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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민 14:11-25).

작성자복음지기|작성시간17.06.11|조회수83 목록 댓글 0


 

* 시작 기도

주님...

내 맘이 치우쳐 주를 온전히 보지 못함을 하감하옵시고 나를 긍휼히 여겨주소서.

내가 주를 갈망하오니 나를 만져주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케 하사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주는 나의 의지시오니 나를 붙잡아 주소서.

주여, 새 영과 새 마음을 부으사 주의 영으로 충만케 채우소서.

나는 주의 것이니이다.

오직 주만 바라보게 하소서.

온전히 복종하여 사랑 안에 거하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14:11-25

제목 :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12,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13.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14. 이 땅 거주민에게 전하리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밤에는 불 기둥 가운데에서 그들 앞에 행하시는 것이니이다.

15.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하나 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여러 나라가 말하여 이르기를

16.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17. 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18.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9.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

2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21.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25.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주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 나의 묵상

이스라엘은 믿음의 행위가 아니라 불신앙의 소치로 인하여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다.

시내산에서 1년 정도 머물다가 진영을 구성하여 출발했을 때 그들 중에 불평하는 무리가 발생하였다.

아마도 험한 길로 인함이었던 것 같다.

그들이 대열에서 빠져나와 맨 뒤로 모이고 끊임없이 불평을 하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불로 그들을 살랐다.

그들은 그곳 이름을 다베라라고 불렀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이 은혜의 선물로 주신 만나는 그들에게 있어서 생명의 양식이었다.

그러나 메뉴가 너무 단조롭다고 원망과 불평을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바로 들어갈 것을 명하셨다.

그러나 백성들 중에서 먼저 그 땅을 정탐할 것을 요청하였다.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하셨다.

12명의 정탐꾼이 40일 동안 가나안의 온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모세와 백성들에게 보고하기를 10명은 악평을 하면서 그들에 비하면 자기들은 메뚜기와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2명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므로 가서 취하자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수의 의견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들어가서 취하자고 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향하여 돌로 치려고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서 그것을 막았다.

 

이들은 이렇게 하나님을 시험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그들에게 이런 이적을 베푸셨건만, 그것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같고, 그런 이적이 보이지 않거나 하나님이 택하신 지도자 모세가 보이지 않을 때는 금방 다른 그 무언가를 만들어서 그것을 음란히 섬기려 하거나 모세가 아닌 다른 지도자를 세워서 다시 옛날에 살던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열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멸시한 그들을 하나님은 징계하셔서 결국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다.

 

이들의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믿음이었다.

가장 현실적이고 감각적인 믿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믿음은 사실 믿음이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이런 믿음의 소유자였다.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그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0:27,29)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보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본문의 이스라엘들은 이런 차원에서 보면 믿음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였고, 맨 앞에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그들의 진 칠 장소를 다 물색하여 주었으며, 지도자 모세가 그들의 걸음을 인도해 주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이 없다고, 길이 험하다고, 적이 무섭고 두려워서 갈 수가 없다고 하면서 온통 원망과 불평만 주저리주저리 뱉어낸다.

 

이런 불순종의 백성들을 보시면서 그들을 진멸하시겠다고 하실 때 모세는 하나님께 엎드려 그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바로 그들을 바로 용서하신다(20).

 

중요한 것은 이런 모습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 바로 나에게도 이런 불순종의 모습이 있지 않은가?

눈에 보이면 믿을 수 있을 것 같고,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여 어쩔 줄 모르는 나의 불신앙의 소치는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모자라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번이었지만, 나는 아마 셀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나는 분명히 죽어야 마땅한 존재다.

죽는 것만이 나에게 가장 합당한 것임을 나는 인정한다.

나의 삶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의 모습 그 자체이다.

그런 나를 주님은 살려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는 그런 나의 믿음을 과연 믿음이라고 볼 수나 있겠는가?

그런 나를 주님께서는 품에 품으시고 버리지 않으신다.

그 사랑은 바로 창세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세전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에게 생명을 주어 태어난 생명이 되었고 그의 이름은 말씀이시다(5:26, 1:1-2).

그는 철저하게 아버지에게 복종하여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존재가 되었다.

복종하여 사랑 안에 거할 때 완전한 연합을 이룬다.

아버지가 주시는 그 사랑은 자기 자신을 다 내어주는 사랑이며 그 사랑의 본질이 바로 영광이다.

그 영광을 본질의 계시, 존재의 드러남이라고 한다.

 

한편 아버지는 말씀이신 아들과 약속을 하신다(1:2).

그 약속은 사람을 만들어서 그들에게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인 영생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담을 만드셨다.

아담은 그 자체로는 영생의 존재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삼위하나님의 형상과 아들의 형상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가장 가깝고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면 그 아들을 믿고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이는 아담을 오실 자의 모형과 그림자로 지으신 것이다.

아들이 세상에 오시는 것은 이미 창세전에 결정된 것이다.

