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 기도
주님...
간절한 마음으로 주의 얼굴을 구합니다.
이 종의 마음을 헤아려 주사 예수로 가득 채워주소서.
나의 심령이 가난하게 하시어 예수로만 부요하게 하소서.
사람들에게 말만 잘 하는 외식하는 자가 아니라 나의 마음을 찢고 진실한 마음으로 주를 찾는 자 되게 하소서.
세상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죄의 몸이 불구자가 되게 하시고 주의 보혈로 나의 죄를 씻어 정결케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말씀이 나의 양식이 되어 하루를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사 37:21-38
제목 :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열심이 이루십니다.
2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사람을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 하시고
22. 여호와께서 그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고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3. 네가 훼방하며 능욕한 것은 누구에게냐? 네가 소리를 높이며 눈을 높이 들어 향한 것은 누구에게냐?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에게니라.
24. 네가 네 종을 통해서 주를 훼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나의 허다한 병거를 거느리고 산들의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의 깊은 곳에 이르렀으니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향나무를 베고 또 그 제일 높은 곳에 들어가 살진 땅의 수풀에 이를 것이며
25.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셨으니 내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하수를 말리리라 하였도다.
26. 네가 어찌하여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네가 견고한 성읍들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노라.
27. 그러므로 그 주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수치를 당하여 들의 풀 같이, 푸른 나물 같이, 지붕의 풀 같이, 자리지 못한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28.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을 내가 아노라.
29.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과 네 오만함이 내 귀에 들렸으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코를 꿰며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30. 왕이여 이것이 왕에게 징조가 되리니 올해는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둘째 해에는 또 거기에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셋째 해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니이다.
31.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32.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 산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3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화살 하나도 이리로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성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며 흉벽을 쌓고 치지도 못할 것이요
34. 그가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35.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6.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185,000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37. 이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8. 자기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으므로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
* 나의 묵상
히스기야가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펴놓고 하나님의 전에서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셨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히스기야에게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의 일로 내게 기도하는 것을 들으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계속해서 산헤립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산헤립이 비웃고 조롱하지만 조롱받는 하나님의 백성, 시온 곧 예루살렘이 너를 멸시하고 조롱하며 도망가는 너를 보면서 머리를 흔들며 비웃을 것이다.
산헤립이 유다를 훼방하고 모욕한 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께 한 것이라고 하신다.
목소리를 높이고 눈을 부릅뜨는 것이 다 하나님을 향해서 하는 것이라신다.
산헤립이 그의 종 랍사게를 통해서 하나님을 훼방하면서 말하기를 나에게는 병거가 많은데 그것으로 레바논의 산꼭대기와 울창한 숲에 가서 백향목과 향나무를 벨 것이며 다른 나라에서 우물을 파서 그 물을 마셨고 또한 애굽의 모든 강물을 마르게 했다고 하는데 네가 나의 말을 듣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하는구나.
그 일은 네가 힘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나 여호와 하나님이 이미 오래 전에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이며 옛날부터 계획한 일이다.
단지 나의 계획대로 네가 성벽이 있는 견고한 성읍들을 헐어 무너지게 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 성읍의 주민들이 겁을 내고 두려움에 떤 것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주민들은 마치 들의 풀 같고 나물 같았으며 지붕의 풀 같이 자라지 못한 곡식 같이 약하게 되었다.
나는 네가 거하는 처소도 알고 너의 출입도 알며 네가 나를 거역하면서 분을 내는 것도 알고 있다.
네가 그렇게 거역하면서 분노와 오만함이 내 귀에 들렸기에 내가 네 코에 갈고리를 걸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서 네가 오던 길로 다시 도망하게 만들 것이다.
이제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에게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표적을 말한다.
그것은 금년에는 땅에서 스스로 난 것을 먹겠고 내년에도 역시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며 3년째에는 직접 심고 거두며 그 거둔 것을 먹게 될 것이라고 한다.
유다 백성들 중에서 남은 자들은 뿌리를 깊이 박은 나무가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것처럼 구원을 받고 또한 많은 자녀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과 시온 산에서 남은 자들이 나올 것인데 곧 만군의 하나님의 열심이 이를 이루실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 산헤립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산헤립은 예루살렘 성에 오지 못할 것이며 화살 하나도 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방패를 가지고 성에 오지도 못하고 흙으로 언덕을 쌓아 성을 공격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오던 길로 돌아가되 이 성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위하고 또한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시며 구원하시겠다고 하신다.
그 날 밤에 여호와의 천사가 앗수르 진에서 185,000명을 쳐서 죽였으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 보니까 온통 앗수르 군대의 시체로 가득하였다.
이로 인하여 앗수르 왕 산헤립이 그곳을 떠나 니느웨로 돌아가서 자기가 섬기는 신인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 그의 아들들인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으로 도망하였고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왕이 되었다.
