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말씀 : 갈 4:12-20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17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2. 시작기도
하나님. 아버지 말씀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성령님. 오늘도 은혜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부활의 주님께서 함께 해주니 감사합니다. 주님. 보혈로 저의 영혼을 씻기를 원합니다. 메스 미디어로 오염된 저의 영혼을 깨끗히 씻어 주시옵소서. 두려움 많고 교만하고 음란한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예수의 피를 힘입어 아버지게 나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묵상을 나의 유익으로 이용하지 않고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활의 주님을 알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 본문주해
1.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형제라고 부르고 있다. 한 때 이들은 영생의 공동체의 실제를 누렸던 지체가 아니었을까 추측 해본다.
1) 갈라디아 교회는 복음의 터 위에서 세워졌다. 복음을 듣고 구원 받고 복음으로 이들은 하나가 되었다.
2) 여타 초대 교회처럼 영생의 공동체가 아니었을가 추측해본다.
2.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에 거짓 복음이 들어온다. 그것은 율법주의이다.
1) 율법주의가 거짓 복음이라니.. 여전히 나는 이것이 와닿지 않는다. 여전히 십자가 복음에 대한 눈이 열어지지 않은 것 같다.
2) 율법주의는 복음의 반대이다. 이것은 바울을 사랑하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화를 내게 할 정도로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3. 복음을 전해준 갈라디아 교인들은 바울을 천사처럼 여겼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듯이 복음을 전해준 자를 대한 것이다.
1) 실제로 자신에게 처음 복음을 전해준 자를 하나님처럼 대하기는 한다.
2) 서로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관계였던 것 같다.
4. 그러나 반복되는 이야기이지만, 갈라디아 교회에 유대교 신자가 오기 시작했고 그들은 죄를 율법으로 극복하라고 처방을 내렸다.
1) 이는 서로 이간질을 시켜서 유대교 신자들에게 헌신하고 충성하게 하는 것이었다.
2) 갈라디아 교인들은 바울에서 유대교 신자로 따르는 대상이 바뀐 것 같다.
5. 여기서 질문인데, 왜 복음을 들었던 자가 율법주의로 빠지게 되는 것일까? 왜 율법주의의 달콤함을 이기지 못하는 것일까?
1) 나 역시 지금도 복음에 대해서 무지하나 처음 신앙은 십자가 복음을 듣고 시작하였다.
2) 나에게 복음을 전해준 목사님이 개척하로 떠나시자 나는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3) 나를 지도해준 목사님은 좋은 분이셨지만 그 분들 밑에서 나는 율법주의에 빠지면서 신앙에 더욱 열심은 내었지만 복음이랑은 멀어지는 기분을 받게 되었고 죄의 세력을 이기지 못해서 참으로 괴로웠다.
4) 나의 경우에는 율법주의가 달콤하였다. 은혜가 아닌 행위로 죄도 이기고 나 자신도 찾고 치유도 할 수 있고 하나님 나라도 확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달콤했었다.
5) 내가 할 수 있는 한 복음 외에 다른 것을 추구했었던 시간이었다. 부르짖는 기도, 학가다, 성경 암송, 예배, 내적 치유, 축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다 동원했었다.
6) 왜 나는 복음에서 율법주의로 떠나게 되었을까...
7.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몇가지 추측을 해본다.
1) 매일 복음을 듣지 않으면 율법주의로 빠지게 된다. 율법주의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고 죄의 세력이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 노릇하는 것을 자꾸만 부치긴다.
2) 서목사님 말처럼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나아가지 않으니까 계속해서 무엇을 섞게 된다. 섞다보면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3) 율법주의는 하나님 노릇의 요구를 자극한다.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성취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일수록 율법주의를 통해서 신앙을 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4) 또한 본문의 유대교 지도자처럼 율법주의를 전파해 자신의 세력을 만드려고 하고자 하는 그러한 지도자들의 탐심도 존재한다. 율법주의로 누군가를 컨트롤 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8. 바울이라는 강력한 복음의 선포자가 없어지고 율법주의를 주창하는 자들의 주장에 빠져들자 교회도 분열하고 서로 다투고 반목한다.