(벧전 1: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그런데 말씀이신 아들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아담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범죄하고 말았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리고 하나님을 떠나 분리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면서 이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아담은 그것을 먹었고 그는 죽고 말았다.

여기서 죽었다는 말은 육신이 죽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 날로부터 단절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육신의 죽음도 포함해서다.

육신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은 아니지만, 그는 육신의 죽음을 맛보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런 범죄로 인하여 결국 그는 육신의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죽어가는 아담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찾아가셔서 복음을 주신다.

창세기 3:15절의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3:21절의 가죽옷을 입혀주시면서 그리스도께서 장차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표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한편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 기간 동안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복종하셨다.

자신의 뜻이 아닌 오로지 아버지의 뜻인 영생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다(6:40).

또한 하나님의 명령은 영생이며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그것을 위하여 일하셨다(12:49-50).

 

이제 때가 이르렀다.

그 때란 다름 아닌 십자가를 져야 할 때이다.

십자가를 져야 함은 이미 아담에게 가죽옷으로 예표되는 복음을 전해 주셨으며, 또한 광야에서 모세가 뱀을 든 것으로 그 의미를 다 보여주셨다.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주님께서 들려야 하심은 곧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다.

십자가의 의미는 모든 사람을 주님이 지신 그 십자가로 인도하여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다.

(12:32-33)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이 명령에 복종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다.

이제 십자가에 죽으시지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만민을 다스리는 모든 권세를 받으실 것이다.

그리고 그 권세를 받으심은 결국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을 영생으로 이끌기 위함이다.

 

영생은 무엇인가?

나는 영생을 오해한 자였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나 아니면 끝이 없는 미래 정도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영생의 존재가 되었을 것이라고 착각하였었다.

나는 육신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는 전혀 영생이 아니다.

 

영생은 영원한 생명의 본체이신 아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여 주셨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하나님과 아들을 아는 것이다.

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다’, 헬라어로 기노스코라고 하는데 이는 교제 사귐 연합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과 날마다 말씀 안에서 교제하면서 연합을 이루고 그 사귐이 지속될 때 서로를 알게 되는 것이다.

나는 주님의 품에서 이런 연합을 이루고 주님은 아버지와 연합을 이룰 때 나 또한 아버지의 품에 거하여 아버지를 알게 된다.

이것을 요한일서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요일 2:24-25)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처음부터 들은 것은 다름 아닌 생명의 말씀이다.

이 말씀이 항상 내 안에 거하게 하고 나 또한 그 말씀 안에 거할 때 나는 아버지와 아들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그 영생을 얻어 누리는 것이다.

 

영생은 결코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다.

영생은 이 땅에서부터 말씀을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누리는 하늘의 복이다.

 

아들은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 곧 영생을 다 이루셨다.

그로 인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린다.

또한 그 일로 아버지께서도 아들에게 영광을 주신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신다.

(16: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시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기 위함이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면서 영생의 말씀을 다 전해주셨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을 비롯한 그 영생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령이 오셔서 깨닫게 해주셔야 주님께서 말씀하신 영생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일므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다 완수하신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떠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품에서 계속 연합하신다.

그리고 아들이 보내신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그 깨달음을 통하여 결국 위로부터 태어나게 하는 영원한 생명, 영생을 얻게 하신다.

이는 말씀과 성령으로만 가능하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를 살리시고 위로부터 태어난 생명을 얻게 하셔서 영생의 복락을 누리게 하신 것은 오직 말씀과 성령께서 하신 일이다.

이는 창세전에 아들과 약속하신 그 일을 신실하게 이루신 하나님 아버지의 신실하심이다.

나는 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장사되심 그리고 부활에 연합하여 생명을 얻었고 이제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가 되었다.

그런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가 되어 당당하게 하나님의 아들로써 살아갈 것이다.

오늘이라 하는 시간 동안 내게 주어진 모든 시간 안에서.....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영생과 영광 그리고 복음을 오해했던 자였나이다.

영생은 죽어서 가는 천국쯤으로 생각해서 이 땅에서는 내 맘대로 살던 자였나이다.

그리고 애매한 아담만 손가락질 하면서 그를 욕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죄를 짓지 않았으면 우리는 육신이 죽지 않고 자연스럽게 영생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영광도 내가 예수 잘 믿어서 이 땅에서 내가 하는 일이 승승장구하면서 잘 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부러워하는 그 모습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다고 생각했던 철부지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비록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 자리에 주님의 영광이 임하는 것임에도 말입니다.

 

복음 또한 오해하였습니다.

나는 복음이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입에는 복음 복음을 달고 다녔지만, 그 복음을 통하여 영생을 누리지 못한 것은 복음이 나의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목적이 아니고 수단임을 알지 못하니까 복음이 최종 목적지가 되고 만 것입니다.

생명으로 나아가지 않는 복음은 또 하나의 야곱의 우물임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오늘도 이런 내게 온전한 믿음을 주셔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붙잡는 불신앙의 소유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참 믿음임을 날마다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그 안에서 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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