오늘 본문에서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고 계심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너무나 흐뭇해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는 히스기야가 자기의 힘이나 능력, 군대의 숫자로 싸우려고 하지 않고 그 어떤 방법보다 먼저 주님과 깊은 교제를 통하여 친밀함을 보이며 이는 곧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품속에 거하는 것과 동일한 것임을 알게 하신다.
전쟁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오늘 본문에서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히스기야를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하셨다.
(왕하 18:7)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전쟁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
그저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이다.
또한 오늘 본문과 같이 아주 특별하게 섭리하시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기쁨이 너무 크심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의 천사가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앗수르 군사 185,000명을 죽이는 쾌거를 이루게 하셨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가이다.
또한 내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가에 있다.
누구나 자신에게 어떤 상황이 닥치면 자기의 힘과 노력 그리고 열심으로 그 일을 이루고 상황을 해결하려고 한다.
물론 나의 능력과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그러나 나의 한계 밖의 일들이 내 안에 얼마나 많이 있는가?
그럴 때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 문제를 해결받으려고 했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도 연합도 아닌 그저 문제 해결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것이 기도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기도는 단순히 자기의 필요를 구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였으며 하나님과 하나되는 연합이었고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가득한 하나님의 품속이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히스기야를 기뻐하신 것이다.
자기 자신은 할 수 없으나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분을 즐거워하며 기뻐할 때 하나님의 품속은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되며 하나님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 우리가 이루기 원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만물 안에 속하여 다 썩어지고 없어질 쇠락의 법칙에 적용을 받는다.
따라서 이 땅에서 나의 기도는 땅의 것을 구할 때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는 만물 안에 속한 것으로 무상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설령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다고 해도 그 또한 사라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열심이 확실하게 이루시는 것은 오직 영생이다.
영생은 만물 안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물 위에 계신 아들의 생명을 얻는 것이며 그 생명으로 사는 것이기에 이것을 구하는 이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결국 영생이야말로 하나님의 처음이자 최종적인 뜻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이요 무덤에 장사되심이며 부활하심이다.
이런 구속 사건을 통하여 아들과 하나될 때 비로소 아들의 생명을 얻게 되며 그 생명으로 사는 것이 곧 영생이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시면서까지 우리에게 이 생명을 주셔서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이다.
나는 영생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자였다.
그래서 영생은 죽어서 가는 천국쯤으로 알고 있었으며 예수 잘 믿어서 이 땅에서 복 받고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믿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다고 내가 진짜 예수를 잘 믿었으며 그나마 할 말이라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 땅에서 뭔가 이루려는 욕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의 믿음은 반비례하고 무엇보다 예수님을 이용하여 내 뜻을 이루려는 극히 자기중심적인 신앙인이 되어 갔다.
마치 내가 주인이고 예수는 나의 종이 되어 나를 잘 되게 하는 수단으로 전락하였던 것이다.
그런 내가 지금 이처럼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을 깨달은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임을 고백한다.
그리고 나는 주님께 나를 죽여달라고 기도한다.
이 죽음은 지금까지 옛 사람으로 살아왔던 지난날의 모든 영적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고 그 무덤을 통하여 나의 영적 쓰레기가 처리되었음을 나는 믿는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죄도 짓지 않는 완벽한 자가 되었다는 것을 결코 아니다.
나는 여전히 연약하여 잘 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이용하여 내가 잘 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유하며 그의 존재 자체이신 말씀을 날마다 향유한다.
그래서 주님과 더욱 깊은 사귐 가운데 친밀감을 높여간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기뻐하며 또한 하나님의 기쁨이 되길 원하여 오직 말씀 안에 거하기를 원한다.
그곳이 바로 주님의 품속이요 또한 아버지의 품속이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지금까지 나는 나의 열심으로 살아왔나이다.
나의 힘과 능력으로 또한 나의 열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달려 왔나이다.
그러나 나의 한계에 부딪힐 때 그리고 상황적 무덤이 닥쳤을 때 나는 주님을 이용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었음을 고백하나이다.
한계 상황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하나님의 주권을 알지도 못했고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오직 문제 해결에만 온 관심을 집중하였습니다.
그 문제가 해결되면 나의 믿음이 좋은 것인 양 호도했고 문제가 해결 되지 않으면 나의 믿음이 적어서 그런 줄로 착각하기도 했습니다.
입술로는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수도 없이 찬양하며 고백하였지만, 그것은 그저 입술의 고백일 뿐 나의 신앙고백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주님...
이제 주님의 전적인 주권을 믿나이다.
그리고 비록 나에게 힘든 상황,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적인 한계에 부닥칠지라도 이제는 그것을 해결하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말씀으로 주님과 더욱 가까이 교제하며 친밀감을 키워나가기 원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며 그 안에서만 아들의 생명이 나오기에 그 생명으로 오늘도 살기 원하오니 나를 주의 품속에 받아주소서.
오늘도 주님과 함께 하는 이 자리가 주의 품속이니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