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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라고 하셨는가?(렘 29:1-14).

작성자복음지기|작성시간20.09.06|조회수704 목록 댓글 0

202096()

 

* 시작 기도

주님...

오늘은 주일입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교회 모든 공동체가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는 못하지만 각 가정에서 영상예배를 통하여 영으로 하나되는 시간을 가집니다.

어떤 예배이든지 형식보다도 그 중심을 보게 하시고 장소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지금 이 시간 예배하는 주의 자녀들이 되게 하소서.

흐트러진 이 마음을 붙잡으셔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주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인간의 상식과 개념이 아니라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오늘 하루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29:1-14

제목 : 하나님은 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라고 하셨는가?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

2. 그 때는 여고니야 왕과 왕후와 궁중 내시들과 유다와 예루살렘의 고관들과 기능공과 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

3. 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말하되

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5.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듣고 믿지 말라.

9.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나의 묵상

오늘 본문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나라가 다른 강대국에 포로로 끌려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나라 대한민국도 일본에 강점을 당하여 36년 동안 식민지 생활을 하였는 바 그 식민생활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나는 직접 그 강점기를 직접 체험한 세대는 아니지만 교과서나 역사책을 통하여 그 고통과 설움을 이미 배웠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당시 우리 나라의 주권을 일본에 넘겨준 장본인 중에 이완용이란 자가 있다.

이는 그 주권을 넘겨준 일로 인하여 한국 국민들로부터 매국노라는 호칭이 붙어 그의 대대손손 매국노의 자식들이란 불명예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와 같이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된다는 것은 모든 주권을 잃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완용보다 더한 자가 등장한다.

그냥 단순히 나라의 주권을 팔아넘기는 정도가 아니라 왕과 고관들 그리고 모든 백성들에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것을 강권하는 것이다.

당시 유다 백성들의 눈으로 보면 이런 예레미야는 매국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만물 안에 있는 이 땅에서의 삶은 우리의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믿는 자들조차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사람의 뜻을 좇아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사람의 뜻과 생각으로는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는 것은 수치 중의 수치요 또한 패배이기 때문에 이를 반길 리 만무하다.

이는 삼척동자도 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바벨론에 두 손 들고 항복하여 그들의 포로가 되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본문 1-3절은 이 서신의 작성자(예레미야)와 수신자(포로 중 끌려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장로들, 제사장들,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 그리고 전달자(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를 명시하고 있다.

 

4절은 예레미야가 쓴 서신의 신적 권위를 밝히고 있다.

이 편지는 나 예레미야가 하는 말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하시는 말이다.

 

5-7절까지는 포로로 끌려간 자들은 바벨론에서 정착하여 살되 그들을 포로로 삼은 바벨론을 미워하거나 저주하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축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평안하면 포로된 그들 역시 평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8-9절은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믿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경계하여야 할 것은 그들을 하나님이 보낸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10-14절은 70년 후에 포로에서 귀환할 것과 선민들이 회복할 것에 대한 약속과 축복의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로 하여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라고 하셨는가?

그것도 거기서 잘 정착하여 살되 텃밭도 일구고 결혼하여 자녀도 낳아 그 백성의 수가 줄어들지 않도록 하라고 하신다.

이는 도무지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이는 복음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이것이 바로 장사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장사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신 바로 그 사건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실 뿐 아니라 무덤에 장사되셔서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당신이 친히 죄가 되신 그 죄를 그 무덤에 완전히 쓰레기 처리 하셨다.

이는 곧 우리의 죄를 처리하신 것이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런 무덤의 시간이 없으면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인 인간은 도무지 의를 알 수가 없으며 그렇기에 의인이 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맴돌기만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어 선포하신 말씀이 곧 너희는 회개하고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죄를 양식 삼아 먹고 마신 것이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의인 삼기 위하여 바벨론 포로라는 이 무덤을 선택하셨고 이를 통하여 그들을 회복시키고 의를 배우도록 하셨다.

 

오늘 우리들도 각 가정이나 개인별로 이처럼 바벨론과 같은 무덤의 상황이 다 있다.

