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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렘 5:20-31).

작성자복음지기|작성시간19.05.24|조회수306 목록 댓글 0

2019524()

 

* 시작 기도

주님...

잠을 자고 일어난 이 아침, 말씀 앞에 앉으나 마음이 떨려 나를 불안으로 이끄나이다.

비존재 세력들 곧 불안과 초조, 죄책감과 정죄의식, 죽음과 운명 등 이런 요소들이 나를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연민에 빠지게 하려 하나이다.

내 안에 있는 옛 사람의 지체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오니 나를 거룩한 불구자로 삼아주소서.

 

주님...

주님의 뜻을 알아 주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시고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하게 하소서.

오늘도 말씀으로 주님과 더 깊이 교제하면서 영생을 맛보는 주의 종이 되기 원하오니 나를 받아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5:20-31

제목 :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20.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21.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2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23.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24.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26. 내 백성 가운데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꾼이 매복함 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

27. 새장에 새들이 가득함 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번창하고 거부가 되어

28. 살지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재판을 공정하게 판결하지 아니하니

29. 내가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 같은 나라에 보복하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0.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 나의 묵상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명령하시기를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다.

그들은 지각이 없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지만 듣지 못하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주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명한다.

그것은 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다.

너희는 나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내 앞에서 떨지도 않는다.

 

내가 모래로 바닷물이 넘지 못하도록 한계를 삼았는데 그것들은 나의 뜻에 순종하건만 이 백성은 내 말을 듣지 않고 반역하는 마음이 가득하여 이미 나를 배반하고 갔다.

게다가 너희는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셔서 추수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그렇게 행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자 하는 마음도 먹지 않는다.

너희의 이런 악한 행위가 이른 비나 늦은 비 그리고 추수를 가로막았으며 너희들의 죄가 복을 막아버렸다.

 

내 백성들 중에는 악한 자들이 있다.

그들은 새를 잡으려고 그물을 쳐 놓고 엎드려 숨어 있는 사람처럼 덫을 놓아서 사람들을 잡는다.

새장에 새들이 가득한 것처럼 너희들의 집에는 속임수가 가득하다.

너희는 그런 악한 일을 해서 부자가 되고 살이 찌며 윤택한 자가 되었다.

또한 악한 짓을 행하되 끝까지 하면서 고아의 억울한 사정은 들어주지도 않고 가난한 자들의 송사를 공정하게 재판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찌 내가 이런 자들을 벌하지 않겠으며, 이런 나라를 심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지금 유다 땅에는 놀랍고도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권력을 자기 맘대로 휘두르며 나의 백성들은 이런 지도자들의 행위를 좋게 여기고 있으니 마지막 때가 되면 너희들이 도대체 어찌 하려고 그러느냐?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의 극한 악행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친히 고발하시면서도 그들을 언급하실 때 계속해서 내 백성이라는 표현을 하고 계신다(26, 31).

하나님의 이 표현에서 그의 아프고 찢어지는 마음을 놓칠 수가 없다.

그 마음이 지금 나를 향한 마음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악행을 행하는 백성이며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요, 내 마음과 내 뜻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제사장이다.

나는 하나님을 아는 지각이 없다.

왜냐하면 눈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보지도 못하며 귀가 있다고 해서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떨지도 않는 자로 살아왔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마지막 날에 내가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가면 어쩌나,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지금 당장 정욕이 원하는 대로 나 자신을 내어 주었고 쾌락이 이끄는 대로 내 몸을 내어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를 위해서 내어주셨고, 아들은 자기 자신을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주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런 내가 어떻게 예수를 믿는 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내 욕심대로 살면서도 예수를 믿는다고 얼마나 떠벌였는지...

세상의 방식대로 살면서도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확신하면서 살았던 자이다.

 

그러나 이는 주님이 인정하시는 참 믿음이 아니었다.

내 믿음과 주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은 천양지차이다.

내 믿음은 내 방식대로 믿는 믿음이요, 주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은 주님의 뜻대로 믿는 믿음이다.

