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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지라도 내가 정당하다고 소리쳤던 입이 다물어지고(욘1:11~16)

작성자묵상여행|작성시간26.06.21|조회수110 목록 댓글 0

(시작 기도)

주님,

주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진리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청년부 설교를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주님의 뜻대로 잘 선포되게 하시고,

이 진리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잘 박힌 못과 같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이신 주님을 맑은 정신과 온전한 마음으로 믿는 청년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흡족한 은혜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3.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14.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본문 주해)

11~12절 : 요나 선지자는 피할 수 없는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다가 여호와께서 보내신 폭풍을 인하여 결국 하나님의 추궁 앞에 설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이방인 선원들을 통하여, 제비뽑기를 통하여 꼼짝없이 들추어내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꼭 집어내시니 요나는 피할 도리가 없다.

흉용한 바다가 자기 때문인 줄 안 요나는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한다.

 

13~15절 : 배에 탄 사람들이 대번에 요나를 들어 던지지 못한 것은 하나님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도망가는 자를 이런 폭풍을 통해 찾아내시는 두려운 하나님이심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니 그의 선지자를 혹시 잘못 건드렸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노를 저어서 육지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바다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이제 선원들이 어쩔 수 없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게 되는데, 자기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는 것은 여호와의 뜻대로 하는 것이니 무죄한 피를 자기들에게 돌리지 말라고 간구한다.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자 곧 바다가 잠잠해진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예시한다. (벧전1:10~11)

특히 예수 그리스도는 요나의 사건을 자신의 사건으로 해석하셨다.

요나가 바다에 던져진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것은 그리스도의 무덤을 예시한다. (마12:39~40)

다만 요나는 자기 죄로 인해 바다에 던져졌으나, 그리스도는 아무 죄가 없었음에도 우리 죄를 담당하며 죽음에 넘겨지셨다. 그는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 내줌이 되셨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살아나셨다.

이제 누구든지 그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써 의롭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랑받고 거룩한 아들이 되는 것이다.

 

16절 : 놀란 선원들이 희생 제사를 드리고 서원을 한다.

그 서원이란 히브리인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기에 그를 섬기겠다는 서원일 것이다. 자기들이 지금까지 믿고 섬기며 부르짖었던 그 신들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으나 요나 선지자의 말대로 했더니 곧 바다가 잠잠해짐을 보고서 여호와를 경배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의 묵상)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는 요나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거친 바다에서 자기 때문에 죽을 사람들을 살리고자 하는 거룩한 희생의 뜻일까?

아닌 것 같다.

요나는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뾰족한 마음을 그대로 갖고 있다.

‘죽으면 죽었지’ 하는 독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는 죽으면 죽었지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 요나의 마음이 내게 꼭 와 닿는다.

‘하나님, 다른 것은 다 해도 이것은 못 하겠는데요.’ 하는 그 마음이다.

‘왜 이런 것을 시키십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생각이 맞지요.....’ 한다.

 

왜 이렇게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상충할까?

내가 부르는 하나님은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무조건 내게 유익이 되는 하나님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생각이 얼마나 고질적인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앞에서도 ‘나를 잘 되게 하시는 예수님’을 고집하는 것을 보면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가를 알게 된다.

 

‘죽으면 죽었지, 그건 안 되겠는데요.’ 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성도의 삶이 되어야 함을 복음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애국심, 가족사랑, 사회 정의감 등을 외칠 때, ‘죽으면 죽었지’ 하며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서는 이런 자들을 추앙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마음이 아무리 출중해도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은 것은 다 한낱 죄인의 생각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나라만이 잘 되어야 할 이유가 없고, 내 가정만이 잘 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주님 앞에서 다 무가치할 뿐이다.

 

왜 무가치할까?

그것들이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지창조에서부터 죄인을 구원시켜 영생을 주시는 것까지, 모든 것을 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시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이다.

 

요나가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 하는 것은 자기 성질을 못이겨 내뱉는 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되심과 부활을 말씀하여 주신다.

참으로 동상이몽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일치점을 이루신다.

이 영원한 평행선과 같은 하나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만나도록 인도해 주시니, 그곳이 바로 주님의 십자가 자리이다.

 

죄 없이 희생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죄인 된 나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시켜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 죽을지라도 내가 정당하다고 소리쳤던 입이 점점 다물어진다.

그것은 복음으로 내가 먼저 심판을 받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심판은 나를 다시 살리시는 심판이요, 새 생명을 주시는 심판이 된다.

 

이 심판을 받은 자의 외침은 하나뿐이다.

‘주님은 항상 옳습니다!’

이해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주님의 옳으심을 선포하며 잠잠히 주님의 뜻을 기다리는 복음 전도자가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요나의 성향이 꼭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니라고 하시니 금세 시무룩해집니다.

아니라고 바락바락 대들지 않고 그저 시무룩해지는 것도 은혜입니다.

점점 주님의 뜻을 찾는 마음이 되었다는 증거이지요.

 

언제나 옳으신 주님이심을 알면서도 자기주장을 해대는 존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나의 생각을 못 박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려면 도대체 얼마의 세월이 흘러야 할까요?

 

요나로 하여금 자신을 ‘바다에 던져라’ 말하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심을 생각합니다.

그것을 통해 주님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모든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알아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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