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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과 사랑의 존재 양식은 주님이 세우신 영원한 조건의 규정이다(엡 6:1-9).

작성자복음지기|작성시간19.12.29|조회수142 목록 댓글 0

20191229()

 

* 시작 기도

주님...

내 영혼이 주를 앙모하나이다.

이 아침, 내 마음에 오셔서 빛을 비추소서.

내가 구하고 바라는 한 가지 일은 날마다 주의 집에 주의 영광을 보는 것이오니 나의 사모함을 더하소서.

 

옛 사람에 속한 소욕은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오늘 하루를 살게 하옵소서.

내 영이 주 앞에서 춤추며 뛰놀기 원합니다.

아들이 창조 때에 아버지 앞에서 뛰놀던 것 같이 나도 그리하게 하옵소서.

겉사람은 후패할지라도 속사람은 날로 새롭게 하시어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을 두사 정결한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정한 마음을 창조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6:1-9

제목 : 복종과 사랑의 존재 양식은 주님이 세우신 영원한 조건의 규정이다.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 나의 묵상

남편과 아내의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상전과 종의 관계 등 이 땅의 모든 권위와 질서가 있는 두 사람 이상의 공동체에는 창세전의 존재양식이 적용된다.

이것은 곧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이다.

하위 권위인 아내나 자녀 그리고 종은 상위 권위인 남편과 부모 그리고 상전에게 복종해야 한다.

이들의 복종은 어떤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조건적 복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위 권위이기 때문에 남편과 부모에게 그리고 상전에게 복종하는 것이며 이것은 하위 권위로서 마땅한 일이다.

 

십계명 중 1-4계명은 수직적 계명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다.

5-10계명은 수평적 계명으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계명이다.

물론 수평적 계명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한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5계명은 약속이 보장되어 있는 첫 계명이다.

그 약속은 하는 일이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많은 경우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일을 조건적으로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 조건이 아니라 부모의 조건을 붙드는 것이다.

부모가 돈이 있으면 순종하고 공경하며 자주 찾아 뵙는다.

그러나 부모가 가난하고 남겨줄 유산이 없으면 순종이나 공경은 먼 별 나라 이야기가 되고 만다.

 

벌써 오래된 이야기다.

15년 전 쯤, 정부 시책에 의해서 충청도 연기군을 행정 수도로 삼겠다고 발표하였다.

평소에는 연기군에 사는 부모들을 잘 찾아가지 않던 자녀들이 쥐들이 쥐구멍 드나들 듯 뻔질나게 찾아가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연기군으로 가는 도로가 정체현상이 생길 정도로 말이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없던 부모들에게 정부에서 보상이 나올 것을 염두에 둔 자녀들의 이기적인 마음이 그런 촌극을 빚은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에서 연기군을 행정 수도로 정하는 것을 취소하는 발표를 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 많던 차들이 순간 다 사라지고 만 것이다.

더 이상 부모들에게서 나올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인간은 이처럼 극단적 이기주의자들이다.

그것이 가족이요 부모와 자녀 사이라도 말이다.

몰론 이것은 한 일례에 불과하지만 때로는 가족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불의한 경우가 많다.

남들에게는 예를 지키면서도 가족이니까하면서 예도 지키지 않고 함부로 대하며 가족에게는 법이 무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행태인 고르반처럼 말이다.

그래서 주님은 주 안에서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이런 계명을 정하신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 것이다.

자녀를 노엽게 한다는 것은 부모의 욕심으로 자녀를 다그치거나 억압적인 복종을 강요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는 자녀를 양육하면서 자녀들을 얼마나 노엽게 했는지 모른다.

내 뜻대로 하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하고 매를 들고 때리기도 하였다.

물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하는 것은 알았다.

그래서 아이들을 말씀 안에서 양육하려고 애써 노력도 했지만 일관성이 없었다.

무엇보다 자녀들을 훈육하되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였다.

그것은 자녀들이 말씀을 통하여 주의 영광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간적으로 잘 되고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것이었다.

주의 말씀 안에서 양육하려면 내 자신이 죽고 부단히 참아야 하는데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서 속에서 열이 나서 참고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 화를 내고 매를 들어 초달이 아니라 분을 견디지 못하여 감정으로 때리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큰 아들이 초등학생 때는 아빠의 눈치를 얼마나 보던지 아빠의 눈을 바로 보지 못하였다.

