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2: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2: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2: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 시작기도: 주님, 살아있는 말씀, 복음의 말씀이 좌우에 날선 검이 되어 모든 외식과 자아방어를 뚫고 저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벌거벗은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헛된 의를 자랑하며 합리화하는 무화과 나무 잎을 벗고 오직 주의 긍휼을 구하게 하옵소서. 나의 의는 오직 주님과 그 보혈만이 되게 하옵소서. 육신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교만을 버리고 주의 자비만을 자랑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의 보혈 아니면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고, 제 영혼을 맑게 씻을 방법이 없나이다. 보배로운 피로 속량하셨으니 그 피로 제 영혼을 씻어 새롭게 하옵소서. 그리고 성령님 제 마음을 귀경하사 가난하고 목마르며, 말씀앞에 두려워 떠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항상성 있는 말씀으로 생명의 교제가 항상성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 해
* 베드로는 고난가운데 나그네로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부활의 권능과 종말론적 영광을 바라보라고 격려하였다(벧전 1:3-4)
이 고난은 연단된 믿음, 순전한 믿음에 이르게 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1:5)
- 주님을 보지 않고도 주님을 사랑하듯이, 종말을 보지 않고도 종말을 소망하며 기뻐할 수 있다.
- 고난 가운데 우리를 보호하시며(1: 5),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여 자라게 하시어 종말에 칭찬과 영광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1:7) 산 소망, 하늘에 속한 기업을 바라보야야 한다.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그리스도께서 재림시에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보아야 한다(1:13)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나그네는 두려움으로 구원을 이뤄간다.
- 나그네 성도는 보배로운 피의 속량안에서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형제를 사랑하게 된다.
1. 거룩한 삶, 사랑하는 삶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뤄진다.
1) 복음에 순종하는 삶은 모든 악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것이다.
벧전 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벧전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2. 하나님은 모든 악독, 기만, 외식, 시기, 비방의 말을 버리고 복음의 말씀을 사모하여 영적으로 자라가라고 한다. 종말의 날에 구원 즉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도록 자라가라는 것이다
1) 영적으로 자라는 길은 “외식과 악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것”이다.
2) 신령한 젖은 1: 23-25절에 있는 항상 있는 말씀, 세세토록 있는 복음이다.
- 아기에게 젖은 필수양식이다. 아기들은 젖만 먹고도 무럭무럭자란다. 그리고 그 젖먹는 것을 갈급해하며 젖 먹는 시간을 좋아한다.
- 생명의 말씀,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의 필수양식이다. 이 말씀만 먹으면 무럭무럭 자란다.
3. 베드로는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영적으로 자라가라고 말한다.
벧전 2: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1) 주의 인자하심을 이용하지 말고, 그 인자하심을 방종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히려 순종의 이유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
4. 복음의 말씀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통해 주님께 나가야 한다.
[표준새]벧전 2:4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1) 주님은 항상 살아 있는 보배로운 돌이시다.
2) ‘돌’은 보통 죽은 자를 가리키는데(마 3:9), 여기서 산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뜻한다.
- 그리스도는 사람에게 ‘버림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시다.
3) 세상에서 고난당하는 나그네(성도)도 세상에서는 버림받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자의 삶을 선택할 때 하나님은 부활의 능력으로 보호하시며 신령한 집으로 세워주신다.
[표준새]벧전 2:5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5. 산 돌 같은 성도는 성전을 짓는 돌이 되어 ‘영적인 집’(하나님의 성전, 교회)이 된다.
1)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제물을 바치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집에서 영적인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2) 제사장은 자신을 위해 영적인 제사를 드리며, 중보하기 위해 영적인 제물을 드린다.
3) 제사장이 가지고 나아가는 제물은 “자신의 몸 즉 자신의 전 존재”이다(롬 12:1).
- and 복음사역을 위한 헌금(빌 4:18), 찬양, 선행, 구제행위들이 제물이다(히 13:15-16).
6. 6-8절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돌’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분한다.
1) 믿는 자에게 산돌이신 예수님은 “보배로운 모퉁잇돌”이다.
- 모퉁잇돌은 현관 위나 둥근 지붕에 있는 건물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돌이지만
본절에서는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지침돌이나 모퉁잇돌을 의미한다.
2)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며, 장성한 믿음으로 자라게 하는 기초석이다.
- 예수님을 모퉁이돌로 삼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으며 최후의 명예를 차지한다.
- 하나님은 그런 성도들을 현재적으로 보호하시며 심판대 앞에서 칭찬과 영광을 얻게 하신다(1:13).
7. 믿는 자에게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1) 여기서 모퉁이의 머릿돌은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할 수 있는 어떤 뾰족한 모퉁잇돌이다.
2) 그래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된다(8절).
- 불신앙의 본질은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것, 생명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다.
8. 믿는 자에게는 “모퉁이돌” 믿지 않는 자에게는 “모퉁이의 머릿돌”이라는 비슷한 단어가 전혀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1) 그렇다. 동일한 복음이 순종하는 자에게 생명을 주며,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된다.
2) 복음을 불순종하면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걸려 넘어지도록 하나님이 정하셨다.
- 즉 복음을 순종하지 않으면 믿음은 후퇴하여 결국 사단에게 걸려들게 된다.
9. 베드로는 2:5절에서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복음에 순종하는 자가 얼마나 존귀한 자인지를 2:9절에서 더 자세히 알려준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 복음에 순종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다.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2) 복음에 순종하여 새 생명을 얻은 자는 하나님의 새 언약백성이다.
- 복음에 순종하는 새 언약 백성의 칭호들은 시내산 언약이 완성되었음을 뜻한다.
