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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0장 32절 – 45절 – 십자가를 바르게 이해하고 주의 길에 동참하는 자 되게 하소서

작성자신앙이삶|작성시간19.01.30|조회수272 목록 댓글 0

2019년 1월 30일 묵상 본문 : 마가복음 10장 32절 – 45절 – 십자가를 바르게 이해하고 주의 길에 동참하는 자 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며 주를 찾는 시간을 가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의 반복적인 일상의 모습이 때로는 형식화되어 스스로의 행위에 만족하는 것에 머무를 때도 있음을 주님이 아십니다.

내 안에 스스로의 의를 세워 만족을 누리려는 어리석음과 교만을 주님께 고백합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주시고 오직 주의 은혜만으로 참 만족을 누리는 자 되게 하옵소서.

내가 행한 일을 만족으로 여기지 않고 내게 행하신 주의 은혜로 만족을 누리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주의 말씀으로 은혜를 채워주옵소서.

진리요 생명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본문 해설

 

부자청년과의 대화가 끝나고 예수님은 3번째로 자신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특별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제자들에게 하셨으며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이방인에게 넘겨주고 능욕하며 침 뱉고 채찍질하고 죽이겠으나 3일 만에 살아날 것을 선언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에 대해 예고하신 후에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나아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시도록 요청한다.

마가는 요구의 주체를 야고보와 요한으로 기록하지만 마태는 그들의 어머니가 주체가 되었음을 보여주는데(마20:20) 이는 동일한 사건에 대한 관점의 차이일 뿐 모순이 아니다.

특별히 마가는 예수님의 수난 예고 선언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의 모습을 상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에 예수님은 무엇을 원하는 지 물으신다.

그리고 두 제자는 예수님이 영광을 얻으실 때 한명은 주의 우편에 앉히고 한명은 좌편에 앉혀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얻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두 제자가 이해한 예루살렘의 고난은 정치적 혁명이었으며 예수님이 정치적 메시야의 지위에 서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의 행보는 정치적 메시야의 길이 아닌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였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두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그들이 구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에게 자신이 당할 고난과 죽음의 잔을 마실 수 있느냐고 반문하신다.

세속적 영광에 대한 집착에 빠져있던 두 제자는 의미도 모른 채 그 잔을 마시겠다고 말한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이 고난의 잔과 세례를 받을 것을 선언하셨는데 이 말씀대로 야고보는 사도들 중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고(행12:2)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당하는 고난을 겪는다(계1:9).

또한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자신의 권한이 아닌 성부 하나님의 권한임을 선언하신다.

이것을 지켜보던 10명의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화를 내었는데 이는 다른 모든 제자들도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야로 여기며 그들도 세속적 영광을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무지함을 아신 예수님은 세상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가르치셨다.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는 권세를 가지고 권력을 남용하는 것이 아닌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선언하시며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섬기는 자가 되어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담당해야 하는 대속물이 되실 것임을 드러내신다.

 

나의 묵상

 

예수님은 자신을 대적하여 죽이려는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약 1주일 전의 상황들을 본문은 보여주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걸음을 옮기시는 예수님의 발걸음에 제자들은 놀라고 두려워했다.(32절)

제자들의 반응은 십자가 사건에 대한 이해 때문에 나타난 반응이 아니라 정치적 메시야로 드러나게 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놀라움과 두려움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십자가의 길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그들의 모습은 결국 예수님을 통해 세속적 욕망을 채우려는 어리석음으로 나아가게 만든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것이 바로 야고보와 요한이었고 두 제자로 인해 10명의 제자들은 시기심과 질투를 보여주며 모든 제자들이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드러낸다.

 

오늘날도 이런 세속적 욕망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의 모습에서,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십자가의 고난을 단순히 어려운 과정을 인내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고난주간에 새벽기도를 가는 것이 주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았다.

또한 봉사를 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인내하면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은 나의 의를 세우는 것이었으며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행동이었다.

십자가의 고난은 내 자아를 죽이는 것이며 세속적 영광을 포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겸손히 그 심판을 인정하는 것이며 사람들의 멸시와 비웃음, 그리고 핍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십자가에 대한 이해가 바르게 되지 않을 때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동거했던 제자들도 결국 세속적인 영광을 구하는 자가 되었으며 그 가운데 시기와 질투를 드러내는 자가 되었다.

십자가를 모르고 세속적 영광을 구하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모습은 시기와 질투이다.

내가 더 주목을 받고 내가 더 가치 있는 자로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에 시기와 질투를 한다.

자신의 죄와 허물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하심을 깨닫기보다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겸손이 아닌 교만이 드러나는 것이다.

내 안에 여전히 십자가에 대한 이해보다 세속적 영광에 대한 마음이 더 큰 모습을 발견한다.

주님 앞에 내 허물을 고백하고 주의 은혜로 정결함을 얻는 기쁨보다 사람들이 인정하는 말과 스스로의 노력으로 일궈낸 열매에서 기쁨을 누리려고 한다.

주님은 이런 모든 세속적 영광을 버리도록 만드신다.

그리고 주님만이 참 만족이며 주님을 알고 경험하는 영생의 삶이 영광임을 가르치신다.

주님의 가르치심을 깨닫고 그 안에서 만족을 찾을 때 세상의 영광을 구하지 않게 된다.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이해할 때 세상의 영광이 아닌 주님이 도우심과 은혜를 구하며 살아가는 자가 된다.

 

말씀 앞에서 나의 어리석음과 교만함, 그리고 무지함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야고보와 요한은 무지한 가운데에서 주의 고난에 동참하겠다고 말했는데 주님은 그것을 실제로 성취하도록 만드셨다는 사실이다.

무지함과 교만으로 이야기했을지라도 주님 앞에 나아가 교제함의 결과는 그들이 주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비록 무지함과 교만함으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지만 그래도 주님은 은혜로 인도하시어 주의 길을 가게 만드시는 신실함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도 그 신실함을 힘입어 주의 길에 서는 자가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은혜로 주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무지함, 교만함,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살아가는 인생을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풀어주옵소서.

십자가가 무엇인지 바르게 알고 내게 지워주시는 십자가를 바르게 지는 자 되게 하옵소서.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경험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의 은혜를 내 삶에 풍성히 부어주시고 주를 더욱 알고 따르는 자 되게 하옵소서.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오직 주의 은혜를 구하며 겸손한 자 되게 하옵소서.

때로는 어리석음으로 행하며 알지 못하는 것을 구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채우시고 올바른 것으로 바꾸시는 은혜가 임하게 하옵소서.

나를 사랑하사 은혜와 진리로 인도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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