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9일(토)
* 시작 기도
주님...
어젯밤에는 잠이 안 와서 참다 참다가 결국 수면제를 먹고 늦게까지 푹 잤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으로 인하여 그가 날개가 있어서 날아갈 수만 있다면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겠다고 합니다.
그 광야는 다름 아니라 주의 날개 그늘 아래인 쉐키나의 영광을 보는 자리요 진정한 피난처입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아하스의 교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구하라는 징조를 구하지 않는 자가 있나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친히 보여주시는 임마누엘의 징조는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말씀하시나이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밍밍한 자리에 앉아서 이것도 받아먹고 저것도 받아먹는 그런 자가 아닌지요?
나의 철없음과 정신없음을 하감하옵시고 늘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를 앙망하게 하소서.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는 생명의 복음이오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자가 격리 중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형편이나 그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 주님과 함께 연합하는 귀한 시간이 되게 하소서.
나의 허물과 죄를 주의 보혈로 씻어 용서하여 주시고 주의 손에 장악되어 주만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신 15:12-23
제목 : 주를 사랑한다면 막힌 귀를 뚫어 영원한 주의 종이 되라.
12.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13.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 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14.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15.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
16. 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겨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17. 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구히 네 종이 되리라. 네 여종에게도 그같이 할지니라.
18. 그가 여섯 해 동안에 품꾼의 삯의 배나 받을 만큼 너를 섬겼은즉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하기를 어렵게 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9.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수컷은 구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 네 소의 첫 새끼는 부리지 말고 네 양의 첫 새끼의 털은 깎지 말고
20. 너와 네 가족은 매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을지니라.
21. 그러나 그 짐승이 흠이 있어서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무슨 흠이 있으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잡아 드리지 못할지니
22. 네 성중에서 먹되 부정한 자나 정한 자가 다 같이 먹기를 노루와 사슴을 먹음 같이 할 것이요
23. 오직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지니라.
* 나의 묵상
모세는 면제년과 안식년의 선포와 함께 이제 노예해방에 관한 말씀을 선포한다.
만약 히브리의 남녀 노예가 있는데 그가 6년을 섬겼으면 7년째 되는 해는 그를 놓아 자유케 할 것이다.
그를 보낼 때는 빈손으로 보내지 말 것이며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은혜대로 그에게도 넉넉히 주어 보낼 것이다.
그것은 그들도 역시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며 또한 그런 종 되었던 자신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음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 나오는 히브리의 남녀 종은 하나님께서 같은 동족으로서 종으로 쓰지 못하도록 금하셨다.
그런데 히브리 사람이 히브리인의 종이 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남의 물건을 도둑질 하다가 걸렸을 때 갚을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노예가 되는 것이다(출 22:3).
또는 가난한 형제가 자신의 몸을 팔거든 그를 종처럼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대우할 것이며 희년이 되면 그를 놓아주되 그의 모든 가족을 함께 자유케 할 것이다(레 25:39-41).
그런데 이처럼 종을 해방시켜 자유를 주었는데 그가 그 주인과 그 집을 사랑하여 나가지 않고 함께 살며 섬기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의 귀를 송곳으로 뚫어 영원히 주인의 종으로 삼을 것이다(16-18절).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평소하시는 것처럼 이사야 61장의 말씀으로 복음을 전하셨다.
(눅 4:16-19)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신 후에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눅 4:21)고 하신다.
누구나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은 육신의 귀로부터 듣는다.
그러나 육신의 귀로 들었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진리는 육신의 귀로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만, 반드시 그것을 초월하여 쉐마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한다.
다윗은 시편 40:6절에서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여기서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셨다’는 말씀은 ‘주께서 나의 귀를 뚫어주셨다.’(시 40:6 but my ears you have pierced)는 의미이다.
영어로 pierced는 구멍을 뚫는 것인데 그것은 곧 귀를 할례받는 것을 뜻한다.
귀를 할례받지 못한 자는 복음을 들을 수 없으며 그 복음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할 뿐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8장에서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들의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저 육신의 귀로만 듣고 문자적으로만 이해했을 뿐이다.
그들의 반응이 이렇다.
(요 8: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이처럼 귀를 할례받지 못하고 문자적으로만 들은 유대인들과 귀의 할례를 받은 다윗은 그 반응이 전혀 다르다.
