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주님,
귀에 걸었다가 코에 걸었다가 하는,
자기중심적이며 교만한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잘못된 몸의 습관과 같은
못된 육신적 습관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정결케 하옵소서.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으로 달려가오니
주님과의 이 교제로 큰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3. 싸움을 준비한 군대 지휘관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로 나아와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그에게 돌리고자 하였으니 그 수효가 이러하였더라
24. 유다 자손 중에서 방패와 창을 들고 싸움을 준비한 자가 육천팔백 명이요
25. 시므온 자손 중에서 싸움하는 큰 용사가 칠천백 명이요
26. 레위 자손 중에서 사천육백 명이요
27. 아론의 집 우두머리 여호야다와 그와 함께 있는 자가 삼천칠백 명이요
28. 또 젊은 용사 사독과 그의 가문의 지휘관이 이십이 명이요
29. 베냐민 자손 곧 사울의 동족은 아직도 태반이나 사울의 집을 따르나 그 중에서 나온 자가 삼천 명이요
30. 에브라임 자손 중에서 가족으로서 유명한 큰 용사가 이만팔백 명이요
31. 므낫세 반 지파 중에 이름이 기록된 자로서 와서 다윗을 세워 왕으로 삼으려 하는 자가 만 팔천 명이요
32.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
33. 스불론 중에서 모든 무기를 가지고 전열을 갖추고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능히 진영에 나아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오만 명이요
34. 납달리 중에서 지휘관 천 명과 방패와 창을 가지고 따르는 자가 삼만 칠천 명이요
35. 단 자손 중에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이만 팔천육백 명이요
36. 아셀 중에서 능히 진영에 나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사만 명이요
37. 요단 저편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모든 무기를 가지고 능히 싸우는 자가 십이만 명이었더라
38. 이 모든 군사가 전열을 갖추고 다 성심으로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을 온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자 하고 또 이스라엘의 남은 자도 다 한 마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하여
39. 무리가 거기서 다윗과 함께 사흘을 지내며 먹고 마셨으니 이는 그들의 형제가 이미 식물을 준비하였음이며
40. 또 그들의 근처에 있는 자로부터 잇사갈과 스불론과 납달리까지도 나귀와 낙타와 노새와 소에다 음식을 많이 실어왔으니 곧 밀가루 과자와 무화과 과자와 건포도와 포도주와 기름이요 소와 양도 많이 가져왔으니 이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기쁨이 있음이었더라
(본문 주해)
23~237절 :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다윗에게 돌리고자 헤브론으로 몰려온 각 지파별 병력의 목록이다.
이들의 특징은 ‘싸움을 잘 하는 자, 용사, 다윗을 세워 왕으로 삼으려 하는 자,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는 자’로 묘사되어 있다.
이 병력의 수를 다 합치면 삼십 만 명이 넘었다. 이렇게 엄청난 숫자의 군사로 모였다는 것은 다윗이 명실공히 이스라엘 온 지파들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38~40절 : 다윗에게로 모인 각 지파의 군사들은 헤브론에서 삼일 간 잔치를 벌인다.
이들에게 다윗을 왕으로 세운 큰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속한 유다지파와 유다 지파와 매우 가까웠던 시므온 지파의 형제들이 음식과 잔치준비를 하였고, 멀리 북쪽에 있는 잇사갈과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까지도 음식을 많이 준비해 왔다.
(나의 묵상)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이스라엘의 용사들의 마음에 충성심과 기쁨이 넘치고 있다.
본문 주해에서 이 용사들의 특징을 적어보았다.
‘싸움을 잘 하는 용사, 다윗을 세워 왕으로 삼으려 하는 자,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는 자’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오늘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우리들의 특징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용사들의 그것과 같다.
첫째, 영적 싸움을 잘 하는 자이다.
영적 싸움을 잘 하는 자는 말씀으로 깨어 있는 자이고 십자가의 삶을 사는 자들이다.
말씀으로 깨어 있지 않고 세상 정신이 가득해서는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구분을 못한다.
또 연약한 육신을 입은 자로서 십자가를 붙들지 않으면 사단의 유혹과 술수에 판판히 넘어지고 만다.
둘째,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자들이다.
공동번역에는 “그들은 때를 잘 분간할 줄 알고, 이스라엘이 하여야 할 바를 아는 사람들이다.”(32절) 라고 번역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때를 살고 있는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때부터 이미 종말을 시작되었으므로 우리는 지금 종말의 때를 살고 있다.
곧 주님께서 오실 것이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바가 무엇인가?
복음으로 살고, 복음으로 살려야 한다.
내가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함으로 복음으로 충만해지고 또 주님의 지상명령인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도 살고 남도 살려야 한다.
셋째, 두 마음을 품지 않는 자이다.
어제 <인문학을 하나님께>라는 책을 읽었다.
인문학은 인간 중심의 학문이지만, 그 인문학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내용이었다.
어디 인문학뿐이랴!
세상의 모든 것의 결론이자 중심은 주님이시다.
우리들이 품는 두 마음은 무엇일까?
하나님에 대한 마음과 세상에 대한 마음이다.
우리들의 본향은 하늘나라로서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야 할 존재들이다.
본향을 향해 가는 길에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온 것들을 마음에 두고, 가지고, 쌓고.....하다가..... 결국 ‘에라, 여기서 살자’ 해 버린다.
짐을 가볍게 해야 본향 찾아가기 힘들지 않다.
세상에 대한 탐심을 다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세상에 대해 나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은 자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충성하는 자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있으니 바로 ‘기쁨’이다.
오늘 다윗 왕을 세우는 용사들의 기쁨을 나는 안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면서, 장차 주님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리며 사는 자들의 기쁨을 지금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20대 때 두 가지가 참 궁금했다.
하나는, 마흔 살이 넘는 여자들은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지금은 서른 살도 청년이지만 그때 이십 대인 내게는 서른도 서글펐으니 마흔은 말하면 무엇 하겠는가!)
또 하나는 예수쟁이들은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언제나 교회에서 살고, 세상의 재미와 즐거움과는 담을 쌓고 살아야 하는 그 경직되고 답답한 모습이 참 안타깝고 딱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마흔하고도 이십 년을 더 살았고, 스스로 '꼴통 예수쟁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 삶은......너무도 재미있고 행복하다.
40년 만에 주님께서 해답을 주셨다.
그래서 과거 예수님을 몰랐던 20대로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
팽팽했던 얼굴과 건강한 몸을 가졌던 그 시절보다 탄력이 잃은 얼굴과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은 지금이 더 행복하고 재미난다.
주님을 왕으로 모신 자에게 주시는 것,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주님 주시는 기쁨 때문이다.
(묵상 기도)
주님,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에게
날마다 말씀의 잔치로 풍성히 먹여 주시니
기쁨이 넘칩니다.
주님 주시는 만족과 기쁨으로
종말의 때를 잘 살아가게 하옵소서.
제 삶의 남은 때를
왕 되신 주님께 드립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