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일(목) 추석
* 시작 기도
주님...
오늘은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 추석입니다.
영원 안에서는 땅에 있는 명절이 아무 것도 아니나 이 또한 우리나라의 전통과 유산이기에 이를 통하여 믿는 자들이 더욱 지혜롭게 행동하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코로나로 인하여 심히 어려운 상황에 있사오니 복음의 아름다운 접촉점으로 사용되게 하소서.
명절이 어떤 이들에게는 즐거움이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고통스러운 날이 되기도 하오니 주 안에서 넉넉히 이를 이겨낼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소서.
주의 보혈로 영육으로 지은 죄의 먼지들을 씻어 주시고 정결한 신부로 주와 함께 거할 수 있게 하소서.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조명하사 주의 말씀을 더 깊이 깨닫게 하시고 오늘 하루도 주의 은혜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렘 40:1-6
제목 :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1.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2.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3.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4.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풀어 주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
5.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의 왕이 유다 성읍들을 맡도록 세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가운데 살거나 네가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사령관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6.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사니라.
* 나의 묵상
바벨론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유다인들을 바벨론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예레미야도 함께 잡혀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이방인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를 불러서 유다가 망하게 된 이유를 하나님의 입장에서 말을 하고 예레미야를 풀어주고 그를 선대한다.
이 때 느부사라단이 한 말은 곧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유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셨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느부사라단의 선대함에 따라 바벨론으로 가지 않고 미스바에 있는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비천한 백성들과 함께 거하였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느부사라단의 행동은 참으로 기이하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곧이듣지 않았지만, 느부사라단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여 유대인들을 향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아서 이런 재난을 당하고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 말씀의 선포자가 전한 말씀을 교회가 알아듣지 못하거나 혹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면, 재난이 닥친 후에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 교회가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듣는 말 가운데는 이런 말이 있다.
“너희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설쳐대지 말고 너희들부터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들어라.”
또한 하나님의 참된 일꾼은 비록 하나님의 백성들인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엄청난 재난을 당할지라도 자기 자신의 안전이나 편안함을 생각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머물면서 말씀을 온전히 전하는 책임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마지막 사역인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신다.
이 때 수많은 무리들이 그 나귀 등에 겉옷을 걸쳐 놓고 길에도 펴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 영광이라고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소리쳐 외치는 자들의 입을 막고 그들을 책망하라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눅 19: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이처럼 소리 높여 외쳐야 할 자들이 외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쳐 외칠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의 복음을 증거 해야 할 자들이 증거 하지 않으면 오히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책망하는 말을 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 삼기 위하여 그들을 먼저 택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들만 선택 되어 구원을 받았다는 교만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여야 하는 사명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그들을 지옥의 땔감으로밖에 사용될 수 없다고 하면서 무시하기 일쑤였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이방인인 바벨론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된다(2-3절).
이것이 그들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제사장 나라로 바르게 쓰임 받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들로 삼는 것이 이스라엘의 사명이다.
그런데 그들이 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오히려 그 이방인들을 통해서 선민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것이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이다.
왜냐하면 복음을 받은 자로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온전히 사용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였다.
나름대로 복음을 전하였으나 내가 복음을 전한 대로 성도들이 바뀌지 않는 것을 보고 실망에 빠졌으며 무엇보다 그 실망에 매몰되어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더 많이 사랑하며 그들을 품어야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말로는 그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결국 나는 그들을 포기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참된 일꾼은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아서 재난을 당할 때 이를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머물면서 말씀을 온전히 증거하는 책임을 다하여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도 나를 심판하셨고 선교지에 가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의 광야에 빠지고 말았다.
감사한 것은 복음을 알기에 그 고난의 광야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그저 주님의 말씀으로 주님과 함께 그 자리를 성전 삼아 깊이 교제와 사귐을 가졌다.
그 자리가 바로 내가 무덤에 장사되는 성전이며 주님과의 교제의 자리였기에 능히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감당할 수 있었다.
고난의 자리의 대표적인 자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 십자가의 자리를 결코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으시고 담대히 담당하셨다.
단지 그 십자가의 자리는 아버지와의 영적인 분리와 단절을 의미하기에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십자가에서 부르짖으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육신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어서 부르짖으신 것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은 로마 군인들에게 채찍으로 맞는 육신적 고통을 당하셨고, 빌라도를 비롯하여 대제사장들이나 장로들에게 침뱉음이나 뺨을 맞는 등 정신적 고통을 당하였음에도 그 모든 수치와 조롱 앞에서 반응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인 아버지와의 영적 분리의 고통은 견딜 수가 없어서 그토록 부르짖고 외치셨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아버지의 영광이 임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자리에 아버지의 영광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그렇게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버림을 받았음에도 자신의 영혼을 그 즉시로 아버지께 내어 드렸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함이며 우리가 진정으로 본받아야 할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이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그와 함께 무덤에 장사될 때 아버지의 영광이 나타나 아들을 살리심과 같이 우리 또한 새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비록 목회할 때는 이를 실패하고 큰 무덤에 빠져서 헤매었지만 이제 고난의 수렁을 통과한 나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아들의 생명으로 연합한 삶을 살기 원한다.
그 삶이 바로 영생의 삶이요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임을 믿어 확신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가는 길을 주께서 아시오니 고난의 무덤으로 나를 단련하시어 결국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새 언약 백성으로서 새 생명 곧 아들의 생명을 얻어 날마다 영적 하루살이로 살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오직 당신의 생명에 연합하여 영적 하루살이가 됨을 만족하나이다.
세상에 대하여 욕심을 부리는 마음을 내어주지 않게 하시고 자기주장의지는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 곧 십자가를 믿음으로 오늘도 생명으로 연합된 자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의 권능의 날에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일어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주를 찬양하는 이들이 쏟아지게 하소서.
믿음이 연약할지라도 이 명절에 넉넉히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