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장 29절 - 34절 - 복음에 연합되어 부활의 소망을 견고히 세움으로 땅의 것에서 자유를 누리는 삶 되게 하소서
작성자신앙이삶작성시간26.06.15조회수54 목록 댓글 02026년 6월 15일 묵상 본문 : 고린도전서 15장 29절 - 34절 - 복음에 연합되어 부활의 소망을 견고히 세움으로 땅의 것에서 자유를 누리는 삶 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새로운 한 주를 허락하시고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베푸신 은혜로 오늘도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형식적인 감사가 아닌 삶 가운데 기쁨과 찬송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되도록 인도하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오늘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의 음성을 듣고 가르침 받게 하시고 주께서 명령하시는 일에 순종으로 반응하게 하옵소서.
교회는 사람의 교훈과 전통으로 세워지지 않고 오직 복음으로 세워지는 곳임을 고백합니다.
성도들의 심령 가운데 복음을 통해 생명을 누리는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생명의 은혜를 나누도록 도와주시고 강건한 믿음의 삶을 살도록 이끄시길 소망하며 생명의 풍요함을 누리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서는 죽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세례를 베푸는 관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 진다. 크리소스톰은 말르시온주의자들이 죽은 사람의 침대 밑에 한 사람이 숨어 있다가 세례 문답자가 세례 받기를 원하는지를 물으며 세례 받기를 원한다고 대답하고 세례를 주었다고 기록한다. 이러한 세례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부활을 부정하는 성도들에게 당시 관습에서도 죽은 자를 위해 세례 베푸는 일이 있었음을 언급함으로써 죽음 이후에 이어지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바울은 자신이 부활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겠냐는 반문을 통해 부활에 대한 확신을 제시하고 있다.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바울의 날마다 죽는다는 고백은 예수의 죽음에 연합되어 살고 있다는 의미이며 또한 지속적으로 고난 가운데 있음을 고백하는 표현이다.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은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일에 대한 자랑을 말한다.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고린도전서는 바울에 의해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다. 맹수는 동물을 말하지 않고 흉폭한 사람을 맹수로 비유한 것이다.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핍박자를 맹수로 비유하면서 자신이 부활에 대한 소망도 없이 그들의 대적이 되어 살아갈 이유가 없음을 제시하고 있다. 특별히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라는 표현은 이사야 22:13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본 구절은 당대에 격언처럼 사용된 표현으로 메난더가 저술한 희극 ‘타이스’라는 작품에서 인용된 격언을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울은 이 표현을 통해 부활의 소망이 없이 현실의 즐거움을 좇아 살아가는 자들의 괴변과 속임수에 현혹되지 말 것을 권면한 것이다.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바울은 깨어 있는 신앙을 가지도록 촉구하고 있으며 죄가 아닌 의로운 행위를 하라고 권면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왜곡시키는 자를 의미한다. 이는 영지주의자들과 같이 육신의 부활에 대해 무지하고 거부하는 태도를 버리도록 권면했음을 보여준다.
나의 묵상
바울은 당시 고린도 교회 가운데 있었던 죽은 자들에 대한 세례를 언급한다.
이는 죽은 자들을 위해 살아 있는 자들이 세례를 베푸는 관습으로 후에 말르시온 주의자들이 죽은 자를 위해 세례 베푸는 일이 있었다.
이러한 세례는 잘못된 것이며 온전한 세례가 될 수 없다.
바울은 죽은 자를 위한 세례가 정당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해 세례를 베푸는 행위가 의미하는 내용을 언급한 것이다.
죽은 자를 위해 세례를 베푼다는 사실은 사람이 죽은 이후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살았을 때 세례를 받지 못했으니 죽은 후에라도 세례를 받도록 하려는 태도를 담고 있다.
이것은 사람이 죽음 이후에 부활을 통해 그가 생명을 얻고 누릴 수도 있고 반대로 영원한 심판으로 향하게 될 수도 있기에 세례를 베푸는 것임을 지적한 것이다.
