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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스 행 배를 탈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로 나아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욘1:1~10)

작성자묵상여행|작성시간26.06.20|조회수133 목록 댓글 0

(시작 기도)

주님,

비 오는 토요일입니다.

주일을 잘 준비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로 오염된 마음을 정결케 하옵소서.

요나서를 묵상합니다.

진리의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 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8.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하니

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10.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본문 주해)

요나는 BC. 800~750년경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이다.

이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시대로서, 앗수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번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영적 상태에 대해 회개하기는커녕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적 지위에 대한 만족감과 자부심이 컸다.

 

하나님의 자비는 참회한 이방인에게도 열려있었지만 편협한 선민사상에 젖어 이방 민족을 경멸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교만이 요나서를 통해 드러난다.

 

1~3절 :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는 바벨론과 더불어 세계 대도시의 총괄 개념으로써 악덕이 모인 대도시를 상징한다.

니느웨(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괴롭혔고 그 악이 가득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전도를 하라고 요나를 보내시는 것이었다. 그 선포의 내용은 이 성이 40일 만에 망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요나는 그 소식을 전하기를 싫어하였다. 왜냐하면 그 멸망의 소식을 듣고 혹시 니느웨 성 사람들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때는 이스라엘이 회개해야 할 시기였다.

하나님께서는, 멸망받을 나라도 회개하면 용서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 지금 자기의 뜻을 펼치시고 계시는데 요나는 그것도 모르고 단지 니느웨를 미워하였기에 자기의 뜻대로 도망가고자 한다.

 

다시스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땅끝과 같은 곳이기에 멀리 도망가려고 한 것이다.

 

4~8절 : 요나가 탄 배가 바다로 나갔는데 갑자기 대풍이 불어 닥친 것이다. 배가 깨어질 지경이 되니, 가지고 가던 화물조차 바다에 던지며 배를 가볍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이런 잠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여 주신 잠이 아니라 사망의 잠인 것이다.

선원들이 각자의 신을 부르면 효험이 있지 않을까 하여 잠자는 요나를 깨운다.

그러나 대풍이 계속되니 사람들이 이 고난이 누구 때문인지를 가리려고 제비를 뽑는다. 선원들은 제비를 뽑아 이 폭풍이 누구 때문인지 알고자 한다. 이는 선원들이 바다의 폭풍을 인간적인 과실에 대한 신의 형벌로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요나가 걸리고, ‘너는 도대체 어떤 자인가?’ 하며 그를 추궁한다.

 

9~10절 :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그분을 섬기는 사람이오."

요나가 그들에게, 자기가 주님의 낯을 피하여 달아나고 있다고 말하니,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겁에 질려서 그에게 소리쳤다. "어쩌자고 당신은 이런 일을 하였소?"”(새번역)

 

사람들은 요나가 고백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듣는다.

이방신을 믿는 자들은 그들이 믿는 신보다 더 위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린 요나를 보고 충격을 받으며 말한다. ‘그런 능력의 하나님을 어떻게 피할 수 있다고 이렇게 행하였느냐?’

요나는 비록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으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게 된다. 이 같은 그의 고백은 후에 풍랑이 잠잠해졌을 때 이방인 선원들이 하나님을 숭배하는 근거가 된다.

 

(나의 묵상)

요나서가 선민의식의 배타성이나 편협한 민족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는 것을 읽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크게 깨닫는 것은 선지자 요나의 니느웨에 대한 미움이 큰 문제라는 것이다.

요나는 이 미움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졌다.

하나님을 피하여 배의 가장 밑자리까지 가서 혼자 사망의 잠을 자는 자가 되고 만다.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일본의 횡포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역사적 행보에서도 반성이라는 것이 없이 뻔뻔하게 구는 것을 보면 요나의 니느웨(앗수르)를 미워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 곳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서 그들을 돌이키라니.....앗수르든 일본이든(우리를 괴롭히는 어떤 나라든) 망해버려야 속이 시원한데 거기 가서 그들을 구원시키라고 하니....그 하나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피조물 주제에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마음에 드네 마네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은 이 짓을 뻔뻔하게 하고 있다.)

성도에게 ‘하나님은 피할 분’이 아니라, 구하고 찾아야 할 분이다. (사실 내가 주님을 찾아서 오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찾아주신 것임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내 밑마음에 깔린 그 미움 때문에 하나님을 피해 다시스로 가는 배의 밑층에서 잠을 자는 요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임을 보게 된다.

 

요나에게 미움이 있다는 것은 뭔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즉 니느웨에 대한 요나의 미움은 자기 나라인 이스라엘과 유대 민족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기에 생긴 미움이다.

이스라엘과 유대 민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하다는 말인가?

나라와 민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 성도가 주님과 멀어진다면?

 

살아가면서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분명히 주님을 사랑한다고 일을 시작해 놓고도 오히려 주님과 멀어지는 상황을 맞닥뜨리는 경우가 그것이다.

자기의와 자기주장의지를 버리지 못하고 땅끝으로 가는 다시스행 배를 타지를 않나....그 가장 깊숙한 곳으로 가서 사망의 잠을 청하지 않나.....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또 보고 계신다.

선지자인 요나가 그것을 모르는 바 아닐진대 자기 고집으로 다시스행 배를 타고, 밑층에 숨어들어가고, 에라 모르겠다 하며 잠을 자고.....

하지만 이는 내가 자주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라 찔끔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생명의 복음을 아는 자가 되었으니, 주님이 아니시면 진짜 죽는 자인 것을 아는 자가 되었으니, 내 미움의 근원이 되는 지독한 세상 사랑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가 된다.

요나는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했다.

그것이 니느웨에 대한 미움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당연한 그 사랑이 그를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게 했으니,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당연한 나라 사랑, 당연한 가족 사랑이 나를 주님으로부터 도망치도록, 멀어지도록 내버려두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미워하는 대상을 떠올리며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답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세상 가운데 내가 받을 유익과 칭찬과 인정에 그가 흠집을 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일에 유익이 되지 않고 방해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 또한 내 마음 밑바닥에 숨어있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니 그것으로 인해 내가 주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가지 못한다면 나는 요나처럼 어리석게 행동하는 자인 것이다.

 

다시스행 배를 타지 말 것이다.

배 밑층으로 들어가지 말 것이다.

사망의 잠을 청하지 말 것이다.

그 대신에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와 주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세상 사랑과 그로 인해 생긴 미움의 모든 대상까지도 십자가에 못 박는 자가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요나의 미움을 통하여 제가 가진 미움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임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다시스 행 배를 탈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로 나아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지금까지 내 살이 되고 피부가 되어버린 세상 사랑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옵소서.

그 어떤 것도 주님의 사랑을 가로막지 못하도록 주님의 보혈 안으로 피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주님으로 충만한 자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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