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6장 13절 - 24절 - 구원에 합당한 백성의 모습을 향해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걸어가는 자로 서게 하소서
작성자신앙이삶작성시간26.06.19조회수39 목록 댓글 02026년 6월 19일 묵상 본문 : 고린도전서 16장 13절 - 24절 - 구원에 합당한 백성의 모습을 향해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걸어가는 자로 서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변함없는 은혜를 힘입어 하루의 삶을 시작합니다.
이제는 밤에도 기온이 높아서 점점 잠 못 이루는 밤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네요.
강렬한 햇빛에 곡식이 익어가듯 신앙의 삶도 주의 은혜의 빛을 통해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열매가 없어 책망 받는 삶이 아닌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자 되길 소망합니다.
마음을 주께로 향하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따라 행함으로 선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오늘도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맡기신 하루의 삶을 성실함으로 보내며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일에 진보가 있게 하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깨어 있으라는 종말론적 입장에서 자신의 삶의 자리를 살펴보라는 권면으로 볼 수 있다. 믿음에 굳게 서라는 것은 복음에 대한 확신에서 흔들리지 말라는 권면으로 볼 수 있다. 남자답게라는 것은 핍박과 박해 가운데에서도 용감함과 당당함으로 반응할 것을 의미한다. 강건하라는 것은 외적으로 발휘되는 힘 있는 모습을 갖출 것을 의미한다.
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바울은 모든 신앙의 행위에 있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라고 권면한다.
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스데바나는 바울을 통해 아덴에서 회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회심한 스데바나는 자신의 집인 아가야에 돌아가 복음을 전하여 집안이 회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가야는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와 남부에 해당하는 지역을 의미하며 고린도는 아가야의 수도였다. 그리고 스데바나의 가정은 자기 집에서 공식 모임을 가진 것으로 보이며 어려운 자들을 도운 것으로 볼 수 있다.
16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바울은 스데바나의 가정을 고린도 성도들의 모범으로 제시하면서 그 가정과 같이 수고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가지도록 권면한다.
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바울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자신을 찾아 온 것을 기뻐하며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에게 하지 못했던 사랑의 교제를 3명의 방문자를 통해 나누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18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바울은 3명의 지체가 자신을 방문하여 고린도의 상황을 알려주고 그들이 고린도 교회의 화목을 위해 훌륭한 중재 역할을 감당했기에 바울의 마음에 평안을 얻게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고린도에 돌아가면 그들의 수고를 성도들이 인정하고 칭찬 해 줄 것을 권면하고 있다.
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20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바울은 아시아의 교회와 아굴라와 브리스가, 그리고 여러 지체들을 언급하며 그들의 이름으로 안부를 전한다. 이는 모든 교회가 한 몸이라는 지체의식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1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바울의 친필에 대한 언급은 진정성과 권위성을 밝히기 위함이었다.
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저주에 대한 선언은 고린도 성도들을 향한 경고의 의미를 가지며 분파로 갈등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주의 지체로서 감당해야 할 사명을 감당하도록 권면한 것임을 볼 수 있다. 재림에 대한 간구는 모든 분쟁과 불의, 고난에 대한 종식을 기대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향한 축복으로 서신을 마무리 하고 있다. 그 축복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묵상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영적으로 무기력한 자들이 되지 말고 깨어 있어서 믿음을 가지고 당당하게 영적 싸움을 싸우며 강건한 모습이 되라고 권면한다.
이는 종말론적 시각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보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독려한 것이다.
영적인 싸움을 싸우기 위해 자신을 돌아볼 뿐 아니라 육신적으로도 강건함을 유지하여 하나님의 일에 힘쓰는 모습이 되는 것이 성도가 나아갈 방향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사랑임을 제시하면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으로 행하는 것이 자신과 교회를 세우는 힘임을 보여주고 있다.
요한은 성도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 계시는 증거가 된다고 선언한다.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4:9~12)
바울은 성도의 사랑과 섬김에 있어 모범이 되었던 스데바나 집 사람들을 칭찬한다.
그리고 고린도 성도들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다.
스데바나는 아가야 사람이었으며 아마도 아덴에서 회심을 한 것으로 추정한다.
아덴에서는 비록 몇 사람 되지 않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성도들에게 모범이 되는 스데바나와 같은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따라 달라지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얼마나 깨달았는지에 따라 달라짐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일이 단순히 교회의 행사나 프로그램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라는 주님의 정의를 따라 보아야 할 것이다.(요6:29)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깨닫게 된 진리를 따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다른 이들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일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가 얻게 되는 구원의 과정과 완성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6:9~12)
신앙생활은 향방이 없는 것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방향과 추구하는 목적이 있다.
그것은 구원에 이르는 자가 되는 것이며 그 모습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인내하는 모습을 세워가는 것임을 보게 된다.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모습이며 스데바나가 보여준 모범의 모습도 결국 구원에 합당한 하나님 백성의 모습을 세워가는 것임을 고백하게 된다.
가끔씩 주변의 사람들에게 신앙생활의 목적이 무엇인지 질문을 해볼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신앙생활의 목적을 구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성도는 교리적으로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이기에 구원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목적은 구원받은 백성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고 그 모습을 소망하면서 영적으로 성숙되는 것에 있음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의 구체적인 것은 요한과 히브리서 기자를 통해 충분히 찾을 수 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여 섬기는 자가 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얻게 될 기업에 대한 소망, 그리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모습이 성도가 추구할 삶의 구체적인 모습임을 고백하게 된다.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 내 삶의 모습은 분명한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면 많은 방황 끝에 목적과 방향을 세우는 과정에 있음을 보게 된다.
여전히 어리석고 미숙하며 부족함 투성이의 모습이기에 영적 성숙을 어떻게 이루어 가야할지 걱정도 되지만 그 모든 것을 이루게 하실 분이 주님임을 신뢰하며 가야 함을 깨닫게 된다.
그 믿음의 여정 가운데 나아가고 지체들도 동일한 믿음의 여정에 동참하여 선한 일에 힘쓰는 모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 어리석고 미숙하며 부족함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목적과 방향 없이 눈앞의 이익을 따라서 살아온 것이 저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에서 돌이켜 믿음과 소망, 사랑과 인내로 온전한 삶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시는 주의 손길이 있기에 소망을 가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주님이 가신 길을 가는 것이 성도가 추구하는 삶의 목적과 방향이며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며 죽음을 지나 부활에 이르는 자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복음을 알수록 복음을 통해 더욱 분명해 지는 신앙의 여정을 발견합니다.
기꺼이 그 길에 들어서는 자 되게 하시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오늘도 주어진 모든 삶의 자리에서 성도로써 해야 할 일과 전해야 할 메시지를 바르게 선포하는 모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음과 생각을 붙들어 주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드러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가장 좋은 것으로 베풀어 주시고 선한 열매를 맺도록 이끌어 주시는, 무한한 사랑으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