이는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인 것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를 믿게 하셨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복음을 믿는 것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자체가 바로 복음이요 또한 십자가와 장사됨 그리고 부활과 현현이라는 메시야적 행위가 복음이다.

 

이 복음을 믿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난의 상황까지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주권임을 수용하는 것이다.

 

사람은 보통 자기에게 닥치는 고난의 상황은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이 이 고난의 상황 역시 나에게 주셨다는 것을 믿어야만 한다.

 

우리는 보통 이런 고난의 상황이 와도 자기 최면을 건다.

그래, 이 고난은 금방 지나갈 거야. 다 잘 될 거야.”하고 말이다.

또한 예레미야 당시 거짓 선지자들이 했던 것처럼 이 포로 상황은 2년 만에 회복 될 거라는 그 말을 백성들을 더 믿었고 또한 그렇게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원함일 뿐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본문 8-9절에서 그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선포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맞는 고난의 상황 역시 동일하다.

이는 결코 우연히 생기는 일이 아니다.

나를 죄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의로 삼기 위함이며 더 나아가 죄의 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영생을 얻어 날마다 그 영생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영생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요(17:3), 아는 것이란 항상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과 연합하여 날마다 교제와 사귐을 갖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과 어떻게 교제와 사귐을 갖는가?

그것은 말씀으로 늘 교제하는 것을 일컫는다.

왜냐하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며 또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복음을 잘 알지 못하는 자였다.

특히 장사복음은 더욱 그러하였다.

목사가 되기 전에 일반 평신도로 있을 때는 이런 고난이 제발 나에게 닥치지 않기를 기도했고, 또한 고난의 상황에서는 빨리 벗어나기를 기도하였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어느 누구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들 역시 대부분 이런 신앙의 모습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아니다.

만약 이런 상황 해결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해결을 받는 것이 믿음이라면 그 하나님은 다른 종교의 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종교도 동일하게 고난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기들이 믿는 신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생명 그 자체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 단순히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신 것이다.

 

이제 나는 복음을 알고 또한 가르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잘 넘어지는 연약한 자이다.

그렇지만 복음에 합당하지 못하여 내가 넘어지는 것이지 결코 주님이 잘 못 된 것이 아니다.

인자와 긍휼이 많으신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넘어지는 나일지라도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바로 파레시아이다.

내가 넘어진 그 자리에서 잠시 부끄러울지라도 아주 포기하거나 넘어진 상태로 있지 말고 다시 일어나 담대함(파레시아)으로 아버지께 나아갈 것을 권면하신다.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오늘도 이 말씀이 나를 일어서게 한다.

단순한 격려와 위로의 말씀이 아니다.

내게 닥친 고난의 무덤의 상황은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믿고 받아들여 그 안에서 주님과 말씀으로 교제해야 한다.

이를 통하여 우리 주님께서 성소를 지어주시며 이제는 그 성소에서 날마다 주님과의 사귐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생의 삶이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다가 나도 모르게 넘어질지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말 것은 우리 주님께서 날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기 때문에 파레시아 곧 담대히 일어나 아버지께로 나아갈 것이다.

이것이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이다.

 

오늘도 비록 영상예배로 드리며 성도간의 교제가 없을지라도 각자 개개인이 주님과의 연합과 교제를 통하여 영생을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오늘 바로 지금, 이 시간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목마른 수가성 여인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더 이상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는 영원한 샘물 곧 생수를 주신 것처럼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말씀의 생수를 기대하고 원하오니 그 말씀의 우물에 푹 잠겨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키게 하소서.

 

고난의 상황, 곧 무덤의 자리에 있는 자들에게는 그 자리를 벗어나거나 피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이 주신 자리임을 알고 그곳에서 더욱 주님과 연합하여 생명으로 교제하는 이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런 영생을 날마다 누릴 수 있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그리고 이런 영생의 삶속에서 순간순간 넘어질지라도 죄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담대하게 아버지 품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이 다 되게 하소서.

그 자리에 제일 먼저 나 자신이 나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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