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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상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사는 것입니다(수 7:1-9).

작성자복음지기|작성시간16.07.24|조회수100 목록 댓글 0

 

* 시작 기도

주님...

패역하고 악한 이 세대에 오직 진리 되신 주님만을 붙들게 하옵소서.

이 육신이 패역을 좇아가려고 움찔거릴 때마다 나를 향한 심판을 거두지 마옵소서.

주의 심판은 나를 살리는 징계의 채찍이요 생명임을 믿나이다.

나의 오염된 영혼과 육신의 죄를 주의 보혈로 씻어 정하게 하소서.

주께서 주시는 구원의 기쁨이 다시금 회복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7:1-9

제목 : 그리스도인은 상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사는 것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2.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점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3.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2~3천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4. 백성 중 3천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5. 아이 사람이 그들을 36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7.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8. 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9.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 나의 묵상

세상은 상식으로만 살아도 잘 산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상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살아야 한다.

상식은 세상의 기준이다.

그러나 진리는 하나님 나라의 기준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기준인 상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기준인 진리를 따르는 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1차 여리고 성을 점령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번째 성인 아이 성을 점령하는 기사이다.

아이 성은 말 그 이름이 뜻하는 바와 같이 그야말로 작은 성이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보면 아이 성의 주민들과 비례하여 그에 걸맞는 군사 숫자만 보내도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여호수아가 아이 성에 보낸 정탐꾼들의 보고가 바로 그렇다.

아이 성은 작고 그 수는 적으므로 모든 백성을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말고 2-3천 명만 보내면 될 것 같다고 하여 여호수아 역시 3천 명만 보낸다.

그런데 그들은 아이 성 주민들과 싸워 36명이 죽고 전쟁에 패하여 도망나온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가나안을 약속의 땅으로 그들에게 주시마고 하셨는데, 왜 그들은 이처럼 작은 아이 성 전투에서 보기 좋게 패하고 말았는가?

그것은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이 진리를 벗어나서 상식으로 전쟁을 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은 상식을 뛰어 넘어 진리로 행하여야 한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 전투에 앞서 정탐꾼을 보냈다.

물론 정탐꾼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정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정탐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았고 정탐꾼들의 말에만 귀를 기울여 그들의 말대로 시행한 것이다.

물론 여호수아는 아간의 범죄 사건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성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또한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면 하나님께서 분명 아간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 성을 점령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부정하게 된 백성들을 정결케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다음에 아이 성을 점령해도 늦지 않는다.

 

또 한 가지 그리스도인은 상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살아야 됨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아이 성 전투에서 패한 후에 여호수아가 대처하는 방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런 우환을 당했을 경우 대부분 사람들은 울며불며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닥쳤느냐고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한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런 상식선에서 행한 것이 아니라 비록 늦긴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주님의 뜻을 묻는다.

(8-9) 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여호수아는 우리가 달라고 했던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해 놓으시고선 왜 지금 와서 우리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시느냐고 부르짖거나 항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이스라엘이 원수들 앞에서 돌아서 도망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묻는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면서 얼마든지 자신의 뜻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뜻이 있지만 나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기를 간구하셨다.

결정적인 순간에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가 아니면 나의 뜻을 구하는가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신앙의 결단이다.

이 신앙의 결단은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님과 오랜 시간 교제를 통하여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다.

 

이 교제는 말씀으로 교제하는 것이요, 말씀은 곧 하나님의 존재 자체시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말씀 묵상은 주님과 가장 가까이서 교제하는 것이며 이런 교제를 통하여 결정적인 순간에 나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구하게 되는 것이다.

 

신앙의 일반적인 상식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들을 열심히 하고 섬기는 것이다.

주방에서 봉사하고 차량과 주차로 봉사하고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며 예배와 찬양대로 봉사하는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일들로 열심히 섬기면 그 사람의 신앙은 일등 신앙이 된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그런 것보다 더 근본적인데 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들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오직 한 가지다.

(6:28-29)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works)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work)이니라 하시니

따라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보내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을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이다.

 

영생을 얻기 위하여서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분과 교제를 통해서 가능하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히브리어로 야다라고 하는데 이는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 하며, 이 인격적인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그것을 야다, 곧 아는 것이라고 한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안다는 것은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 하고, 그 만남이 지속되어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 존재 자체이신 말씀으로 날마다 교제와 사귐을 갖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아는 것이요, 이런 앎을 통하여 주님을 믿게 되며, 그 믿음으로 생명을 얻어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앙의 상식은 꼭 그렇게 믿어야 되냐고 묻는다.

꼭 그렇게 극성스럽게 해야 예수님을 믿는 것이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냐고 대든다.

이런 사람들은 몸으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에게는 후한 점수를 주면서도, 말씀 묵상을 하되 그것을 통하여 주님과의 교제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반박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말이나 생각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기에 누구도 변개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복음을 알기 전에는 말씀 묵상을 가끔 했지만 적용 중심의 큐티를 하였다.

큐티는 결국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여 내가 잘 되기를 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존재 자체이신 말씀을 이용하는 꼴이다.

그러나 말씀은 이용의 수단이 아니라 향유의 대상이다.

말씀을 향유하는 것이 곧 말씀 묵상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복음으로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오해하여 말씀을 읽고 묵상하되 그 말씀을 내게 적용하여 나를 위하여 사용하였고 나 중심적으로 애용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으로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말씀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더 이상 말씀을 내게 적용하고 이용하는 망동을 하지 않는다.

비록 순간순간 넘어지고 치우치지만 다시 아들의 생명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은 날마다 놓치지 않는 말씀 묵상을 통한 교제 때문임을 나는 믿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세상은 상식으로만 살아도 잘 살았다고 칭찬하고 박수를 칩니다.

그러나 주님은 상식을 뛰어넘어서 진리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 안에서 행하는 진리는 우리의 육신이 비록 고통스럽고 힘이 들지라도 그런 상황을 넉넉히 뛰어넘을 수 있는 힘과 기쁨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요, 또한 진리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날마다 말씀으로 교제하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교회 안에서조차 꼭 그런 식으로 믿어야 하느냐고 따지고 대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리요 주님이 원하시는 교제와 사귐이기에 이 교제를 통하여 주님을 알고 주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 온전한 생명을 얻어 영생을 누리가 원하나이다.

 

이제는 상식이 아니라 진리로 살게 하옵소서.

주님은 진리니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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