3) 시내산 언약은 말씀에 순종하는 쉐마로 성취된다(신 6:2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10. 언약의 성취 목적은 우리의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은혜로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특별한 보화가 된 이들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 구속의 은총을 자랑한다.
11. 순전하고 신령한 젖인 생명의 말씀을 사모할 때 보배로운 산돌(영적인 집)이 된다.
1) 그리고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된다.
12.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는 흩어진 나그네, 세상속에서 고난받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다.
1) 신앙 때문에 받는 고난으로 위축될 수 있는 성도들에게 베드로는 복음에 순종할 때 나그네와 같은 삶이 진리로는 왕과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요, 영적인 집임을 알게 한다.
2)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여 장성하게 자라게 하며 신앙을 순전하게 한다.
- 더구나 복음을 위한 고난은 왕과 같은 존귀한 자, 영적인 집이 되게 하는 재료가 된다.
3)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보호함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되고, 재림의 날에 받을 영광과 은혜가 산소망이 된다.
4) 고단한 삶은 “나그네와 같은 고난의 삶에 피곤하고 지쳐 낙심할 것인가?” 아니면 “갓난 아기처럼 복음의 말씀을 사모하고 주님께 나아감으로 왕과 같은 제사장이 되는 영광을 누릴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한다.
◈ 나의 묵상
복음은 기쁜소식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구원과 생명과 존귀와 영광을 주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영적인 집, 왕같은 제사장임을 누리게 하지만 불순종하면 걸려 넘어지게 한다. 복음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택한 백성이 되지만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거치는 돌이 된다. 불순종하는 자에게 복음(기쁜소식)은 걸려 넘어지게 하고 거친 돌이 된다. 고난 중에 걸어가는데 복음에 걸려 넘어져 다친다면 얼마나 불쌍한 인생인가? 고난 중에 하늘의 평강을 누리게 할 복음이, 강하고 담대함으로 나아가게 할 복음이 오히려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된다면 이 고단한 삶을 어찌 살아가겠는가?
복음을 거절하면 복음은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된다.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인 신자여도 기만, 외식, 시기, 비방을 버리지 않고 복음의 말씀을 대하면 마음은 더욱 혼돈스럽고 묵상은 종교적인 무화과나무 잎이 되고 만다. 또 하나의 외식이 되고 만다. 성령님이 돕지 아니하면 말씀묵상과 봉사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되어 나로 넘어지게 한다. 무서운 일이다. 복음의 말씀, 영원한 말씀을 대하면서도 죄의 세력에 속아 사망에 이르게 되니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나에게 있었고 또한 반복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성경지식, 사역, 열매, 은사로 인해 탐심이 들어오고 그 탐심이 미끼가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된다.
목회, 삶, 말씀묵상, 기도, 섬김....,그 자체로 생명과 영광이 되지 못한다. 선을 행할 때, 복음을 대할 때마다 갈림길에 선다. 복음에 불순종으로 걸려 넘어져 낙심하던지, 말씀에 순종하여 영적인 집, 왕과 같은 제사장이 되던지, 둘 중의 하나의 길을 걸어간다. 외적으로는 선하지만 외식과 종교적 의무감으로 생명이 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마음으로 순종하지 않고도 말씀묵상, 예배, 선한 봉사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은 복음의 말씀은 갓난아이들이 먹는 젖과 같다고 한다. 갓난 아이에게 엄마의 젖은 필요충분한 양식이다. 그리고 젖을 먹는 시간은 갓난 아이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젖을 먹음으로 필요충분한 양식이 되면서 엄마의 사랑도 함께 먹는다. 엄마와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특별한 시간이다.
복음의 말씀을 신령한 젖으로 먹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하신다. 매일 말씀을 대하며 먹지만 갓난 아이가 젖을 사모하며 엄마의 사랑과 함께 먹는 것처럼 말씀을 먹지 못한 나를 본다. 이해하고 분석하고 깨닫고.....마치 요리를 한참하고 먹지 않는 것과 같다. 요리를 하는 이유는 먹기 위함인데....주해를 하고, 생명의 말씀을 신령한 젖으로 먹지 못한다. 요리하다가 지치기도 하고, 요리하다가 먹을 시간이 없기도 하고, 요리하면서 간을 보고 냄새를 맡은 것이 요리를 먹었다고 착각하게도 한다. 즉 깨달음을 그리스도를 먹고 마셨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갓난아기처럼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것, 주 성령님이 생명의 말씀을 먹여주실 때다. 영원한 양식이 나의 필요충분한 양식이다. 주님과의 교제, 사역, 삶을 살아가게 하는 충분한 양식이다. 하늘 아버지를 부르며 하늘로부터 오는 신령한 젖을 구한다. 복음의 말씀을 먹지 아니하고는 조금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세상적인 젖과 외식에서 나오는 젖의 근원을 말리시고, 하늘에서 흘러나오는 영적인 젖만을 먹도록 성령님께 이 말씀의 시간을 의뢰한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니 마땅히 신령한 젖을 사모한다.
◈ 묵상 기도
주님, 갓난아기처럼 말씀을 제가 사모하지 못합니다. 주의 말씀을 깨달을 때는 좋지만 말씀 묵상의 자리에 앉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젖을 먹는 즐거운 시간보다는 에너지를 써야하는 시간으로 인식이 됩니다. 맛난 음식처럼 즐거이 먹지 못하고, 거리끼는 말씀은 먹지 못하고 뱉어냅니다. 불순종으로 인하여 젖을 토하는 아기 같습니다.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사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며, 맛난 하늘 양식을 먹는 즐거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주님의 아름다운 덕으로 충만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도 모르는 외식과 기만이 너무 많습니다. 살아 있는 말씀으로 역사하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모든 외식의 옷을 벗고 오직 주의 은혜와 자비만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