로마서 10:17절에 나오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여기 나오는 들음 역시 할례 받아 열린 귀로 듣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될지라도 그것을 할례 받지 않은 닫힌 귀로 듣는다면 문자 이상의 의미를 감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과 같이 엉뚱한 이야기를 하든지, 아니면 진짜 이마나 손목에 성구를 달고 다닐 뿐 그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새기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다윗은 귀를 뚫음 곧 할례를 받음으로 주의 뜻을 행하며 주의 말씀이 자신의 마음속에 심겨짐을 깨달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의의 기쁜 소식 곧 주의 복음을 전하는데 그 입술을 닫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시 40:8-9절).
다윗의 귀뚫음 곧 쉐마는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아버지의 명령에 귀를 뚫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여 쉐마함으로 자신의 귀를 뚫으셨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쉐마하는 영원한 생명이다.
(요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주님이 십자가에서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머리에 가시관이 찔리며 옆구리에 창이 찔린 이 모든 것은 곧 오직 아버지를 사랑하여 아버지의 소유가 되시고자 찔리신 송곳이다.
그 날카로운 송곳의 고통을 참으시고 이제 우리 또한 아버지께로 이끌어 함께 자녀의 명분을 주신 것이다.
나는 평생 주님을 사랑하여 주의 종이 되겠노라고 송곳으로 귀를 뚫어 주님의 종이 되었다.
종은 주인의 뜻과 말대로 그대로 복종하면 된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로서, 보냄을 받은 자는 오직 보내신 이 곧 주인의 뜻대로 행하면 되는 것이다.
사도는 거창한 자가 아니라 보내신 주인의 종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종인 나는 주인의 뜻도 모르고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내 생각과 내 마음대로 해석하여 분탕질을 했던 자였음을 고백한다.
어둠의 세상에서 귀에 할례를 받아 오직 주의 사람의 복음을 전하여 빛으로 바꾸어야 할 자가 오히려 이전보다 더 어두운 세상으로 만드는데 일조를 했으니 내가 어찌 살아남을 수 있으랴?
이런 나는 주의 종이 아니라 죄의 종으로 살아왔음이 분명하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으나 영원의 진리인 복음을 알지 못하였고 그 복음을 통하여 얻는 생명도 알지 못하였다.
이런 나는 끊임없이 갈지(之)자를 그리며 살아왔다.
영원한 생명을 알지 못하였기에 그것을 가르칠 수도 없었거니와 나부터 세상의 온갖 좋은 것을 목적으로 삼고 살면서 그것을 영적인 것으로 살짝 포장만 하여 사람들의 눈과 귀를 속였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은 속일지라도 어디 하나님은 속일 수 있는가?
그것을 속속들이 아신 주님께서는 나를 그냥 두시지 않고 심판하셨다.
그 심판을 통하여 나는 복음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육신의 귀로만 들었던 나의 귀가 이제 심판을 통하여 성령으로 할례를 받아 귀가 뚫리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주의 말씀인 복음,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귀를 뚫어 할례 받은 귀에 들리고 그것이 내 가슴으로 내려가 나를 새롭게 하였다.
내가 얻은 이 생명을 나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에게 전하여 그들 역시 주님의 소유가 되게 하기 위하여 오늘도 작은 입술이지만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나팔수로 사용한다.
그것의 우선순위는 날마다 나의 뚫린 귀가 다시 막히지 않도록 주의 말씀 앞에 앉아 그 생명의 복음을 나의 양식으로 삼아 홀로 얻어먹는 일이다.
그 안에 주의 생명의 빛이 환하게 비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귀를 뚫지 않고 여전히 죄의 종이 되어 거기에 매여 살았던 자가 여기 있나이다.
그런 죄의 종을 살리기 위하여 우리 주님께서 친히 송곳인 십자가로 당신의 귀를 뚫어 만신창이가 되시고 결국 주님께 당신의 생명을 제물로 드려 나 곧 우리를 핏값으로 사셨나이다.
주님은 십자가로 온 몸을 뚫으셨건만, 나는 작디 작은 송곳으로 귀를 뚫는 것도 하지 못한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
이 종을 불쌍히 여기사 이제는 귀를 뚫어 성령으로 할례를 받아 언제 어디서든지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이 내 가슴으로 내려와 쉐마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날 구원하신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오늘도 작은 송곳인 주의 말씀의 송곳으로 나의 막힌 귀를 뚫기 원하오니 주를 향한 사랑이 그로 인하여 나타나게 하소서.
생명을 사랑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그 일에 나 자신을 온전히 드릴 수 있도록 이 작은 한 몸을 사용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