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인생의 문제는 많지만 평안한 중에 기도합니다.
주님 뜻을 알고 이루는 모든 과정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부정성으로 혼탁해진 영을 깨끗하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2.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3.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4.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5.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6.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본문 주해)
<1. 나는 소리를 높여서 주님께 부르짖는다. 나는 소리를 높여서 주님께 애원한다.
2. 내 억울함을 주님께 호소하고, 내 고통을 주님께 아뢴다.
3. 내 영혼이 연약할 때에 주님은 내 갈 길을 아십니다. 사람들은 나를 잡으려고 내가 가는 길에 덫을 놓았습니다.
4.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를 도울 사람이 없고, 내가 피할 곳이 없고, 나를 지켜 줄 사람이 없습니다.
5.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주님은 나의 피난처, 사람 사는 세상에서 내가 받은 분깃은 주님뿐"이라고 하였습니다.
6. 나는 너무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부르짖으니, 내게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그들이 나보다 강합니다.
7. 내 영혼을 감옥에서 끌어내 주셔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해주십시오. 주님께서 내게 넘치는 은혜를 베푸시니, 의인들이 나를 감싸 줄 것입니다.> (새번역)
시편 142편은 ‘시인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마스길’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마스길’이라는 말은 교훈적인 시편이라는 말이다.
‘굴’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피신했던 아둘람 굴을 말한다.
1~2절 : 다윗이 자신의 원통함과 우환을 하나님께 부르짖어 아뢴다.
3~4절 : 사울은 자신의 생명을 노려 올무를 놓은 상태이고, 자기 주변에는 도울 자, 피할 곳이 없다는 내용이다.
3절의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란 ‘내 영혼이 연약할 때’(새번역)를 가리킨다.
4절의 ‘오른쪽’ 즉 ‘우편’은 구원자 또는 보호자가 서는 편을 가리킨다.
이는 고대 법정에서 피고인의 변호인이 오른편에 섰던 사실과, 또 전쟁 시에도 도움을 주는 조력자나 옹호자가 우편에 섰던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5~7절 : “야훼여, 당신 향하여 소리지릅니다. ‘당신은 나의 피난처 이 세상에서 당신은 나의 모든 것.’” (5절, 공동번역)
7절의 ‘옥’은 감옥 즉 영혼의 감옥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윗은 자신을 도와 줄 사람도 없고 안전한 피난처도 없어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그런 어려운 처지에 있음을 호소하고 있다. 즉 사울을 피해 아둘람 동굴에 숨어 있는 다윗의 고독함과 무력감이 나타난다.
이런 현실적인 절망이 ‘영혼의 감옥’이 되어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이 시편을 통해서 영혼이 감옥에 갇힌 것처럼 사면초가의 어려운 상황 가운데 주님만 바라보라고 도전하는 것이다. 자신을 아는 이도 없고, 자신의 피난처도 없고,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을 때, 그 비천한 상태가 영혼이 옥에 갇힌 것처럼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다윗은 하나님만이 자신의 피난처이며 분깃(몫)임을 고백하며 영성을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묵상)
연전연승의 장수 그리고 왕의 사위였던 다윗이 아무 잘못도 없이 사울의 시기심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다윗의 원통함과 우환이다.
잘 나가던 인생이 하루아침에 이 동굴에서 저 동굴로 전전긍긍하던 신세가 되니, 생각하면 할수록 분통이 터지고 답답한 일이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다.
그런데 문제에 집중하는 기도가 어느 덧 하나님께 집중하는 기도로 바뀐다.
그 절정이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5절)이라는 표현이다.
오늘 다윗의 부르짖는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피난처 되심과 하나님만이 자신의 분깃’임을 선포하는 부르짖음이다.
‘피난처’는 있던 자리에서 떠나서 몸을 의탁할 곳이다.
왕의 사위로서 거했던 궁궐을 생각하면 아둘람 동굴은 비천하기 짝이 없는 장소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궁궐도, 동굴도 아닌 하나님께로 달려간다.
궁궐의 풍요와 안락함에 대한 마음도 버리고, 동굴의 비참함에서 오는 곤고함과 상한 마음도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품속을 찾은 것이다.
‘분깃’은 받을 몫이다.
다윗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18:7) 라고 자신을 높여주던 노랫소리와 자신의 업적에 대한 기대하는 마음을 버린다.
그리고 고백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내가 받은 분깃은 주님뿐’
이 땅을 살아가는 인생들에게도 문제가 많다.
예수님을 믿는 나에게도 인생 문제가 끝이 없이 생긴다.
그럴 때 그 문제에 집중하고, 능력 없어 힘겨워하는 나 자신에게 집중해 봤자 염려와 좌절뿐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힘주실 터이니 떨치고 일어나자’며 자기식의 결단과 결심을 가지고 주님께 부르짖어야 할 것인가?
문제와 상황에 대해 내 힘으로 힘써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매일 하나님께로 피해야 한다.
어쩌면 ‘내 힘으로 싸우자’ 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더 멋지고 마땅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항상 ‘내게로 오너라’ 하시지, 네가 스스로 나가서 싸워라 하시지 않으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주님만이 나의 피난처요, 분깃이시다.
힘겨운 문제, 비참하고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 피난처이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주님은 말씀이시니,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피난처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에서 일러주시는 방법 즉 십자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돈, 사업, 가족.....은 내 분깃이 아니다.
이런 것들에 찰싹 붙은 내 마음을 매일 십자가로 떼어 내고, 진정한 나의 분깃인 주님께만 마음을 붙인다.
(묵상 기도)
주님,
주님을 피난처로 발견한 자 되게 하시고
주님만의 나의 분깃임을 고백하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세상 감옥에서 저를 건져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세상 것에 매여 파리하여 수척하여 가는 영혼에 생명수를 부어주셨습니다.
이제 매일의 피난처인 말씀 앞으로 달려갑니다.
이곳에서 나의 전부이신 주님을 고백하니 기쁨만이 넘칩니다.
성령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