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1장 17절 - 2장 10절 - 자기 의를 드러내는 교만을 버리고 주의 구원과 인도하심을 감사와 찬양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작성자신앙이삶작성시간26.06.22조회수41 목록 댓글 02026년 6월 22일 묵상 본문 : 요나 1장 17절 - 2장 10절 - 자기 의를 드러내는 교만을 버리고 주의 구원과 인도하심을 감사와 찬양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6월도 벌써 하순에 접어들면서 1년도 절반을 지나고 있음을 봅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은 참된 것을 얻고 누리고 그 안에서 주의 은혜와 진리를 깨닫는 것임을 느낍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 참된 것을 분별하고 은혜와 진리를 깨닫는 삶으로 인도하옵소서.
오늘도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의 모든 일정 가운데 주님을 의식하며 말하고 행하는 모습이 많아지길 소망합니다.
생각을 일깨워 주시고 주님이 내 삶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모습이 되게 하옵소서.
주의 지체들도 자기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주의 은혜를 따라 살아가도록 인도하옵소서.
어두운 세상에서 진리의 빛으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큰 물고기의 종류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백상아리로 추정한다. 물고기 배속에서 3일이라는 시간은 72시간을 말하지 않고 하루 24시간을 끼고 앞날의 몇 시간과 다음 날의 몇 시간을 합하여 계산하는 것이 히브리인의 시간 계산법이다.
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요나는 물에 빠져 죽을 위기에 있었지만 물고기가 요나를 삼켜 죽지 않게 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기적의 역사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예수님께서 요나의 사건을 인용하셨다는 사실에서 실재 사건임을 볼 수 있다. 요나는 물고기 배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요나는 바다에 던져진 후 죽음 앞에 서게 되자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는 죽음 앞에 무능한 인생의 연약함을 의미하며 고통 앞에서 무기력한 인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올의 뱃속은 아마도 바다 깊은 곳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죽음의 처소를 의미한다.
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요나는 바다에 던진 주체는 선원들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생과 사의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만 달려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다는 것은 요나에게 극심한 고통의 상황이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성전을 바라보겠다는 것은 교만함을 버리고 겸손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겠다는 고백을 의미하고 있다.
5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요나는 자신의 영혼과 생명이 물에 완전히 잠겨서 소생할 수 없었음을 표현하고 있다. 바다 풀은 바다 밑에 자라는 각종 해초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잇다.
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산의 뿌리는 해저 산맥의 바닥으로 볼 수 있으며 빗장은 문을 걸어 잠그는 긴 막대기를 의미하는데 여기에서는 빠져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6절 하반절부터 요나는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한다. 특별히 요나는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는데 이는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으며 인생의 상태에 상관없이 구원하시는 능력을 노래하고 있다. 주의 성전은 예루살렘이 아닌 하늘의 성소를 의미하며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우상 숭배자를 의미하며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버린 자들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우상 숭배자와 다르게 요나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서원한 것을 갚겠다고 맹세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이유는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임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3일이 지나 하나님의 때가 되자 하나님은 물고기를 명하셔서 요나를 토하게 하여 육지에 이르게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회개한 요나에게 다시 말씀에 순종할 기회를 주셨음을 의미한다.
나의 묵상
하나님은 요나가 아직 순종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기에 그를 바다에 빠져 죽지 않게 하시고 물고기를 통해 잠시 생명을 연장시키시는 일을 하셨다.
상식적으로 보면 어떤 물고기의 배속이든지간에 그 속에서는 위액이 나와 음식물을 녹여 영양분으로 만들기 때문에 물고기 배속은 사람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러나 요나를 삼킨 물고기는 날수로 3일의 기간 동안 위의 활동이 멈췄으며 물고기의 배 속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숨 쉴 수 있는 산소가 공급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기적적인 간섭으로 인한 결과임을 보게 된다.
3일의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셨고 죽음에서 생명을 변화시키시는 은혜를 드러내셨다.
그리고 3일의 시간 동안 요나는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으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찬양하며 감사할 것을 고백하게 된다.
죽음과 고통 앞에서 무기력한 인생의 모습이기에 생명과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지혜이며 평안과 소망을 얻는 가장 중요한 비결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요나는 배 위에서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을 때 선원들에게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했다.
아마도 자신 때문에 죽음으로 향하는 선원들과 사람들을 향한 최소한의 책임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요나가 철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요나가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했던 것은 결국 회개하지 않는 교만함의 모습이었으며 인간적인 책임감으로 자신의 죄악을 무마시키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요나의 태도는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교만함인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요나가 회개하도록 이끄시고 사명을 감당하도록 만드신다.
인생의 패역함과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은 결코 실패되지 않고 정확하고 온전하게 사람들의 삶을 통제하여 구원으로 이끄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요나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바울도 죽음의 상황에서 자신을 건지셔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손길을 드러낸다.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4:16~!8)
결국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의 상태나 지혜와 노력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통해 이루어지고 성취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하나님의 명령에 적극적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동참하는 자가 되느냐 아니면 방관자나 반역자가 되었다가 책망을 받고 돌이키느냐의 모습이 다를 뿐임을 보게 된다.
두 종류의 사람 모두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긍휼과 자비에 대한 감사이며 선하게 이끄시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임을 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성도라고 할지라도 인생의 본질은 반역자요 훼방자며 죄인 중에 괴수이기 때문에 적극적 순종도 결국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부족한 자를 정죄하고 비웃는 것이 성도가 취할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순종하게 된 것에 더욱 감사하며 미성숙한 자를 긍휼과 자비의 마음으로 바라봄이 바른 태도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선포하면서 그 누구도, 어떤 세력도, 어떤 대상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나게 만들 수 없음을 선포하며 찬양한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
오늘도 주의 말씀은 인생의 지혜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거나 자신이 소유한 것을 자랑하는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자랑하는 것에 있음을 가르쳐 주신다.
그리고 그 은혜를 선포하며 증거 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본질적 모습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그 사명을 오늘도 감당하는 자 되기를 소망하며 복음을 통해 생명의 은혜를 누리고 그리스도와 이웃을 사랑하며 선한 길로 이끄는 자로 세워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인생의 지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알고 고백하며 따르는 태도 가운데 얻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혜를 버리고 세상의 것으로 지혜를 얻으려고 하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의를 세우려는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를 발견합니다.
사람의 의를 버림이 지혜이며 주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구함이 능력임을 고백합니다.
복음을 통해 죄와 허물을 고백하고 씻게 하시며 주의 품에 안겨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구하면서 평안과 기쁨으로 살아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물고기 배속에서 고통과 죽음을 경험하지만 요나의 고백은 주의 구원과 생명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하나님은 요나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요나에게 특별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특별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살게 하시고 끝까지 믿음을 지킴으로 주의 신실하심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갈 길을 비추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