나의 필요를 위하여 주님을 이용하는 자로 살았고, 기도는 주님과의 교제가 아니라 나의 필요를 채우는 수단이었으며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존재하시는 분이셨다.

이런 나는 주님과 그의 말씀을 향유하는 자가 아니라 나의 필요와 이익을 위하여 수단으로 이용하는 천하에 죽기에만 합당한 자가 아니고 도대체 무엇인가?

 

그런데 이런 나는 복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그저 교회에 잘 나가고 열심히 신앙생활하며, 목사가 되어서는 주어진 사역에 최선을 다하여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복음이며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였다.

성경에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나와 있는데 나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나 자신을 중심으로 읽었기 때문에 주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기도 제목이 이루어지면 주님은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요, 그런 나의 신앙이 아주 좋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는 내가 잘못 알아도 너무나 잘못 알았음을 복음을 알면서 깨달았다.

복음을 알고 나니 그동안 내가 행했던 모든 일이 정말 주님 안에서는 악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엄마가 자녀의 말을 제일 잘 들어줄 때가 언제인가?

그것은 가장 어릴 때이다.

어리면 어릴수록 잘 들어준다.

심지어 갓난아이들은 말을 할 수도 없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다 해주신다.

배가 고프지 않도록 시마다 때마다 젖을 먹이고 혹시 오줌을 싸지는 않았는지, 똥을 싸지는 않았는지 알아서 확인하고 갈아주곤 한다.

 

그러다가 3-4살이 되어 말을 좀 할 줄 알고 이것저것을 요구하면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예뻐서 그 또한 말을 잘 들어준다.

그런데 7-8세가 되어 엄마에게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하면 달라는 대로 다 주지 않는다.

그 때 자녀들은 엄마에게 거절을 당하게 되고 거절의 아픔 또한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당한 것을 요구하면 안 들어줄 리가 없다.

7-8세의 자녀들이 요구하는 것이 엄마의 뜻에 맞지 않을 때 거절을 당하는 것이다.

그것을 잘 살펴보면 결국 거절하는 것이 자녀에게는 응답이다.

예를 들면 이런 자녀가 부엌에 가서 엄마에게 엄마, 나에게 식칼을 좀 주세요. 식칼 가지고 놀면 진짜 재미있어요.

이렇게 말할 때 그 말을 들어주는 엄마가 과연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엄마는 진짜 엄마가 아니거나 정신이 이상한 엄마일 것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런저런 것을 요구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영생에 있다.

이 영생에 필요한 것이라면 들어주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뜻과 우리의 필요에 관한 것이라면 들어줄 수도 있고 안 들어줄 수도 있다.

이것을 들어주었다고 해서 믿음이 큰 것이 아니고 들어주지 않았다고 해서 믿음이 적거나 없는 것이 아니다.

자녀가 어릴수록 엄마가 아이의 말을 더 잘 들어주는 것처럼 내가 기도하는 대로 다 응답을 받는다면 그것은 내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믿음이 적은 어린 아이와 같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신앙의 본질을 바꿔준 것이 곧 복음이다.

그래서 이 복음을 깨닫고 난 후부터는 전하는 것이 오직 복음이요, 보는 것이 복음이며 듣는 것이 복음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오늘도 내게 임한 심판을 공의로 받아들이나이다.

그것을 피하지 않게 하시고 부끄러우나 무화과옷으로 포장하지 않게 하소서.

오히려 벌거벗겨졌으나 주님의 보혈로 덮어 나를 품으소서.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죄인입니다.

주님, 주께서 날 대신하여 지옥에까지 내려가셨사오니 나를 그 불구덩이 속에서 건져내실 줄 믿나이다.

하오나 오늘 내게 임한 십자가와 무덤을 외면하거나 피하지 말게 하시고 그 무덤이 새 생명의 산실이 되게 하소서.

 

주님...

이로 인하여 고통 받는 주의 자녀들을 주의 품으로 안아주시고 위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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