대로 굳게 지켜 나간다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공동번역)
바울은 왜 고린도 교회에 이미 전한 복음을 다시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일까?
고린도 교회에는 파당과 음행과 우상제물과 은사 등에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편을 가르고 서로 시기 경쟁하는 모습이 어떻게 복음을 들은 자의 모습이냐는 것이다. 은사를 주신 것도 성도의 유익을 위하여 주신 것인데 자기 자랑을 하고 자기 자존심 세우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이미 복음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다시 들어 알게 하는 것이다.
3~5a절 : 복음의 내용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메시아적 행위를 가리킨다.
그 행위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십자가 복음)과 무덤에 장사되신 것(장사 복음)과 다시 살아나신 것(부활 복음)과 많은 이들에게 나타나 보이심(현현 복음)을 가리킨다.
이 복음은 사도들에 의해 전승된 복음이며, 다른 복음은 없다.
이 복음이 성경이 증거 하는 복음이다.
이 복음을 믿는 자는 창세전 약속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딛1:2; 딤후1:10)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영생 얻게 하는 복음, 이것이 없으면 기독교는 무너진다.
5b~9절 : 바울이 부활의 목격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고린도 교인들 중에 부활이 없다고 하는 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부활하신 주님을 베드로가 만났고, 열두 제자가 만났고, 오백여 명의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다고 한다. 그리고 맨 나중에 바울 자신에게도 보이셨다고 하니 바로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것을 가리킨다.
바울은 자신을 보통 사람보다 더 못난 자라고 하여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표현한다. 자신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기에 사도라 칭함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10~11절 :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기를 사도라는 도구로 삼아주셨고, 그것은 오직 은혜라는 것을 강조한다.
복음을 제대로 받고 그 복음에 선 자들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내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자기부인의 고백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이나 할 것 없이 이 복음을 전파하였고-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과 나타나 보이심을 전파하였고- 또 그것을 고린도 교인들도 믿었다는 것이다.
(나의 묵상)
2015년 복음과 생명의 은혜를 받기 전, 나는 ‘복음’을 알지 못했다.
그래도 입으로 복음을 말했었는데, 내가 말한 복음은 ‘예수님을 믿으면 이 땅에서 잘 살다가, 죽어서 천국 간다’는 것이었다.
그 엉터리 복음으로 중고등부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 엉터리 복음을 가지고 마다가스카르에 선교한다고 3년을 아프리카에서 살았다.
놀랍게도 주님은 그곳에서 복음을 듣게 해 주셨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메시아적 행위를 가리킨다.
그 행위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십자가 복음)과 무덤에 장사되신 것(장사 복음)과 다시 살아나신 것(부활 복음)과 많은 이들에게 나타나 보이심(현현 복음)을 가리킨다.
이 복음은 사도들에 의해 전승된 복음이며, 다른 복음은 없다.
이 복음이 내 귀에 들려지고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날마다 말씀의 자리에 앉아 복음을 듣고 또 듣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이 복음이 내 삶의 현실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전처럼 이 땅에서 잘 사는 것이 목표요, 죽어서 천국까지 갈 수 있는 복음이라면 당연히 고개가 끄덕이며 열심을 내어 보겠는데,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나타나 보이심이라니.......이것이 내가 원하는 보란 듯한 삶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그 복음이 들려지면서 내가 세상에 말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고, 주님의 죽으심이 그런 나를 대속한 죽음이라는 것을 성령을 통해 알게 된다. 성령께서는 주님의 십자가에 나도 죽었음을 고백하게 하시고, 살아가면서 주님이 장사되신 것처럼 내가 장사되어야 할 상황까지도 알게 하신다.
이렇게 주님께 연합된 나는 주님 다시 오실 때 주님처럼 부활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당시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신 것처럼, 오늘날도 말씀으로 나타나 보이시는 주님을 알고 믿게 된다.
그러니 세상에 벌어지는 일과 현실이 삶에서 일어나는 나의 모든 문제는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앞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앞에서, 평소의 그렇게 많았던 세상의 할 말이 다 없어지는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미 복음을 들은 자들이나, 어느 새 각자 받은 은사들로 자랑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가득하여 복음이 희미해지고 말았다.
은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 중요한 것이다.
주님께서 은사를 주신 것도 복음을 전하라고 주신 것인데, 그들에게는 주객이 전도되고 말았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문제가 많다.
성도라면 문제가 생기고 문제가 보일 때마다 복음을 기억하고 생각해야 한다.
첫째, 십자가 복음을 통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주님의 십자가 길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탐심 즉 우상숭배의 마음과 자기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기 부인의 길이다.
둘째, 무덤에 장사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문제나 상황을 해결하려고 발버둥 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주님의 공의의 심판으로 받아들이며 잠잠히 무덤과 같은 상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받아먹으며 새롭게 회복시켜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맛보는 일이다.
셋째, 주님께서 부활하심을 믿는 일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자신도 부활할 것을 믿는 일이다. 이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담대하게 현재를 종말로 살게 한다.
넷째,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시한 많은 이들에게 직접 나타나 보이신 것과 같이, 현재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님 보내신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을 믿고 의지하는 일이다.
이 복음을 기억하고 되새길 때 파당과 음행과 우상제물과 은사 등으로 다투거니 자랑하는 등의 문제가 얼마나 하잘것없는 것인가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복음을 내가 들어서 알게 되었다거나, 그 위에 내 믿음이 섰다고 자랑하거나 안심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복음을 믿어 구원을 얻었다고 하여도 육의 몸으로 사는 동안은 죄성이 가득한 자로서의 냄새를 풍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 그래서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매일 복음을 듣고, 매일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교회 나가 목회자를 통해 제시되는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너무도 부족한 일이다.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함으로 매일 복음을 듣고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주일이나 주중에 교회에 나가 공중예배 때 목회자를 통해 선포되는 복음으로 자신이 받은 그 은혜를 더욱 확정하고 또 확증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못하는?) 목회자를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 새벽기도 때, 최근에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을 놓고 주님께 내 마음을 아뢰었다.
주님께서는 그 사건이나 상황에 매이지 말고,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주님만을 더욱 사랑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아, 맞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너 달 전의 그 혹독한 상황 앞에 눈물을 뿌릴 때도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것보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에 마음을 쏟으니 개 짖듯이 왈왈거리던 소리들이 어느 새 없어졌음을 문득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이 복음을 다시 묵상하면 주어지는 생각이다.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복음을 듣고 또 들음이 내게 복 중의 복이요, 주님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과 나타나심을 묵상함이 은혜 중의 은혜이다.
나는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 말씀으로 살아간다.
입으로 먹어 육체의 힘을 내는 것처럼, 영의 양식인 복음을 배부르게 먹으며 그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하루살이의 평안과 기쁨은 복음을 듣고 또 들을 때 이루어진다.
(묵상 기도)
주님,
복음으로 시작한 고린도 교회였지만
온갖 문제로 시끌벅적합니다.
그처럼 복음으로 시작하였지만
세상 탐심으로 흐지부지 되는 인생도 많음을 봅니다.
다시 복음을 말해야만 하는 사도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제게 주신 이 복음이
희석되거나 변질되지 않도록
날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복음을 듣게 하여 주옵소서.
그 은혜에 감사하여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더 많이 수고하여도 그것이 수고로 여겨지지 않게 하시고
풍성한 은혜의 비밀을 가진 자 되어 기뻐 춤추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