1) 교회를 망치고 싶으면 율법주의를 선포하면 된다. 그러면 교회는 망하게 되어 있다.(경험해본적은 없지만 왠지 그럴 거 같다)
2) 죄를 지어서 정죄의식에 빠진 사람에게 기도해라 말씀봐라 하는 것은 자칫 좋은 조언을 하는 것 같으나...바울은 이러한 이야기 하지 않았다. 오히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말하였다.
3) 말씀 봐라 이것도..사실은 위험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라" 적정한 표방이다.
4) 생각해보면 로마서 암송하고 에베소서 암송했을 때.. 변화는 없었다. 나는 말씀을 항상 기억하는 것이 말씀 충만인 줄 알았다.
5) 전승된 복음으로 인한 말씀 충만, 생명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이다.
9. 잘은 모르지만 율법주의로 맺어진 우정은 결국에는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1) 서로 기질이 맞고 율법주의적인 성향이 있어 교회에서 서로 친해진다고 해도 그들은 사망을 유포하게 된다.
2) 진정한 영적우정은 율법주의로 되지 않는다. 복음을 통해 생명으로 나아간 자.. 그러한 자들이 그리스도를 나눌 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영적우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4. 나의 묵상
율법주의는 참으로 달콤하였다. 기도 몇시간 하면 내가 괜찮아질 수 있고 회복될 수 있고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러한 유혹은 나를 율법주의자로 만들었다. 어째 계속 신앙의 행위를 하면 할수록 교만해지고 교만해지니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람과도 멀어지게 되는 일들이 많이 발생하였다. 매일 복음의 말씀이 아닌 율법주의로 무엇인가를 해결한다는 것이 사실 얼마나 달콤한 이야기인가..
십자가 복음을 듣고 신앙을 했을 때 그나마 행복한 적이 많았다. 하나님의 긍휼로 하나님과 접촉되는 순간이 때때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법주의에 빠지면서 그렇게 신앙생활이 힘든 적이 없었다. 게속해서 신앙생활을 할수록 괴로워지자 더 많은 신앙행위를 하였다.. 그래도 부족했고 신앙의 행위가 증폭될 수록 나는 비참한 자가 되었었다..
복음을 듣고 신앙생활을 했으나... 율법주의에 빠진 자..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 나의 영적인 상태는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얼마나 괴로웠던지..지금도 생각하면 끔찍하다.. 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러한 자에게 장사복음을 들려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크다.. 그리고 말씀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생명을 잘 누리지 못하고 배워야 할 것들 천지이기느 하나...그래도 계속해서 파레시아만이 답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오 주님 감사하고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복음에서 율법주의에 빠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매일매일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이다. 신약시대에 말씀은 복음이라고 한다. 말씀 충만을 오해하여 많은 암송을 하였으나...그래서는 되지 않는다. 나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한다. 전승된 복음으로 충만해야 하며 복음을 통해 생명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매일매일 해야 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는 결국에는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어있다. 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날마다 복음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이러한 비참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무덤에서 성전을 지어주시고 부활의 주님께서 통치하시는 것을 날마다 경험하는 자 됙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생명의 공동체를 갈망한다. 율법주의로 맺어진 우정이 아닌 파레시아 하는 자들끼리 경험하는 영적인 우정을 원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생명을 서로 나누고 교제할 수 있는 자를 붙여 주시기를 바란다.
5. 마침기도
주님. 신앙의 시작은 복음이었으나..어느새 율법주의에 빠지는 자가 되었었습니다. 주님 저를 불상히 여겨 주시옵소서. 매일매일 복음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그래서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고 생명으로 영적우정을 나누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