아빠 앞에서는 주눅이 들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얼마나 아팠던지 모른다.

 

나는 자녀들을 내 소유로 생각했던 것이다.

정말 나의 욕심으로 자녀들을 키우면서 내가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모사면 아이들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나는 자녀들을, 나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생각하고 그들을 꼭두각시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들의 분노가 얼마나 컸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찔하다.

큰 아들이 아빠의 눈치를 보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아이들을 다그치고 매를 드는 일을 줄였다.

할 수 있으면 많이 안아주고 따뜻하게 대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지는 못하였다.

그렇게 한다고 하면서도 세상적인 가르침과 방법이 우선하였고 아이들이 세상에서 으뜸이 되기를 바라면서 세상적 지식으로 최고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자녀들을 양육한 모습을 보면 아빠가 될 자격이 없는 자였다.

나 역시 아버지에게는 유약한 자녀였으며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육신의 아버지나 하늘 아버지께 온전히 공경하거나 복종하지 못하면서 나의 자녀들에게는 나의 욕심을 요구하고 그것이 채워지지 못하면 화를 냈던 것이다.

 

이런 아빠를 둔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준 것을 보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아들로서도 그리고 아버지로서도 그리고 남편으로서도 하나님 앞에서 합당치 않는 자이다.

내가 나를 보건대 내가 나의 아버지였다면 아마도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 같다.

죽어도 몇 번은 죽었을 것이다.

나는 정말 하나님 앞에서 패역한 자이기에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신 말씀 앞에서 나는 지금 나의 욕심과 분노로 살아왔던 옛 사람과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무엇보다 예전에 직장생활 할 때든지, 부교역자로서 교회를 섬기는 일이든지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지 못한 자이다.

수도 없이 눈가림으로 행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당시에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였으나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는 못하였으니 말이다.

그때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도 못했거니와 그저 사람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으면 되는 줄로만 알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내가 육신적으로 상전이 되었을 때를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학원사업을 하면서 원장으로 일할 때 밑에 있는 학원 선생들에게 대한 모습이나 담임목사로서 부교역자들을 대한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하나님 앞에서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나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그저 나만 상전인 양 행하였던 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외모로 사람을 보았으나 하늘에 계시는 나의 상전은 결코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심을 알기까지는 큰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내가 상전이 되어서 교회를 내 맘대로 좌지우지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대표적인 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니 내 뜻대로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큰 고난 속에서 복음을 알게 되었고 그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인 영생을 알게 되어 나의 목회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이다.

 

물론 이제 교회 사역은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위에 온전한 상전이신 하늘 아버지가 계심을 염두에 두고 늘 말씀으로 그분과 함께 사귐을 갖는 것은 내게 있어 말로 다할 수 없는 축복이요 은혜이다.

그것이 바로 날마다 영생을 누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다름 아니라 복음으로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나 비록, 지금도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이나 나의 연약함이 오히려 감사인 것은 약한 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일하시는 강함되시는 주님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이제 몽골로 들어갈 날이 며칠 남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10년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가 된다.

 

주님의 영광의 빛이 동녘에 떠오르는 빛과 함께 내 안에 비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하늘 아버지의 아들로서 합당치 않는 자를 주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살려주시고 또한 자녀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육신의 아비로서 그리고 육신의 남편으로서도 아무런 자격이 없으나 그럼에도 지금 여기 서 있나이다.

내가 산 것은 오직 주의 은혜임을 믿사오니 이제는 아비와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그리고 누군가에는 상전으로 또한 종으로 설 때 늘 하늘 아버지이신 상전을 염두에 두게 하소서.

 

주님...

말씀이 없이는 아무리 완벽하게 살아도 합당치 않사오나, 아무리 부족해도 말씀으로 양육하면 주 안에서 온전하나이다.

복종과 사랑의 존재 양식이 어느 상황에서든지 적용되어 주님의 교훈과 훈계가 조건의 규정이 되게 하소서.

내가 주님의 자녀요 또한 우리 가족이 주님의 뜻을 이루는 공동체이며 무엇보다 이 땅에 영생의 공동체가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하나이다.

내 영혼 오직 주님 품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며 주를 기뻐하나이다.

 

연약한 자들의 참 주인이 되시는 주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는 주의 사랑하는 자녀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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