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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죽는 삶, 부활의 능력 (고전15:29~34)

작성자묵상여행|작성시간26.06.15|조회수128 목록 댓글 0

(시작 기도)

주님,

어제 노회 주관 영적대각성 집회를 은혜스럽게 마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00여 명이 모여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렸습니다.

복음으로 충만한 대구노회 그리고 남녀신도회가 되어

교회와 다음세대와 나라를 위해 더욱 기도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본문 주해)

29~30절 : 바울 사도는 다시 부활에 대하여 증거 한다.

29절은 고린도에는 죽은 자를 위해서 세례를 베푸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에 대해 바울은 ‘너희가 부활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행위를 왜 하느냐?’하는 의미로서 죽은 자의 세례를 언급한 것이지, 죽은 자를 위한 세례 자체가 옳다고 인정하는 말이 아니다.

 

또 ‘만약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하여 언제나 이 땅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겠느냐?’고 한다.

부활의 주님이요, 성도의 머리가 되신 주님이 계시기에 때마다 위험을 무릅써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31~32절 :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실제 죽음의 위협에 맞닥뜨리고 있음을 말한다.

바울은 부활을 믿으나 날마다 죽음을 경험하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였다.

‘에베소에서 사나운 짐승과 싸운 것’은 원형 경기장에 굶주린 사자를 풀어놓아 사람을 갈가리 찢는 것을 즐기는 못된 습관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서,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다 맹수와 같은 과격한 자들의 공격을 받은 것을 말한다.

 

바울이 사망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복음을 전한 것은 어떤 인간적 동기가 아니었다.

그는 죽은 자의 몸이 부활하는 종말의 빛 아래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굳이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 필요가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결국 죽는 인생이니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자’ 하는 식의 삶을 살 것이라는 말이다.

 

바울이 핍박을 당해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부활 소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울에게 있는 이 소망이 위험을 무릅쓰게 하고 날마다 복음을 위해 기꺼이 낮아지고, 죽고, 또 맹수와 같은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33~34절 : 악한 동무들은 부활에 대해 소망이 없는 자들로, 당시의 쾌락주의자들처럼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을 거부하며 이생에서 방탕한 삶을 정당화하는 이들을 경고한다.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자는 이생에서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과 다를 바 없다.

 

(나의 묵상)

바울의 삶은 ‘날마다 죽는 삶’이었다.

그 죽음은 복음을 위하여 낮아지고, 핍박을 당하고, 순교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다.

바울이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이유는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너무 많이 맞아 죽을 뻔도 하고, 바다에서 파선하기도 하였고, 사람과 자연의 위험 속에 있었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춥고 헐벗었다고 한다.(고후11:23~27)

 

바울이 겪은 이런 엄청난 고난을 나는 당해 본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한다고 맹수처럼 달려드는 사람들도 없었다.

나는 너무도 육적인 존재인지라 만약 바울이 겪은 고난을 겪으면 천리만리 도망칠 존재이다.

그래서 ‘날마다 죽노라’ 하는 바울의 고백 앞에 참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최근에 복음을 전한다고 핍박을 당한 적이 있다.

평신도 주제에 무엇을 가르치느냐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가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 ‘복음’이라고 말하니, ‘무슨 내용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가르치지 말라’고 한다. 목사들이 공연히 시간 들이고 돈 들여서 목사가 되었겠느냐는 소리를 들었다.

억장이 막혔다.

그러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그들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저 교회 밖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라는 말인가?

교회 안에도 복음을 모르는 자들이 수두룩한데 복음은 교회 밖 사람들에게만 전해야 하는가?

이미 복음을 들은 로마 교회 사람들에게 왜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자 했는가?(롬1:15)

지금 은사로 무질서하고 시끄러운 고린도 교회가 왜 복음을 듣고 또 들어야 하는가 말이다.

 

억울하고 답답해하니 곁에서 ‘복음을 위해 받는 고난’이라고 축하(?)하고 위로해 주는 말들도 듣게 된다.

‘날마다 죽는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래, 복음을 위해서이다.

이 시점에서 나의 죽음을 생각한다.

눌림이 있고 비참하게 생각되어도, 이 길을 간다.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사람들을 가르치느냐?’고 매우 불편한 마음으로 다그치는 그 장면이 생각난다.

예수님께도 그랬는데 나 같은 존재에게는 말하면 뭐 하겠는가?

 

“부활의 능력 체험하면서 주의 고난에 동참하고

주의 죽으심 본을 받아서 그의 생명에 참예하네

내 안에 가장 귀한 것 주님을 앎이라

모든 것 되시며 의와 기쁨 되신 주 사랑합니다”(CCM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십자가에 피흘리며 죽으신 주님의 고난과 매일 목숨을 내놓는 어려움을 당하는 바울의 고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주의 고난에 동참하고, 바울 사도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며, 주님 안에 더욱 든든히 세워주시는 성령님께 감사를 드린다.

 

(묵상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 자체가 이 세상에서는 죽는 모습임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저를 부활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계시는 것임을 생각합니다.

 

세상 속에서 잃을 것 때문에 두려워 겁을 집어먹는 자로 살지 않게 하시고

죽어도 상관없는 세계를 맛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주신 든든한 부활 소망 때문입니다.

 

이제 날마다 자기의와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게 넘기시는 주님의 이끄심에 더욱 순종하기를 기도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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