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전국 남녀신도대회 행사로 대전에 갑니다.
작은 것이라도 배우는 것이 있게 하시고
동행하는 이들과의 오고 가는 길의 모든 대화에 은혜가 넘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의지하오니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본문 주해)
1~2절 :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만에 토해 내어진 요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임한다.
그것은 큰 성 니느웨로 가서 그들에게 내려질 심판을 선포하라는 말씀이었다.
불순종하다가 죽음을 경험한 요나는 결국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된다.
3~4절 : 선포의 내용은 이 성이 40일이 지나면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나가 한번 불순종하였기에 이제는 단 마음으로 순종하여 전하였을까?
그렇지 않았다. 마지못해 겨우 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니느웨 성안에 다 전하려면 3일 길은 돌아다니며 선포하여야 하는데 겨우 하루만 선포한 것이다. 그리고 선포의 내용도 40일 후면 무너진다는 내용만 전한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내용과 너무나 다른 것을 보게 된다.
선지자들이 자기 백성들에게 심판을 선포할 때는 왜 심판이 임하는지를 알게 하여 회개하고 돌아서도록 외치는 것에 반하여 요나는 그저 오직 심판만을 선언한 것이었다.
5~8절 : 심판 소식을 들은 백성들부터 먼저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은 자, 낮은 자 할 것 없이 굵은 베옷을 입은 것이다.
그리고 이 소식이 왕에게 전하여지자 왕이 조서를 내려서 사람뿐 아니라 짐승까지 금식을 선포하여 물도 마시지 못하게 하고 굵은 베를 입힌 것이다. 그리고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으라고 하며 각기 악한 길과 행위를 금하라고 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온 성읍이 회개한 것이었다.
9~10절 :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고 노여움을 푸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9절, 새번역)
니느웨 성 사람들의 회개의 태도를 볼 수 있다.
그것은 회개하였으니 당연히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죽어 마땅한 자이지만 혹시라도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주셔서 멸망치 않게 해주실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하는 것이다.
니느웨 성 사람들은 선지자 한 사람이 가서 이 성읍이 40일 만에 망하리라는 그 한마디를 듣고서 임금으로부터 온 백성과 짐승에 이르기까지 금식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서 회개하였다.
그런데 그 회개가 그들이 용서받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주님의 자비와 긍휼로 용서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회개 행위 자체를 의지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셔서 그들을 용서하신다.
(나의 묵상)
죽음을 경험했다가 살아난 요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임했다.
똑같은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바다의 깊음 속에서 고통을 치르게 하시면서 방향을 꺾었기 때문에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는 하는데 그의 마음은 여전히 ‘니느웨가 망했으면 좋겠다’ 였다.
그 증거가 두 가지이다.
첫째, 제대로 전하려면 사흘길이 걸리는 니느웨 성읍인데 하루만 전하고선 싹 빠져나온 것이다.
둘째, 니느웨가 망하는 이유 즉 회개해야 하는 이유는 빼고, 오직 40일 뒤에 니느웨가 망할 것이라는 말만 전하고는 빠져나온 것이다.
그는 마지못해 말씀을 전하고는 ‘나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다 했어요.’ 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니느웨의 모든 사람들이 금식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린 것이다.
요나 선지자의 마음에는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사랑도, 열심도, 열정도 없었다. 선지자로서의 사명감은 더더구나 없었고 오직 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이스라엘의 유력한 많은 선지자들이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과 열정으로, 눈물로 이스라엘의 회개를 외쳤어도 이스라엘은 끄덕하지 않고 열심히 우상을 섬김으로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망해 버리고 말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성의 없이, 형식적으로 후딱 던지고 나온 요나 선지자의 말에는 이방의 온 성읍이 회개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회개라는 것이 전하는 자의 실력이나 능력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보게 된다.
날마다 하는 회개를 생각한다.
요나의 어제의 진심 어린 회개는 어디 가고 오늘 이렇게 막 행동하는지....놀랍기도 하지만 어디서 많이 보던 행동이라 참 친근감(?)까지 들며 막 이해가 된다.
화장실 갈 때와 올 때의 마음이 다른 것, 바로 나의 행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니느웨 사람들 역시 다르지 않다.
모든 인간이 이런 죄악의 습성 속에 살아간다.
죄의 세력은 이것을 빌미로 나를 정죄하지만, 더 이상 그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이런 것으로 나 자신에 대해서 더 이상 절망하지 않는 것이다.
복음을 통해 나는 원래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아무 대책없이 영원한 죽음으로 달려가는 자를 구원해 주시는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번 십자가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십자가를 붙들며 그 보혈 아래로 나아가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요나나, 나나, 니느웨 사람들이나 똑같다.
날마다 말씀의 빛 앞에 서지 않으면 회개의 길을 찾을 수 없다.
날마다 말씀의 빛 앞에 서면 나의 감정이나 의지 그리고 지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쓰잘데기 없는지, 얼마나 오류가 많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선지자라도 민족주의로 똘똘 뭉친 요나를 다루시는 하나님,
잘못된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하나님,
그리고 자기의와 자기주장의지로 똘똘 뭉친 나를 오늘도 말씀으로 다루시는 하나님이시다.
온전한 계시의 말씀을 주셔서 요나나 이스라엘이 받지 못한 완전한 은혜를 받게 하셨다.
그것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새 옷을 입게 하시는 은혜이다.
(묵상 기도)
주님,
요나가 그렇게 어려움을 당해 놓고도 민족주의 감정에 사로잡혀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자기의와 자기주장의지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저도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옛사람의 습성을 못 박고
주님의 새 옷을 입음으로 주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 마음이 연결되게 하옵소서.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이 영의 양식을 배부르게 먹게 하시고
하늘의 호흡을 하는 정신이 맑은 영의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