결국 당시 고린도 성도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죽은 자를 위해 세례를 베푸는 일이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그러한 행위가 결국 부활에 대한 인정 때문에 나타난 관습임을 보여준 것이다.
바울은 자신도 부활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없었다면 자신이 다른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으면서 살아갈 이유가 없으며 고난 중에서 복음을 전할 이유가 없음을 제시한다.
부활에 대한 소망은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한 다른 태도를 가져오는 것임을 보여준 것이다.
오늘날에도 성도들이 신앙생활 가운데 고난에 대해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는 것은 다름 아닌 부활에 대한 소망과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분명한 태도가 땅에서 매이지 않게 만드는 힘을 얻게 한다.
예수님도 땅에서의 삶에 목적을 둔 자와 하늘의 삶에 목적을 둔 자는 땅의 것을 대하는 데 있어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셨다.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19~24)
부활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가진 자들은 땅의 것에 매이지 않는 자유함을 누리는 자가 된다.
반대로 부활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빈약한 자들은 땅의 것에 욕심을 두고 살아가며 육신의 만족을 추구하며 살아가기에 현실의 삶에 매이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바울은 부활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두고 살아갔기에 자신은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한다.
부활에 대한 분명한 인식은 죽음의 과정을 통해 얻게 된다.
즉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부활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부활의 소망과 관련해서의 죽음은 육체의 죽음을 말하지 않고 육신의 만족을 버리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바울은 육체의 일과 성령의 일을 분명하게 제시하면서 육신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이 성도의 행할 일임을 제시한다.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19~24)
결국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도 육신의 욕심을 버리는 것과 연결되어 있으며 땅의 것에 대한 소유욕을 버리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는 모두 복음과 연관된 삶의 태도로써 십자가복음을 통해 육신의 욕심과 정욕을 버리고 장사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함으로써 죽음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죄와 허물과 심판을 통해 죽음에 이른 자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심으로 땅의 속한 것에서 자유함을 얻고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성도의 삶임을 보여준다.
바른 성도의 삶을 아는 것이 오늘날 빈약한 모습이기에 부활에 대한 소망도 빈약함을 본다.
그리고 땅의 것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차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것 이외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모습이며 나의 모습에서도 드러나는 것임을 고백하게 된다.
다시 주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면서 땅의 것에서 자유함을 얻기를 소망하게 된다.
땅의 것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은 이 땅에서는 불가능함을 고백한다.
그러나 주님이 오시는 날에는 그것이 가능한 것이며 실제가 됨을 고백하게 하신다.
그래서 성도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이 오실 날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은 철저하게 복음에 연합되지 않고는 가질 수 있는 삶의 태도임을 인정하게 된다.
여전히 땅의 것에 욕심을 두고 살아가며 부활의 소망보다 땅에서 얻고 누리는 것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이 심판받을 인생의 본질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비록 온전하지는 않지만 오늘 하루도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 복음에 연합되어 살고자 힘쓰는 자로 설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그리고 지체들도 복음에 연합됨으로 깨어 있는 삶의 태도를 가지고 영적으로 바르게 세워져서 땅의 것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모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은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가 취할 삶의 태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땅의 것에 매이는 삶이 아니며 육신의 만족을 위해 사는 모습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저의 삶은 육신의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이 많습니다.
어리석은 자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날마다 복음에 연합되기를 힘씀으로써 부활에 대한 소망이 더욱 선명해 지고 깨어 있는 신앙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인생의 지혜는 땅에서 얻지 않고 복음을 통해 얻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주의 보좌로 나아가 지혜를 얻어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가는 자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지체들의 삶도 늘 주 안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모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음을 붙들어 주시고 주님이 주인 되셔서 생명의 길을 걷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함께 하시고 은혜와 진리로 붙드사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